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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밍 Dec 08. 2022

예정 없는 마지막

- 인사 없이 떠나는 건 정말이지 너무 아쉽다

거의 결석이 없던 에린이 한국어 수업에 오지 않았고, 그날은 정원도 몸이 아파 학교를 결석하는 바람에 막심 혼자 수업을 들었다. 갑자기 1:1 수업이 돼 버린 까닭에 생각해두었던 진도는 나가지 않았고, 막심이 부족했던 부분을 보충하며 진행했다.


막심마저 수업을 마치고 가버리니, 2학년 학생들이 오기까지 몇 분간의 쉬는 시간이 참으로 조용했다. 간단한 서류 처리를 위해 1층 행정실에 내려간 김에, 결석 이유를 알아보러 1학년 에린의 교실에 들렀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늘 에린이 한국어교실에 안 나와서요. 혹시 학교를 결석했나요?"

담임 선생님은 내 인사를 받으시더니, 잠깐 '뭔가 잊었었구나!' 하는 표정을 지으셨다.

"아... 선생님. 미리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에린이 전학을 갔어요."


예상하지 못했던 답변에 몇 초간을 담임 선생님과 마주 보며 멍하니 있었다. 갑자기 아버님 일터 문제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멀지는 않은 곳이라 한국어 수업은 방과 후에 지금의 학교로 받으러 오고 싶어 했으나 1학년인 에린을 데려다주고 또 데리고갈 수가 없어서 포기했다고 전해주셨다.


그동안 에린은 교실 수업 후 1시 반부터 4시 반까지 한국어교실에 머물렀다. 1학년의 방과 후 수업치고는 조금 긴 시간이다. 한국어교실의 1학년 수업은 3시에 끝나지만, 에린을 학교로 데리러 올 보호자가 없어서 4시 반까지 2학년 수업도 함께 참여했다. 4시 반에 에린의 중학생 언니 리아가 본인의 학교 수업을 마치고 에린을 데리러 왔고, 나의 임무는 1층 현관에서 리아에게 에린을 인계하는 것 까지였다.  


에린이 없으니 갑자기 수업이 수월해졌다. 같은 학년이지만 에린보다 한국어 수준이 한참 높았던 막심을 위해서 맞춤 수업을 해 줄 수 있었고, 쉬는 시간에도 행정실 일을 보거나 다음 시간 수업을 준비하는 데에 집중하기 편했다.


하지만, 3시간 내내 한국어 교실에서 쉬지 않고 재잘대던 에린이 없으니 정말 교실이 텅 비어 버렸다. 에린은 처음 한국어교실에 들어왔을 때 한글을 제대로 읽지 못했고, 의사소통도 거의 되지 않았다. 하지만 호기심이 높고 질문이 많아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쏟아내며 시간 내내 말을 했다. 거의 1년을 함께하며 한글 자모와 단어를 익혀가면서 자신의 의사도 조사를 붙여 정확히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고, 제법 받아쓰기도 완성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는데. 12월 방학 전에 받침까지 완료하면, 2학년 올라가서 좀 더 자신감 있게 공부할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너무 아쉽다. 에린이 직접 만든 자모 카드, 받아쓰기 공책, 여러 활동들이 그려진 스케치북 등을 마지막 날 응원과 함께 선물처럼 주고 싶었는데.


에린이 전학을 가면서 한국어교실을 기억했는지, 잘 모르겠다. 짧으면 3개월 길면 1년을 만나는 아이들에게 나 혼자 깊이 정을 나눈 것인지도 모르겠다. 예정 없는 마지막은 참 아쉽구나.


다음 시간에도 에린이 오지 않자, 막심이 이유를 물었다.

"급식실에서 매일 에린을 볼 수 없어요. 왜요? 에린 학교에 안 와요?"

"에린은 이사를 갔어요."

"이사가 뭐예요?"

"집을 바꿔요. 다른 집에 살아요. 그게 '이사'예요. 그 집이 학교에서 멀어요. 그래서 이제 여기 ㅅ학교에 올 수 없어요. 다른 학교에서 공부해요."


내 말을 이해한 막심이 깜짝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마 에린의 소식을 처음 들었던 내 표정 역시 저랬을 것이다.

"에린... 나쁘다."


그날, 막심은 쉬는 시간에 뭔가를 열심히 만들더니

"선생님, 선물이에요." 하면서 내게 전해준다.



막심의 마음이, 꾹꾹 눌러 붙여 꼬깃해져버린 풀자국처럼 진하게... 전해진다. 

내게 주는 건지, 인사 없이 이별한 에린에게 주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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