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졸업 후 중국어학원에서 입시지도를 꽤 오래 한 적이 있다. 언어학 전공, 중국어 부전공으로 졸업 후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했던 나에게는 실로 적합한 직업이었다. 그때는 한국 학생들이 중국어 어학자격증이나 말하기 경연대회 등의 수상실적과 자기소개서로 한국대학에 도전하는 것을 도왔었다. 홍이는 중국국적이니 외국인전형을 통해 한국대학입학에 도전해야 한다. 사실, 한국에서 대학에 합격하는 것이 만만한 것이 아닐뿐더러, 특히 의지와 열정이 없는 학생의 입시지도를 한다는 것은 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내가 홍이에게 대학도전을 제안한 것은, 지금 홍이의 상황이 중국으로 바로 돌아갈 수도 없기 때문에 이대로 그냥 졸업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될 것 같았고, 성인이 되기 전 남은 시간 동안 목표를 주고 그것에 도전하면 막 한국에 와서 친구들과 함께하던 그 시절의 열정적인 홍이를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외국국적 학생의 외국인전형 입시지도는 나 역시 처음이라 주변에 많이 묻고, 인터넷을 검색하며 스스로 수업준비 외의 공부가 많았다. 중국의 유학생들이 선호하는 한국대학들에는 중국인이 약 3천여 명 된다고 하며, 외국인전형은 정원 외의 입시이기 때문에, 1년에 단 한 번이 아니라 학기에 두 차례 모집을 하는 학교들도 있었다. 이 세계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수업받을 실력이 안 되는 중국 및 외국 유학생들에게 비싼 등록금을 받으며 정원 외로 합격시켜 주고, 학생 수업 관리 등에는 뒷전인 일부 사립대학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했다.
홍이와의 대입준비는 과를 결정하고 자기소개서를 준비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홍이의 첫인상은 의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눈빛이 흐린 고등학생이었으나, 자기소개서 작성을 위해 중국에서의 초중등 생활부터 한국으로의 유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 한국과 지금 학교에서의 생활 등에 대해 자세히 듣다 보니 홍이가 조금 다르게 보였다.
조금 친해지고 보니 홍이는 패션에 매우 관심이 많았다. 여름방학 때 홍이가 몇 번 사복을 입고 수업에 왔었는데, 요즘 유행하는 통이 넓은 슬랙스에 후드티를 입고 와서 교복을 입었을 때랑 매우 달라 보였던 기억이 난다. 홍이는 지원할 과를 결정하는 데 많은 고민을 했다. 유튜브나 중국 사이트를 검색해서 한국대학에 입학한 유학생들이 남긴 후기를 많이 찾아보며 참고를 했는데, 나는 홍이가 많은 관심을 보인 의류학과를 추천했으나 결국 홍이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경영학과를 선택했다. 그리고 만약에 합격한다면, 의류학과 관련된 수업을 같이 들으며 의류, 패션과 관련된 경영 및 마케팅을 같이 공부하면 정말 좋겠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지원을 위해서는 '토픽'이라는 한국어능력시험 급수가 필요했는데, 보통 대학에서는 4급 이상을 요구했다(토픽은 1~6급이 있으며, 6급이 가장 상위 등급이다). 홍이는 작년 말 3급을 취득했기 때문에 4급을 요구하는 대학은 지원할 수 없었다. 홍이의 요건에서 지원할 수 있는 대학을 추리다 보니, 올해 코로나로 인해 시험응시가 쉽지 않았을 지원자들을 위해 토픽 급수에 제한을 두지 않는 ㅅ대학을 결정했고(급수 제한은 없었으나 급수 자격증이 있는 경우 제출해야 함), 급수 제한이 없는 만큼 자기소개서 작성에 많은 힘을 쏟았다.
1. 고등학교 재학시절 본인이 했던 의미 있는 활동과 그 활동으로 느낀 점
2. 지원 학교의 유학생활에 기대하는 점
ㅅ대학 자기소개서에는 위의 두 질문이 제시되었다. 이 두 가지를 작성하기 위해 홍이와 나는 고군분투했다. 먼저 홍이가 어떻게 쓰고 싶은지, 어떤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갈지를 중국어로 말하면, 내가 홍이에게 들었던 에피소드들 중 좀 더 살을 붙일 수 있는 것들을 연결해서, 여기서는 이런 이야기를 더 붙여보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는 필요 없겠다 정도를 조언해 주었다. 그리고 글의 구성과 함께 생기부에 쓰여 있는 장점들을 자기소개서에 어떻게 녹여낼지 등을 함께 이야기했다.
이 과정에서 가끔 홍이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선생님, 선생님 말도 맞지만 그렇게 쓰면 그건 너무 평범하고 정해져 있는 결론인 것 같아요. 저는 이렇게 쓰면 좋겠어요. "
이 말을 듣고 나는 속으로 빙그레 웃었다. 처음 홍이를 봤을 때 느꼈던 그런 흐릿함이 아니었다. 홍이는 원래 이렇게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는 학생이었다.
"그래? 그럼 홍이 생각대로 써 봐. 하지만 주제를 벗어나서는 안돼. 자기소개서를 읽고 너를 뽑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써야 한다는 건 변함없으니까."
홍이는 본인이 말한 중국어 내용과 내가 조언해 준 것들을 합쳐 한국어로 재구성해내야 했다. 말하기에 비해 쓰기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쓴 것을 다시 보면 군데군데 부자연스러웠다. 사전을 찾거나 너무 자신이 없으면 번역기를 돌리거나 했을 어휘와 문장들을 완벽하게 수정해주고 싶은 마음이 앞섰지만, 거기까지는 내 영역이 아니었다. 다 작성하고 나서 한글 프로그램에서 맞춤법 검사 하는 것을 알려주는 것으로 나의 임무는 끝이 났다.
그리고, 합격여부를 확인하지 못한 채 계약기간 만료로 수업이 끝나버렸다. 홍이에게는 합격자 발표날에 꼭 연락을 할 것을 당부했다. 불합격으로 상심해서 연락을 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워, 혹시라도 불합격할 경우에는 2학기에 한 번 더 도전할 기회가 있는 다른 대학교들을 지원해보기로 약속까지 했다.
합격자 발표 전날 밤, 위챗(중국인들은 우리의 카카오톡과 비슷한 위챗이라는 채팅앱을 주로 사용한다)으로 홍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선생님, 저 합격했어요!
감사합니다.
같이 지원한 중국인 친구는 토픽 4급이었는데도 불합격했고, 그 친구의 지인은 6급을 보유했음에도 불합격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우리가 자기소개서를 너무 잘 썼고, 우리가 너무 준비를 잘했기 때문이라고 조금 생색을 냈다. 그리고 격한 축하와 응원의 메시지를 남겨주었다.
다음 날 아침, 홍이의 합격 소식을 들은 ㄱ고등학교의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감사의 메시지도 받았다. 매번 홍이의 수업 때마다 신경을 많이 써 주시고 방과 후 수업이어서 덩달아 늦게 퇴근하신 터라, 나도 이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홍아, 우리가 수업을 하며 보냈던 그 과정을 기억하며 그 마음으로 대학생활을 즐겼으면 해. 지금과는 다른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다 보면 새롭고 즐거운 일들이 많을 거야. 대학 공부가 쉽지 않을 거야. 하지만 이제 성인이니까 네 의지대로, 생각대로 극복할 수 있기를 바라. 응원한다!
[Photo by Vidhyarthi Darpan on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