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at Day (2011)
유난히 더웠던 2012년 여름,
우연한 기회에 국제 청소년 영화제에 참석을 했고, 그 행사를 통해 말레이시아 영화인 '매일매일 좋은 날'을 관람하였다.
우선 내게는 '말레이시아'란 나라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고 그 나라 영화에 대한 정보는 더더군다나 없었다. 따라서 뭔가 '말레이시아'란 나라의 영화는 우거진 동남아 수풀 풍경에 반나체(?)의 동남아 원주민이 등장할 것 같은 알 수 없는 선입견을 가지고 극장 객석 한 귀퉁이에 앉았다.
그러나 영화가 시작되자마 그 선입견은 깨졌다. 화면에 나오는 영화 배경과 인물들은 우리가 정서적으로 흔히 접했던 대만 또는 홍콩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말레이시아'란 나라의 정보를 찾아보니까 총인구의 25%가 화교(華僑), 즉 중국인들이 이루고 있다.
이들은 도시에 집중해서 살고 있으며 상업에 많이 종사하기 때문에 그 나라의 경제적 주도권을 잡고 있어서 경제/정치/문화 부분에서 주체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제야 말레이시아 영화에서 왜 대만, 홍콩 영화의 느낌이 났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영화란 산업은 자본집약적 문화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정말 죄송합니다만)솔직히 살짝 수준을 낮게 생각한, 말레이시아 영화에서 나는 꽤나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 나라 정서에 국한되지 않은 공감되는 소재와 내용도 내용이지만 국내에 소개되거나 개봉되지 못한, 제3세계의 이런 보석 같은 영화가 얼마나 많이 있을까?라는 생각에서였다.
영화가 끝난 후 감독과의 대화 시간이 있었다.
감독에게 이런 장면이나 내용은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 묻고 대답해주는 시간인데 거의 한 시간 정도나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갔었던 듯하다. 그중 인상 깊었던 질문과 대답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해보겠다.
우선 간략한 영화의 줄거리 중 한 부분을 스포일러 하자면,
영화에서는 한 명의 불효자가 나온다. 아버지를 양로원에 버려놓고,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는 불효 막심한 초등학교 교사이다. 아버지는 양로원에서 항상 자신의 아들이 좋은 학교의 교사라고 자랑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아버지를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는 그 아들을 불효자로 매도한다. 그래서 양로원 사람들은 그 아들의 학교로 찾아가 따지기도 하고, 학교에 나쁜 소문을 퍼트려 불효자 아들을 곤란한 상황에 빠트리기도 한다.
그래도 그 불효자 아들은 변화될 기미가 안 보인다. 자신에겐 아버지 따위는 없다고 냉정하게 사람들에게 말한다. 나쁜 캐릭터로 영화의 전반적 악의 축을 맡아준다. 그리고 쉽게 결과를 예측하게 해준다. 분명 마지막에 저 불효자 캐릭터는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양로원으로 아버지를 찾아오겠지. 그리고 해피한 엔딩으로 끝나겠지.
이렇게 영화의 마지막 결과 예측이 되었다. 그리고 예측했던 대로 여지없이 영화 마지막에 그 불효자 아들은 모든 걸 뉘우치고, 아버지의 생일에 선물을 잔뜩 사들고 양로원을 찾아온다. 사람들은 이제라도 잘 왔다고 칭찬하고 서먹해었던 부자간의 만남도 이루어진다.
자. 역시 이렇게 관계가 좋지 않았던 부자의 극적인 화해가 이루어지며 영화가 끝이 나는구나 하는 순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신선한 반전이 나온다.
사실,
그 교사는 그의 아들이 아니었다. 그 양로원의 아버지는 자식이 없었다. 다만 노년에 가족이란 매개체를 그리워하며 상상 속의 아들을 만들어 냈고, 우연히 습득한 한 교사의 명함을 통해 그 실체를 만들어내어 그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렸던 것이다.
그 교사는 사실 아버지가 오래전 돌아가셨다. 그래서 자신에게는 아버지가 없다고 말했던 것이고, 그것을 사람들은 믿어주지 않았다. 결국 그 교사는 자신을 아들로 생각하고 원하는 그 양로원 가짜 아버지를 찾아와 생전에 못했던 효도를 하기로 결심하고 찾아온 것이었다. 생각지 못했던 반전에 나는 꽤나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관객 중 누군가 켕 구안 조 감독에게 물었다.
그 나쁜 역할의 교사 캐릭터를 만든 이유는 무엇이냐고.
그러자 그 감독은 꽤나 독특한 답변을 해주었다.
"세상에는 나빠 보이지만, 사실 나쁘지 않은 사람 많습니다. 그리고 좋아 보이지만, 사실 좋지 않은 사람도 많습니다. 그 사람을 좀 더 면밀히 알게 되기 전에는 그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그릇된 정보가 한 사람을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으로 만들 수 있고 그것이 공유되어 사회에서 매도가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사람에 대한 평가는 늘 신중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나는 이것을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정말.. 뭐랄까.. 이 대답을 듣고 나는 이 말레이시아 감독에게 빠져버리는 순간이었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집단,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 다양한 지위의 사람들을 만나봤었다. 일반적인 것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 이야기 나누어보고 정서적인 교감을 나눠보기 전까지는 정확한 그 사람의 인간 됨됨이나 가치관과 삶의 태도를 알기 힘들었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냥 단편적으로 스쳐가듯 몇 마디 나누어본 대화에서의 그 사람의 인상과 주변에서 들리는 그 사람에 대한 몇몇 가지 이야기들을 믹스시켜 그 사람의 전체적 인간성 판단과 가까이해야 할 사람인지 아닌지에 대한 호불 관계 설정이 이루어졌다.
요즘과 같이 사람과의 관계가 오프라인을 넘어 온라인을 비롯 각종 SNS를 통해 많이 이루어지는 디지털 문명 시대에서는 이렇게 사람에 대한 정보의 오류 생겨도 그것을 바로잡기 전에 걷잡을 수 없이 공유 및 재 생산되어 퍼지기 때문에 각종 사회 문제와 인간관계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켕 구안 조 감독은 이 현상적인 문제가 사회적으로 심각하다라는 것을 깨닫고, '사람에 대한 판단'에 대한 신중함을 일깨우려는 주제를 어느 연령대라도 편하게 관람할 수 있는 코미디 형식의 가족 영화로 눈높이를 낮추어 전달함으로써 사회적인 입장에서 우리의 성찰과 각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매우 세련되고 지성적 방법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공감 어린 마음과 존경의 마음이 들었다.
따라서 관객과의 대화가 끝나고 나서, 나는 감독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어깨를 토닥여 주면서 엄지손가락을 크게 들어 보여줬다.
그러자 그는 인상 좋게 미소를 지어 보여주었고,
우린 뭔가 교감이 되는 걸 느꼈다
말레이시아 영화의 무궁한 발전을!
켕 쿠안 조 감독의 영화에 찬사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