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천재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을 만나다.
(8월 초에 쓴 글임. 약 스포 있음)
무더운 여름밤에는 역시 심야 영화가 진리이다.
그래서 몇 주새 심야 영화만 폭풍처럼 보고 있는데,
이번 주는 2008년 극장에서 봤던 '다크나이트'가 재개봉했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어렵게 개봉관을 찾아 심야영화로 관람했고 다음 날 심야에는 '덩케르크'를 관람했다.
이틀 사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만든 10년 간격의 영화 두 편을 관람한 셈이다. '다크나이트'와 '덩케르크'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놀란 감독의 연출과 구성력을 비교해보는 재미를 응근 기대 했으나, 내가 내린 결론은 그는 10년 전에도 천재 감독이었고, 지금도 역시 천재 감독이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어릴 때 부터 전쟁과 전투 장면이 있는 영화를 좋아했다. 특히 2차 세계대전에 대한 네러티브에 흠뻑 빠져었는데 '독일군'이라는 절대 강자에게 약한(?) '연합군'들이 한참을 밀리다가 재 역전하는 그 서사적 흐름을 어찌나 흥미로워했었는지, 초등학생 때부터 '2차 세계대전 대백과' 란 10권 정도로 이루어진 백과사전 책을 마르고 닳도록 보았다(사진 위주로..;;;)
그래서 아직까지도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역사와 전황의 흐름, 그리고 큰 전투나 드라마틱한 이슈들에 대해서는 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왠걸 2차대전 소재의 영화라는데 '덩케르크'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뭐지 작전명이었나? 아니면 큰 전투가 있었던 고지명 또는 지역 이름인걸까? 사전에 영화 지식을 전혀 검색해보지 않고 갔기 때문에 영화 제목에 대한 궁금증을 가득 안고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바로 영화 제목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다.
'덩케르크'는 프랑스의 한 지명이었다 ;;;
2차대전 전쟁사에서 가장 유명한 작전은 뭐니뭐니해도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다. 2차 세계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끈 결정적 큰 작전이어서 그렇다.
이 작전을 소재로 한 영화도 꽤 여러편들이 만들어졌는데 우리가 잘 아는 '라이언일병 구하기(1998)'나 '지상 최대의 작전(1962)' 그리고 장동건(;;;)이 나왔던 'My Way(2011)' 등이 있다.
그러나 훗날 2차 세계대전의 전황을 바꾼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실행 될 수 있게 계기가 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다이나모 철수 작전'이었고, 그 철수 작전이 이루어진 곳이 바로 프랑스의 작은 해안 도시 '덩케르크'였다.
2차대전 초기, 독일군은 연합군(주로 영국군과 프랑스군) 40만명을 프랑스 작은 해안 마을인 '덩케르크'에 포위해 몰아놓고 어떻게 섬멸 시킬지 잠시 간을 보고 있었다.
기갑사단의 탱크로 밀어버릴까? 공군의 무자비한 폭격으로 전멸 시켜버릴까? 히틀러에게 잘보이고 싶었던 각 군단의 사령관들은 하루빨리 '덩케르크'를 점령하여 유럽을 차지한 공로를 세우고 싶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히틀러는 '덩케르크'에 포위된 40만의 연합군에 대한 공격 중지 명령을 내렸고, 이를 틈타 '덩케르크'에 포위된 40만 중, 34만이 탈출 작전을 통해 도버해협을 건너 목숨을 건지게 된다. 그렇게 살아서 돌아간 34만명의 연합군들은 4년 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투입되어 독일군의 목줄을 끊어 놓는 반전의 계기가 된다.
훗날 히틀러가 왜 이런 미스테리한 명령을 내린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여러가지 썰(?)이 있다.
<첫번 째 썰>
공군 사령관 괴링이 폭격기로 쓸어버리고 싶다하여, 우리 비행기 갈때 까지 좀만 기다려주세요 뿌잉.
<두번 째 썰>
육해공 사령관들이 자기네들이 마무리 짓고싶다 말도 안듣고 투닥거려, 괴씸해서 히틀러가 모두 동작 그만!
<세번 째 썰>
40만을 몰살 시켜도 괜찮을까? 나는 인도주의적 지도자야. 그래 도망치게 놔둬서 이걸로 나중에 내가 불리할 때, 협상 테이블에서 생색내며 써먹어야지.
어쨋든 히틀러가 그런 판단을 내린 것에 어떠한 전략이나 전술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그 판단 하나로 이루어진 결과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이유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패장은 말이 없고 결과로 역사에 남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마다 해석은 다르겠지만,
나는 이 영화의 네러티브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위험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러 가는 어른들>이라고 쓰고 싶다.
큰 위험에 처한 자국 병사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또다른 희생을 감수하며 철수 작전을 펼치는 어른스러운 국가의 모습에서 그것을 느꼈고, 자식들 같은 어린 병사들을 구하러 스스로 자신들의 작은 어선과 보트를 몰고 위험한 전쟁의 바다를 건너는 당시 영국의 어부들과 시민들의 모습에서 더 확실히 이 영화가 전달해주는 감동을 느꼈다.
그리고 솔직히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세월호'가 자꾸 오버랩이 되어 북받치는 감정의 울림이 자꾸 눈시울을 붉어지게 했다.
'왜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을까'
1995년 일본 도쿄TV에서 방영이 시작된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은 기존 거대 로봇 애니메이션의 틀을 깬 소재와 연출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신(神)'인지 외계인인지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도'라 불리는 절대적 공포의 대상이 계속해서 지구를 공격한다. 이들은 전쟁을 통해 뭔가를 얻고자하는 감정과 욕망을 가진 적이라기 보다는 아무 이유 없이 들이 닥치는 '재앙' 또는 '재난'을 표현한 느낌이 들었었다.
당시 나는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느낀 것은, 일본인들이 오랜 기간 동안 태풍과 지진처럼 인간이 거스르거나 대처하기 힘든 자연 재해를 통해 무기력한 고통을 받아온 일본의 역사를 내재한 이야기라 생각했었다.
그런 맥락에서 고립된 성벽에 둘러쌓인 인간들이 정체불명의 식인 거인들에게 끊임없는 공격을 받는 내용의 '진격의 거인'도 마찬가지 이다.
일본인 정서 속에 내재되어 있는 '고립된 섬나라'라는 지리적 특성을 '성벽'으로 표현하고, 인간에게 무기력한 공포감을 주는 태풍과 지진과 같은 자연 재해와 재앙을 무자비한 '거인'으로 치환해 표현한 작품으로 보았다.
그런 면에서 나는 '덩케르크'에서 왜 '에반게리온'이 강하게 투영되어 졌을까?
우선 생존의 탈출을 위해 해변에 모인 수십만의 연합군들은 얼굴이나 모습조차 보여주지 않는 '독일군'으로 추측되는 공포의 대상에게 제대로 된 저항도 못한 채 끊임없는 공격을 받는다.
하늘에서는 폭탄이 떨어지고, 바다에서는 어뢰가 솟아오른다. 그리고 해변에서는 어디서 쏘는지 조차 모르채 총탄이 날라든다. 철저하게 그 공격하는 대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마치 사람이 아닌 대상이 공격해오는 공포감을 조성하고, 군인들은 그냥 무기력하게 도망치고 숨고, 피해야만 한다.
이들의 모습은 여느 전쟁 영화에서 등장하는 군인스러운, 베테랑스러운, 영웅스러운 외모가 아니다. 전부 어리고 겁에 질린 소년병들의 모습이다. 전쟁 속이 아니라 '재난'과 '재앙'을 피하려 벼랑끝에 모여든 무기력한 인간들의 군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전쟁' 영화라기 보다 '재난' 영화란 평이 있는 듯 하다.
리를리 스콧 감독의 '블랙호크 다운'이라는 좀 오래된 영화가 있다. 소말리아 내전을 배경으로 한 미군 특수 부대의 동료 구출 이야기인데, 나는 이 영화를 여태까지 내가 본 전쟁 영화 중 최고로 꼽고 있었다.
그 이유는 영화를 보는 내내 그 현장에 있는 것 같은 실재감, 현장감을 통해 생존과 구출에 대한 감정 이입이 흠뻑 되어버려 온 몸에 전율과 감동을 느꼈던 경험이 있어서다. 그런 경험을 한참 잊고 있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영화 속 현장감과 생존에 대한 절박한 감정을 제대로 이입을 시켜준 영화가 바로 '덩케르크'이다.
절벽과도 같은 해안에 모여있는 군인들 사이에 떨어지는 폭탄 파괴음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추려지고 폭탄이 떨어지는 경로를 피해 달리는 소년병들 사이에서 나도 같이 달리고 있었다.
특히 해안가에 버려진 배 안에 병사들이 숨어 들었는데, 어디선가 독일 군들이 쏘는 총알이 하나씩 그리고 점점 자주 배 안으로 뚫고 들어 올 때 그 긴장감은 최고였다. 그 다음 총알이 그 배 안에 같이 숨어있는 나를 뚫어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그래서 어쩌면 이 영화는 실화 전쟁 드라마를 가장한 서스펜스 체험 영화가 아니었을까.
처음에는 왜이렇게 대사가 없지? 라며 좀 의아했다. 거의 등장 인물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인지 나레이터의 해설이 빠진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느낌도 들었다.
대사가 별로 없으니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나 인물들의 관계, 갈등 상황 등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었고 배우들의 눈빛과 몸짓, 그리고 화면에서의 연출 등으로 아.. 지금 이러한 상황이구나, 이렇게 흘러가려나부다, 이런 갈등이 있나본데? 라고 스스로 각본을 써내려가듯 관람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대사 별로 없는 이 영화에 대사를 대신 해주는 목소리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한스 짐머의 음악 이었다. 가사 없는 음악이지만 충분히 상황에 대한 전달과 전환되는 국면의 상징, 등장 인물들의 현재 심리 등을 때론 장엄하게 때론 간결하고 세심하게 대사를 대신해 영화의 시나리오를 듣게 해준다.
사실 영화 음악은 영화를 뒷받침 해주는 조력의 역할이다라고 생각했는데 '덩케르크'의 한스 짐머 음악은 이 영화의 뿌리를 세게 흔들어 주었고 주요 메시지를 던져주는 주인공 이었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꽤 의아한 자막이 나온다.
- The Mole/ one week (방파제/ 한 주)
- The Sea/ one day (바다/ 하루)
- The Air/ one hour (공중/ 한 시간)
처음에는 이 자막이 무엇을 의미하는거지?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긴 했으나 곧 대수롭지 않게 그냥 넘겨버렸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중간 즈음 되면 '아! 아까 그 자막이 그런 뜻이구나!' 하고 뭔가 무심결에 수수께기를 풀어낸 듯한 쓸데없는 명쾌한(?) 기분이 들었다.
one week : 덩케르크 해안에서 탈출하기 위해 모여있는 군인들의 방파제에서의 일주일.
one day : 자식 같은 군인들을 구하러 자신의 요트를 몰고가는 아버지와 아들의 바다 위의 하루.
one hour: 독일 폭격기로 부터 덩케르크 해안의 군인들을 보호하려는 한 영국군 파일럿의 한시간.
이 영화는 3가지의 시점을 통한 3가지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편집이 되었는데 이것이 매우 신묘하다. 서로 다른 공간과 시간을 쓰는 듯 하지만 결국 각기 다른 사람들의 일주일과, 하루, 그리고 한 시간이 같은 시공간에서 모이게 된다. 그러면서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위해 이렇게 같은 시공간에 존재해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그 목표는 바로 '생존' 그리고 '공존' 이다.
바로 이 영화가 끊임없이 관객들에게 던지는 화두 이다.
일주일, 하루 그리고 한시간.
분명 물리적으로 차이가 있는 시간이지만 3가지 시점에서 본 일주일과 하루 그리고 한시간은 모두 같아 보였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나 역시 같은 시간 속에 있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즉,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그 곳 한가운데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