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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별 Jun 08. 2020

사랑니

일상의 기록#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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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원인모를 치통에 매일 밤 고통과 씨름을 하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아침까지 끙끙 앓은 채로 토요일 치과가 오픈하자마자 예약을 하고 찾아갔다. 치과라는 공간이 나에게는 그리 행복감을 주는 곳은 아니었기에 아프지 않으면 굳이 가고 싶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그 아픔을 참을 수 없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신경치료를 받아야 하는 치아와 주변에 있는 사랑니를 발치하기를 권유하셨고 당장 사랑니를 뽑기에는 겁이 나서 오늘은 신경치료만 부탁드린다고 발치를 다음 주로 미뤘다.


4년 전 반대쪽에 있는 사랑니를 뽑았을 당시에 앞으로 살면서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사랑니 발치에 대한 기억이 그리 좋지 않았다. 사랑니가 매복이 되어있어서 치아를 망치로 깨고 머리는 울리고 입술에는 시퍼렇게 멍이 들었을 정도로 30분 가까이 오랜 시간을 고생했다. 그중에서도 어려서부터 사랑니를 미리 빼자고 하시는 의사 선생님들의 말씀을 왜 듣지 않아서 지금 이렇게 고생하는 걸까 싶은 마음에 억울해서 눈물이 나기도 했다. 또다시 그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생각에 하루하루 걱정과 불안에 떨면서 일주일을 보냈다.


거의 반쯤은 포기하는 심정으로 예약된 시간에 치과에 방문해서 신경치료를 마치고 이제는 사랑니를 뽑아야 하는 차례가 왔다. 이제 난 죽었구나 싶은 마음과는 다르게 중간에 다시 마취를 하는 것을 제외하면 벌써 끝났나 싶을 정도로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물론 발치하는 당시에 마취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아팠지만 내가 걱정하고 불안했던 과거의 사랑니에 대한 경험들이 무색할 정도로 금방 끝이 났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이 도대체 뭐였을까 싶을 정도로 허무했다.


사랑니를 뽑는 고통이 오늘과 같았다면 그렇게 무서운 일은 아니구나 라고 위안을 하면서도 겁에 질리고 두려워하는 나와는 다르게 차분하신 의사 선생님을 보면서 참 아이러니함을 느꼈다. 나에게는 일상이 흔들리고 스트레스받을 정도로 어렵고 힘든 일이 누군가에게는 흘러가듯 지나가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사랑니를 뽑으면서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돌이켜보니 사랑니를 뽑아야 할 때처럼 미루고 미루다 진심을 전달해야 하는 타이밍을 놓쳐 마음이 멀어진 친구도 있었고, 내가 누군가에게 실수를 해서 어떡하지 걱정하며 전전긍긍하는 경우도 상대방에게는 그리 무거운 일이 아니어서 좋게 해결되는 일들도 있었다. 가끔은 관계가 깊어져 마음에 뿌리를 내리기 전에 뽑아내는 것도 중요했고, 끊어내는 것에 있어서 어렵고 힘들어도 의외로 크게 상처 받지 않고 잘 마무리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당장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면 나에게 커다란 상처로 다가오게 될 일들이 참 많다.


술을 마시는 것이 당장은 우울한 기분을 날려버리고 기분을 좋게 해 줄지는 몰라도 그 세월들이 오랜 기간 쌓이고 축적이 되다 보면 간에 큰 부담이 되어 나중에는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에 이른다. 오늘 운동을 하지 않으면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많은 시간이 지나서 체중이 불어난 모습을 보며 건강하지 않은 나를 원망할 수밖에 없고, 오늘 해야 하는 일을 해놓지 않으면 나중에는 혼자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살면서 나를 발목 잡는 일들의 대부분은 이런 상황의 반복에서 비롯된다.


사랑니가 썩으면서 주변 치아까지 썩게 만드는 것처럼 내 마음속에 자라고 있는 사랑니가 썩어서 내 주변에서 나의 일상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에게 까지 고통을 주기 전에 어서 뽑아야 하지 않을까. 그게 설령 당장 나를 꽤나 아프게 하더라도 말이다. 우리 주변에는 그럴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아픈 마음을 치료해주는 의사 선생님도 계시니 혼자서 해결하기 어렵다면 더 아프기 전에 손을 내밀었으면 좋겠다.


사랑니가 아프지 않을 때 왔으면 뽑을 때 아프지 않았을 거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귀에서 쉽게 떠나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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