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세 개의 죽음
할머니를 보내드린지 사흘이 지났다. 얼마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죽음을 뜻하는 한국어가 생각보다 많다는 걸 상기하게 된다. 비유적인 표현이든 종교에서 사용하는 용어이든 사람이 생물학적으로 사망한 현상을 설명하는 점에서는 다름이 없다. 부드러운 어감으로 돌려 표현해 아이들을 놀라지 않게 하는가하면 종교적, 철학적 의미를 부여해 삶과 죽음의 관계를 재해석했다. 우리는 일상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다양한 표현으로 접하고 있다. 각각의 표현에 담긴 정확한 의미와 사용처 그리고 그 뒤에 비친 한국인들의 죽음에 대한 인식을 주관적으로 정리해봤다.
독립적 표현: 죽다
한자 표현: 고인이 되다 / 별세하다 / 사망하다 / 운명하다 / 임종하다 / 작고하다 / 타계하다
비유·관용적 표현: 숨을 거두다 / 숨이 끊어지다 / 숨이 멎다 / 숨지다 / 돌아가시다 / 삶과 이별하다 / 세상을 하직하다 / 세상을 떠나다 / 우리 곁을 떠나다 / 유명을 달리하다 / 저 세상으로 가다 / 하늘나라로 가다 / 목숨을 잃다 / 생명을 잃다 / 삶을 마감하다 / 생을 마감하다 / 눈을 감다 / 눈에 흙이 들어오다 / 영원히 잠들다 / 영면하다
종교적 표현: 선종 / 소천 / 입적
특수한 표현: 붕어, 승하 / 서거
1) 죽다 : 가장 직설적이고 쉬운 표현. 정제되지 않은 다소 과격하고 거친 느낌이 담겨 있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벌레도 죽고 시계도 죽고 프로그램도 죽는다. 생명의 소멸뿐만이 아니라 물리적 기기의 일시적, 영구적 기능 정지를 뜻하는 말로 확장되어 쓰이기도 한다.
2) 고인이 되다 : 고인(故人)은 '죽은 사람'을 뜻한다. 연고 고(故)는 죽은 사람 이름 앞에 붙이는 관형사로 쓰이듯 죽음과 관련된 한자 표현에 자주 활용된다.
3) 별세하다 : 별세(別世)는 '인간 세상을 떠난다', '현 세상과 분리하다'라는 의미의 한자 표현이다. 윗사람의 죽음을 높여 표현한다. 언론 등에서 사회에 잘 알려진 고령 인사의 사망 소식을 전할 때 쓰는 경우가 많다.
4) 사망하다 : 죽을 사(死)에 망할 망(亡)이 쓰였다. '죽다' 대신 언론이나 공식 발표, 서류 등에서 정제된 어휘로 가장 흔히 사용된다. 따로 높이거나 낮추는 의도가 없는 중립적인 표현이다. 특히 사건 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 보도에서 자주 들을 수 있다.
5) 운명하다 : 죽을 운(殞)에 목숨 명(命)이 붙어 사람의 죽음을 나타냈다. 윗사람의 죽음을 높여 표현할 때 쓰이는 경우가 많다.
6) 임종하다 : 임할 임(臨)에 마칠 종(終)을 써서 인생의 끝을 맞이한다는 의미이다. '임한다'에서 보듯 사건사고로 인한 갑작스러운 죽음보다는 죽음을 염두한 오랜 투병 끝에 받아들이는 상황에서 쓰인다.
7) 작고하다 : 앞에서 살펴본 연고 고(故) 앞에 지을 작(作)이 붙었다. 윗사람의 죽음을 높여 표현한다.
8) 타계하다 : 다를 타(他)에 경계 계(界)를 썼다. 살아있는 세계와 다른 세계, 곧 죽음으로 넘어갔다는 뜻이다. 별세와 마찬가지로 고령의 공인 사망 보도에 흔히 쓰이지만 사회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 정치, 사회, 문화, 경제계 인물과 어울린다.
# 호흡
9) 숨을 거두다
10) 숨이 끊어지다
11) 숨이 멎다
12) 숨지다
위 4가지 표현은 생명 유지에 필수 불가결한 호흡의 종결로 사람의 죽음을 비유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 민법 제3편 제2장 제1절 권리능력에 명시된 바에 따르면 자연인의 사망은 호흡과 심장이 영구적으로 정지된 상태를 말한다. 민법으로 한정한다면 뇌사설보다 이 심폐정지설을 사망 기준에 대한 통설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숨을 멈춘다는 것은 곧 죽음에 이르는 결과로 자연스럽게 연결지은 발상이다. 이 중 '숨지다'는 '사망하다'와 더불어 사건 사고 관련 언론 보도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 이동
13) 돌아가시다
14) 삶과 이별하다
15) 세상을 하직하다
16) 세상을 떠나다
17) 우리 곁을 떠나다
18) 유명을 달리하다
19) 저 세상으로 가다
20) 하늘나라로 가다
8개 표현 모두 우리가 속한 세계를 둘로 나눠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옮겨 간다는 비유가 담겨 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세상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세상.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살아 있는 세상이 '이 세상'이고 죽은 세상이 '저 세상'이 되어 버렸다. 반대 세상에서는 이제 도착한 것이지만 이쪽 세상에서는 떠난 것이다. '유명을 달리하다' 또한 검을 유(幽)와 밝을 명(明)으로 저승과 이승을 아울러 표현했다면 이를 '달리했다'는 말로 두 세상을 분리하고 있다.
'하직(下直)하다'는 먼 길을 떠날 때 작별 인사를 올린다는 뜻으로 살아 있던 현 세상과 이별해 나머지 다른 세계로 넘어감을 은유했다. 하늘나라는 인간이 두 발로 딛고 사는 땅과 대비되는 세계로 인간이 죽으면 영혼이 하늘로 올라간다는 인류의 오래된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죽음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은 아이들에게 타인의 죽음을 설명할 때 예외 없이 사용된다.
웃어른의 사망을 높여 이르는 '돌아가시다'는 일상생활의 대화에서 가장 흔히 사용된다. 다른 표현들이 일방향적 진행이라면 '돌아가시다'는 원래 있던 세계로 다시 복귀한다는 불교의 윤회사상이 옅게 드러난다. 낯선 곳으로 영원히 떠난다는 절망보다는 익숙한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간다는 해석으로 유가족의 슬픔과 고인의 가여움을 완화하는 전달법이다.
# 상실·소멸
21) 목숨을 잃다
22) 생명을 잃다
23) 삶을 마감하다
24) 생을 마감하다
삶과 생을 마감한다는 표현은 죽음을 인간이 경험하는 일생의 종결로 강조한다. 죽은 자가 모여 있는 다른 세계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으며 현재 살다 간 인생을 마무리한다는 측면으로 이해한다. 목숨과 생명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살아있음'을 나타내는 추상적인 표현으로 이를 상실함으로써 죽음이라는 결과에 이른다는 전개를 보인다. 모두 비유적인 표현에 속하지만 생명과 삶이라는 죽음과 대비되는 개념을 사용하여 죽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냈다는 차이가 있다.
# 죽음 상태
25) 눈을 감다
26) 눈에 흙이 들어오다
27) 영원히 잠들다
28) 영면하다
사람이 사망한 이후의 상태나 모습을 묘사하는 비유들이다. 눈을 감는 행위는 인간이 수면 중이거나 사망했을 때의 기본 상태인 것이 일반적이다. 문맥과 상황에 따라 눈을 감았다는 말은 곧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눈이 지속적으로 감겨 있는 사망한 상태를 표현할 수 있다. 눈에 흙이 들어오는 상황은 일반적으로 사망한 자를 땅 속에 매장하는 경우로 국한해 상상할 수 있다. 사망을 나타내는데 쓰이는 범용적 비유는 아니며 무언가를 완강하게 반대하거나 거부할 때 스스로의 죽음을 지칭하는 극적 표현이다.
사망한 자는 대개 누워 있는 상태에서 움직임이 없다. 사람이 잠들어 있는 겉모습과 유사하다. 또한 죽음을 영원히 깨지 않는 잠이나 긴 휴식으로 이해하려는 사고관도 반영되어 있다. 이는 영미권에서 'Rest(쉬다)', 'Sleep(잠들다)', 'Lie(눕다)'로 죽음을 완곡하게 표현하는 시도와도 유사하다. '영면(永眠)하다'는 '영원히 잠들다'의 한자어다.
29) 선종 : 착할 선(善)에 마칠 종(終)으로 가톨릭에서 쓰는 용어다. '착하게 마친다'는 한자 의미대로 사람이 큰 죄를 짓지 않고 자기 수명을 온전히 다 살다 갈 때 사용하였으나 다종교인 현대에서는 추기경이나 교황의 사망을 알릴 때 사용된다.
30) 소천 : 개신교에서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는 의미로 쓰였다. 한국 교회가 만들어 낸 말로 국어사전에는 정식으로 등재되어 있지 않다. '소천하다' 또는 '소천되다'가 혼용되고 있으나 공식적으로 권하지 않고 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하늘로 올라간다는 믿음이 드러난다.
31) 입적 : '고요함에 들어갔다(入寂)'는 뜻으로 불교에서 승려의 죽음을 뜻한다. 고통과 번뇌의 속세에서 벗어나 궁극적인 평정심과 깨달음에 이른 것을 죽음으로 이해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최고 경지인 '열반' 과도 함께 쓰인다. 개신교와 마찬가지로 이상적인 사후 세계에 대한 동경과 지향이 담겨 있다.
32) 붕어 : 임금의 죽음을 뜻한다. 평민이나 양반의 죽음과는 구별되는 별도의 표현을 갖고 있었던 왕조시대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승하'는 임금을 포함해 신분이 높은 사람의 죽음을 이르던 좀 더 포괄적인 말이다.
33) 서거 : 사거(死去)의 높임말로 현대에서 주로 대통령이나 국가원수 등의 죽음을 높여 부를 때 사용한다. 의미로만 보면 높은 신분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언론이나 관에서는 국가의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에 한정해 사용하려는 경향이 뚜렷하다. 전직 대통령의 사망을 두고 서거라는 표현에 대한 논란이 불거진 것도 서거라는 표현에 부여된 권위와 독립성이 투영된 결과이다.
나는 할머니의 죽음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을까.
"할머니가 먼저 가 기다리고 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