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북로 위 뻔뻔한 깜빡이들
새벽 출근길.
세상 어느 길보다도 달갑지 않은 그 길을 나섰다.
가능하면 늦게
가능하면 짧게
가능하면 아예 가고 싶지 않은 그 길.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은 헤프지만
한 달에 한 번 겨우 돌아오는 간절한 그것을 위해
쉽지 않은 길을 너도 나도 나선다.
일산에서 서울 강남 방면으로 이어지는 그 길.
자유로에서 강변북로,
강변북로에서 성산대교를 타고 한강을 건넌다.
아침 출근 시간대,
도로 위 대부분의 자동차는 적어도 수년 째
이 지긋지긋한 아스팔트를 영혼 없이 내달렸으리라.
이젠 네비도 필요 없이
오른발이 기억하고 양 손이 기억하는 길.
인간의 선악을 시험에 들게 하는 눈치 전쟁이 벌어진다.
강변북로에서 성산대교를 타려면
1차선을 따라가다 안양ㆍ성산대교 분기점으로 빠져나가야 한다.
그 시간대 가장 왼쪽 차선은
매일이 추석이고 매일이 스타필드 개장날이다.
강 건널 채비에
성산대교가 직선으로 보일만큼 떨어진 곳부터
차량들이 서서히 한 줄로 모여들기 때문이다.
진작에 줄을 선 준비성 있고 선량한 운전자들은
액셀보다 브레이크를 더 자주 밟아가며
앞 차와의 간격을 좁힌다.
시간이 많아서가 아니다.
영민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출근길이 즐겁고 여유로워서도 아니다.
평소 빠르게 달리든 서행하든
앞 차와의 간격을 여유롭게 두는 나는
슬금슬금 다가오는 오른쪽 녀석들에게
탐스러운 먹잇감이 된다.
작고 저렴한 국산차 앞자리는
그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먹음직스럽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그 다리가 가까워질수록
차선을 가로지르는 녀석들이 늘어나
내 오른쪽 다리도 분주해진다.
바로 앞 차에 달린 번호 네 자리가 눈에 익을만하면
새로운 네 자리가.. 아니 새로운 네가지(?)가 끼어든다.
분기점 500여 미터 전부터
붉은색으로 칠해진 1차선의 최후통첩에
더 많은 네 바퀴 벌레들은 당신 길이 갑자기 생각난 듯했다.
눈 감고도 갈 출근길 고수들의 똑똑한 실수다.
사전 깜빡이와 사후 비상등 몇 초로
한 꼬집의 죄책감과 서늘한 뒤통수를 애써 달래 볼 테지만
인내심 있는 뒷 차들은 순진한 바보가 되고
일부는 그들의 실수를 배우고 내일 아침부터 따라 하게 만든다.
나 또한 그릇이 큰 사람이 못 되는지
앞 차에 가깝게 붙이는 일이 많아졌다.
엄마 잃어버릴세라 치마 가랑이를 꼭 붙든 아이처럼.
남들보다 유난히 바쁘고
진출로를 매일 깜빡하는 운전자가
빠르게 달리는 금속 덩어리가 보호해주는 익명성을 벗어나면 어떻게 될까.
수많은 인파가 얼굴을 드러낸 곳에서도
짧고 빠른 줄에 서 있다가
입장 직전에서야 머리를 긁적이며
인기 있는 줄에 끼어들 배짱이 있는가.
도로교통법 제3장 차마의 통행방법의 제23조는 특정 조건에서 끼어들기를 금지하고 있다.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하루 벼락치기로 통과했어도
단속되면 범칙금 3만원이 부과되는 걸 몰랐더라도
선량한 뒷 차들이 보내오는 따가운 경고를
눈치채지 못할 사람은 없다.
근래 들어
순순히 양보를 해주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고민이 든다.
내가 베푼 선의는 의도치 않게 뒤차들에게 피해가 전해진다. 본인 순번이 밀리는 상황에 그들 모두가 동의해준 것은 아닐 테니.
내가 베푼 친절은 의도치 않게 잘못된 학습효과를 준다. 몇몇 호구(?)들은 결국 길을 내어준다며 믿어 의심치 않을 테니.
지하철 불법 이동상인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가성비 좋은 물건에 지갑을 여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듯이.
애석하게도 이런 고민은 늘 기꺼이 기다리는 사람들의 몫이다.
내 양보는 선인가 악인가.
앞 차가 끼어들기를 시도하면
'정말 위급한 일이 있나 보다' 하며 기꺼이 내 앞 공간을 내어주는 곳. 그만큼 스스로 양심을 지키며 상호 간의 믿음을 가진 곳.
도로는 도로 가야 한다.
양보를 고민에 들게 하는 일이 없도록.
*타이틀 이미지: 2017년 7월 어느 날의 강변북로 (다음 로드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