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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금술사 Aug 04. 2018

강박적인 한결같음

조심스러운 삶을 조심하라

제 기분에 따라 주변 공기를 차갑게 얼리거나

변덕으로 주변 사람 어깨를 굳어버리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 있다.


외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나

3대에 걸친 기피 대상이었다.


한결 같이 마음먹고

한결 같이 생각하며

한결 같이 말하고

한결 같이 행동하는

그런 사람이 되거라 하셨다.


한결같기에 예측 가능하고

변함없이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우직하고 곧은 고목 같은 그런 사람.


덕분에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엉뚱한 사람에게

나의 오염된 기분이 전해지지는 않을까

조심스럽게 살아왔다.


상사나 고객으로부터 험한 말을 듣고

기분이 잔뜩 상한 후에도

동료에겐 늘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어디 하나 티를 내면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강박을 가진 듯.


공들인 업무에서 성과를 내거나

듣고 싶은 칭찬을 콕 집어 들은 후에도

가족이나 친구에겐 늘 기쁨을 자제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어디 하나 티를 나면

프로답지 못하다는 강박을 가진 듯.


주변의 평가가 엇갈린다.


"일관된 태도로 안정적인 인물"

"기복이나 컨디션 난조 없이 신뢰 가는 사람"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무색, 무취, 무향 인간"


그리고

가장 아팠던

"솔직하지 못한 사람..."


기쁘면 기쁜 대로

화나면 화난대로

자기감정을 100%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을

혐오하기 이전에

부러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느덧

자기 자신을 있는 대로 드러내고

숨기지 않으려 해도

굳어버린 얼굴 표정과 감정 근육.

너무 늦은 건 아닐까.


무엇보다

나의 소중한 감정을 묵살하며

스스로에게 '솔직하지도' 못했다는 생각에

잠시 가여웠다.


오히려 강박스러운 한결같음이

반짝거리는 감정 뭉치에

반투명 유리를 덮어 씌운 건 아니었는지.


세상에 하나뿐인 '나'라는 사람의 존재감을

옅고 가냘프게 만든 건 아니었는지.



그럼에도 난

확신하건대

평생 한결같은 사람으로 살 가능성이 크다.


단, 한결같음의 대상은 내가 정한다.


일과 사람에 대한 나만의 가치관.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의지.

남이 보지 않는 시공간에서도 떳떳하고 올바른 행실.

 

그리고

생각과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설득할 수 있는

한결같은 태도.


스스로를 옥죄이던

감정의 코르셋 매듭을 조금은 느슨하게 조여 보는 것으로

시작하려 한다.

 

갑자기 풀어진 긴장감과 공간감이 낯설고

의외라는 상대의 반응이 두렵겠지만


허용된 틈 사이로

나는 조금 더 튼튼한 뿌리를 내려

성장해 나갈 것임에 틀림이 없다.




무더운 한 여름밤,

덥혀진 몸을 식히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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