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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퇴물 Aug 17. 2020

아이러니*irony

정의: 타인의 마지막에서 내 삶의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이기적인 마음

'돌아보다'

얼마 전 갑작스레 명을 달리 한 한 지인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피어오르는 향 뒤에 놓인 사진은 환하게 웃는 얼굴만큼이나 있어선 안될 곳에 놓인 듯 아이러니했다. 응당 영정사진이란 희끗한 머리를 쪽 진채 응시한 눈빛엔 체념이 묻어나야만 할 것 같았기에 비견되던 그 환한 미소가 더 허망하게 느껴진다. 곡소리에 마음이 무겁기도 했지만 술 한잔을 기울이고 나니 드는 생각은 이기적 이게도 '난 이제는 제대로 가고 있나? '였다.


'휴가지에서 죽음을 마주하다'

내 삶을 바꾼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물론 7년여간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도전의식이 불타오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연초에 다짐을 하고 연말이 되어서야 반성을 하던 평범함 속에서도 휴가철 때마다 비행기를 타면 까마득하게 멀어진 땅을 보며

'이렇게 살다가 죽기는 싫은데'

라는 허망한 생각이 들곤 했다. 그리고 그때만큼은 제쳐 놓고 온 보고서 더미가 아닌 '삶의 방향성'에 대한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다. 복귀하면 사표를 내고 '새로운 일에 도전해야지!'라고 굳게 마음먹기도 했지만 착륙 후 휴가지에 내딛는 첫 발부터 그 의지는 시나브로 사그라들곤 했다.


'죽음 속에서 삶을 마주하다'

정작 내 삶을 바꾼 건 도전의식이 아닌 위기의식이었다.

매년 반복된 휴가 속 크게 바뀌는 게 없던 나날 속에서 두 친구가 세 달 간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젊었을 때의 암은 굉장히 빨리 전이된다는 걸 그때서야 처음 알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 갓 태어난 아기를 자랑하던 두 친구의 텅 빈 카톡에서 먼 훗날 장성한 조카의 아픔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그리고 그렇게 두 번째 친구까지 보낸 상갓집에서 퇴사를 결정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휴가지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선 되려 죽음을 상상했지만, 슬픈 상갓집에선 새로운 도전을 실행하게 된 셈이었다.


'퇴사하고 난 지금 난 제대로 가고 있는가? '

친구가 떠난 지 2년 여가 지났다. 또다시 익숙하지 않은 슬픔을 뒤로 한채 장례식장을 나서며 문득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소 살갑지 않던 아들 전화를 반갑게 맞는 수화기 너머로

 '엄마 UN에서 이제 65세까지를 청년이라 부르기로 했데'

 '엄마도 하고 싶은 거 다 해봐' 라며

생뚱맞은 말을 건넨다. 비록 내 문제의 답은 명쾌히 내리지 못했지만 하나 분명했던 건 내가 살아가는 지금을 세상에선 이제 '청년'으로 보기 시작한다는 사실이었다. 청년의 사전적 정의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시기이니 신체는 아니더라도 아직 성장할 시간이 적어도 30년은 남았기에 찾아낼 시간은 아직 남아 있었다.


'빚지고는 못 산다'

얼마 전 광복절 방송에서 현재 우리 삶을 만들어준 독립투사에게 부채의식을 가져야 한다 라는 말이 나왔는데, 꼭 나라에 헌신한 삶이 아니었더라도 누군가의 마지막이 산 이들에게 깨달음을 준다는 점에선 망자에게 갖는 부채의식은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렇기에 먼저 떠난 두 친구에게 큰 마음의 빚이 생겨버렸다.

흔히 빚지고는 못 산다 하지 않나, 홀로 남은 청년이 갚을 방법이라곤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고 어서 빨리 답을 찾아내는 길 밖엔 없는 듯하다.


삶 속에서 다시금 익숙함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 준 지인의 명복을 빈다. 감사하고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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