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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퇴물 Mar 12. 2021

당신은 오늘 머리를 쓴적이 없다

아마도

당신은 오늘 머리를 쓴 적이 있는가?  

 

하루 종일 회사에서 바쁜 업무에 시달리다 밤늦게 돌아와 차가운 맥주 한잔을 들이키며 소파에 앉는다. 잠시 숨 돌리며 목 넘어 느껴지는 청량감에 정신 차려보면 오늘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또다시 내일 출근을 위해 핸드폰을 뒤적거리다 잠드는 밤.

사실 오늘 하루 당신은 뇌를 쓴 적이 거의 없다.


내 말을 믿기 힘들다면 한번 생각해보라. 두부반찬이 나온 점심, 엄지와 검지를 구부려 젓가락을 쥐고 손목 각도를 조정해 반찬을 집는 그 순간을 생각하며 먹었나? 으스러지지도 놓치지도 않게 적절한 힘을 계산하며 말이다. 조금 더 확장해 평소 손익은 업무는 어떻게 처리했나?

우리는 평소 머리를 쓴다 생각하지만, 사실 일상 대부분은 뇌까지 신호가 올라가지 않고 척수에서 습관화된 행동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걸 전문용어로 Central pattern generation(중앙 패턴화)라 하는데 조금 과장하자면 우린 머리가 아닌 척추로 생각하며 산다.


그렇다면 머리는 언제 쓸까? 처음 가는 장소, 처음 하는 행동 혹은 실수처럼 교정하거나 배움이 필요할 때 비로소 머리를 쓰게 된다. 초행길이 멀다가도 두 번째엔 짧게 느껴지고, 쉽게 하는 운전도 처음엔 진땀 빼던 이유가 바로 머리를 써서 그렇다. 같은 행동이 처음에 특히 고된 건 실제로 에너지가 많이 쓰여 그렇다.

그러면 다시금 묻는다. 익숙한 출근길에 손에 익은 일을 쳐내고 집에 돌아와 습관처럼 맥주를 마시는 오늘 당신은 머리를 쓴 적이 있을까?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른다는 말은 어쩌면 머리를 쓰지 않아 그럴 수 있다.

지금은 입적하신 법정스님이 늘 '깨어있으라' 설법하시곤 했는데 이게 위에서 말한 관점과도 어느 부분 닮아있다.

무슨 말이지 지금도 '깨어있는데?' 라며 묻는 당신은 '머리를 썼는데?'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불교에서 깨어있다는 건 즉 매 순간의 자각을 일컫는다. 별생각 없이 내뱉는 말, 관성에 따라 행하는 나쁜 행동 등 그 순간 알아채지 못해 행하는 습관을 인지하는 것이다. 평소 허영심에 거짓말을 내뱉으려는 나, 화나서 욱 하려는 나와 같이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나쁜 습관이 나왔구나'라는 인식이 수반되면 행동을 바꿀 수 있기에 깨어있으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눈 뜨고 있다고 깨어있는 게 아니라, 습관이 아닌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불교에선 깨어있다 라고 표현한다. 이렇게 보면 머리를 쓴다는 개념과 얼추 비슷하지 않은가?


근래에 '메타인지'라는 말이 많이 보인다. 위의 개념을 하나는 뇌과학 관점, 하나는 종교라 치면 사회과학 관점에서 부르는 게 바로 메타인지가 될 수 있다.

그럼 왜 머리를 써야 하고, 깨어있어 하며 메타인지 능력이 높아야 할까? 그건 바로 행복과 연결되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우리 삶이 상당 부분 자동화(생각 없이)로 움직인다는 건 주체성이 줄어듦을 뜻한다. 왜냐? 그 편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생각할 필요 없고 수동적으로 사는 게 그 반대보다 에너지 소모가 훨씬 덜하기 때문이다. 하루가 또 일 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는 이들은 말 그대로 인생을 자동화 벨트 위에 올려놔서 그렇다.

물론 생각 없는 삶 자체도 행복한 이들이 가장 승자다. 비꼬는 게 아니라, 법정스님도 풀은 풀처럼 새는 새처럼 나무는 나무처럼 그냥 하루를 사는 게 순리라 했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현실에 불만족스럽고 늘 화가 나며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간다. 그러면서 또 행복해지길 바란다.

그래서 벗어나려면 머리를 써야 하고 깨어있어야 하며 인지능력을 높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새로운 길이 보이고 시도를 하며 그에 따른 기회를 얻게 된다. 당연히 편하다 말할 수는 없고 행복도 보장치 못하지만 , 생각 없는 삶은 그저 불행만 하니 한번 시도해볼 법도 하지 않을까.


나는 7년간 익숙한 일을 때려치우고 처음 공부를 접했을 때 너무 힘들었다. 자꾸 도망가고 싶고 그저 날 다잡으려 노력한 일 년인 것 같다. 최근엔 내 삶에 새빨간 거짓말쟁이까지 나타나 매 순간 나를 속이니 공부던 인간관계던 늘 깨어있을 수밖에 없는 요즘이다. 그래서 난 하루가 길고 일주일이 꽉 찬다.

 

지금 삶이 불편한가? 기존과는 다른가? 그렇다면 분명 잘하고 있는 거다. 종교적으로 당신은 행복할 가능성을 찾고 있는 것이며, 머리는 열심히 가동 중일테니 말이다.

불행 한자, 더욱더 불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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