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하얘졌다.
코로나로 불투명했던 실습 일정이 급히 결정돼 3주 뒤부터 바로 시작하게 됐다. 당장 환자를 맡는 게 아님에도 머릿속이 백지가 되어버린냥 떨린다. 내가 병원을 아파서 가는 게 아닌 치료사로서 가게 되다니.. 맨날 회의자료나 만들던 회사원에서 시나브로 치료사가 되어가는 게 이제야 실감 난다.
'한 번에 칠할 생각 말고 조금씩 여러 번 덮는 게 더 깔끔하고 골라'
태어나 처음으로 페인트칠을 해본 날, 시나브로 변해가던 벽도 지금 나 같았을까.
누런 벽을 빨리 덮고 싶어 마음만 앞섰던 내 고사리 손은 치덕 거리는 통에 되려 일을 그르치고 있었다.
아버지가 그런 내 손을 가만히 덮어 쥐며 천천히 오르내리니 그 힘에 이끌려 시나브로 선명해지던 벽이 또 그 손의 따스함이 기억에 남는다.
물론, 그래도 먼 훗날 집을 떠날 때까지 울퉁불퉁한 채 남아있던 벽 한켠은 누가 봐도 어린 내 결과물이었음이 자명했다.
성인이 되어 편입을 처음 했을 때도 조급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첫 학기엔 칠한 벽에 옛 색깔이 비친 것 마냥 매사 과거가 투영되곤 했다. 느지막이 나선 등굣길에 직장인을 보면 괜스레 부끄럽기도 했고, 아침마다 입버릇처럼 '회사 다녀올게' 말하던 것도 그때였다. 하루빨리 일을 하고 싶었고 갈길이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두 학기 동안 새 칠을 했고 시나브로 치료사란 말이 자연스러워졌다.
'한 번에 갈 생각 말고 조금씩 꾸준히 해가면 돼'
이젠 흰머리가 빼곡하신 아버지의 조언이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건 내 착각인 건가.
바로 얼마 전엔 이사 간 집에 페인트칠을 하는데 옆에서 보는 아내의 표정이 영 마뜩잖다.
'왜?! 내가 해온 페인트질이 몇 년인데. 너 보다 낫구먼'
내 변명에도 연신 고개를 휘젓더니 이내 입을 연다.
'여보, 도저히 안 되겠다. 다른 색으로 하자'
'..?....!!.......;;'
청천벽력 같은 결정에 내 고생길이 훤했지만, 새로 칠해놓은 벽은 결국 아내 말이 옳았음을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
내게 어떻게 안정적인 직장을 떠날 수 있었냐 묻는 이들에게 해줄 말은 별로 없다.
그저 옛 색깔이 안 어울렸단 걸 알았고 다시 덮어버릴 용기가 섰단 말 말고는 말이다.
왜 페인트 칠에 있어 정작 중요한 건 어떤 색깔을 칠했느냐 보단 내가 어떤 집에서 살고 싶느냐가 궁극적인 목적인 것처럼 생각해보면 답은 쉽다. 그리고 그 과정은 페인트칠처럼 그저 시나브로 변해온 것뿐이었다.
변했다곤 하나 눈앞의 실습을 생각 하니 벌써 마음부터 허둥댄다. 과거 쌓아왔던 인맥과 경험마저 없어졌으니 배운다 생각했던 지난 시간이 실은 덮어지는 과정에 불과했음을 처절히 느낀다. 비로소 백지의 초년생임을 다시 체감하는 것이다.
물론, 마냥 백지란 생각만 있진 않다. 빽빽이 덮힌 과거 속에서도 한때 선배의 마음에서 후배를 바라본 경험 하나는 살아있다.
나이를 떠나 상대 경험을 존중하고 배우려는 의지가 있던 후배에게 내가 어떤 마음가짐이었는지는 업계에 상관없이 어디나 통용될 터이니 말이다.
겸손하고 손에 쥔 붓질만 놓지 않는다면.
회사를 처음 나올 때처럼. 학교를 처음 들어갈 때처럼. 치료사의 첫발을 내린 이 시점도 시나브로 익숙해질 거고 내 용기에 따라 얼마든 발전할 수 있음을 안다.
그렇게 여러 번 멀끔한 새 집을 만들어보지 않았나.
말이 긴걸 보니 역시나 긴장 되긴 하나보다.
새 소식을 듣고 설레고 떨리는 이 밤.
다가올 새 출발을 기념하며 엷게나마 책 한번 더 보러 가야겠다.
그러다보면 시나브로 스며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