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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퇴물 Mar 10. 2023

쟨 멋있지만, 나도 멋있어.

발전

꽁꽁 싸매던 겨울이 지나고 감싸기 급급했던 마스크를 벗어던지니, 사람들 면면이 신기한 요즘이다.

어제는 길을 걷다가 훤칠한 미남이 스쳐 지나갔다. 타인의 맨얼굴이 오랜만이었다기엔 유독 잘생겼기에 감탄이 절로 나와버렸다. 이어 빌딩 유리에 비친 나 자신을 보며 '나도 나름 매력 있지'라는 자기 방어적? 생각이 이어진다. 그 미남은 의도치 않게 날 공격했고 난 내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으로 방어를 했다.

짧은 스침에 자연스레 지나간 생각이 그 순간 나를 붙든다.

'어라, 내가 저 사람을 크게 부러워하지 않네'


수 억짜리 물건을 사가는 사람을 상대했고 지금도 사람을 대하는 업을 가진 난, 무심코 내뱉는 단어나 어투를 통해 성격을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 매 순간이 협상이고 이성보단 감정이 지배하는 난장판이기에 성격파악은 상대패를 읽는 첫 번째 수에 속하기 때문이다.   

위 상황을 예시로 들자면

'와! 저 사람 x나 멋있네 , 나도 멋있지'  '와! 저 사람 x나 멋있네, 나는 왜 이럴까' 그리고 '음, 잘생긴 것 같은데 뭐 딱히 내 스타일은 아니야' 정도의 웅얼거림 일 듯하다.


'비교가 가능한 순간' 내뱉은 말은 다른 것보다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단순히 감정표현을 넘어 그 사람이 세상을 보는 관점을 파악하기 가장 좋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뛰어난 외모, 많은 부, 압도적 능력과 같이 '부러워할' 순간에 사람은 원초적인 반응을 순간 내보이고 그게 그 사람의 많은 걸 말해준다.


'와! 저 사람 x나 멋있네, 나도 멋있지'

타인의 장점을 인정하고 나를 사랑하는 법을 아는 사람은 칭찬에 기꺼움이 묻어난다. '그는 그고 나는 나다'라는 세계의 분리를 통해 적절히 나를 보호하고 내 안에서 사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그만큼 의도치 않은 공격에 자유로우며 타인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할 수 있다. 받는 상처가 적은 만큼 본인 일에 매진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며 그 기꺼움 만큼 주변에 좋은 이들이 많은 가능성이 있다. 알아두면 좋을 타입이나 쉽지는 않은 타입.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대화가 가능한 만큼 이들과는 감정소모가 적은 협상이 주로 이루어진다. 다만, 감정과 이성을 쉽게 분리하기에 유리한 고지를 점유하긴 어렵다. 내가 '좋다' 생각하는 만큼 상대방도 꽤나 명확한 판단이 가능하기에 미묘한 줄다리기가 계속되기에 그렇다.


'음 , 잘생긴 것 같은데 뭐 딱히 내 스타일은 아니야'

어투나 어조에 따라 다르지만 그 이죽거림이 묻어나는 이들은. 나를 보호하는 껍질 안에 갇힌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그와 나의 세계를 분리하되 장점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은, 사실 반격을 통해 나를 보호하려는 성향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만큼 당연히 타인의 비판이나 시각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 사사로운 일에 받는 상처가 크기에 예민하고 산만할 가능성이 크다. 겉으론 이성적이고 차가운 면을 내보이나 그만큼 채워지지 못한 내실로 인해 안과 밖의 온도차가 심하다. 모든 협상에 아닌 듯하나, 감정이 앞서기에 이들과는 감정소모가 크다. 대신 그 어느 누구보다 유리하게 협상이 가능하다.

타인을 깎아내리며 얻어가는 자존감을 살짝만 충족시켜 주고 그 경계선을 잘 지키면 좁은 시각 안에 나는 '좋은 사람'으로 보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를 공격하려는 수많은 상황들 속에서 들리는 달콤한 자존감 충족은 이들에겐 거부할 수 없는 마약과도 같음을 안다.


 '와! 저 사람 x나 멋있네, 나는 왜 이럴까'

사실 이런 류의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중요한 건 '왜 이럴까' 이후 다음 행보다.

타인 인정 -> 자기 비하 후에 어떤 이들은 자기 발전을 마음먹고, 어떤 이는 나와는 다른 세상이야 하며 단절을 해버린다. 정말 '완벽'하게 태어나지 않은 이상 누구든 뛰어난 사람을 만나고 비교를 당하는데 그걸 자기 계발의 자양분으로 삼느냐의 유무가 다른 것뿐이다. 비록, 오래 살진 않았지만 이들을 수개월 혹은 수년뒤에 다시 만나면 자양분으로 흡수한 이는 기꺼움 타입이, 후자는 죽거림으로 변해가곤 했다.


사람을 관찰하는 건 참 재밌다. 그간 가려진 마스크 속 얼굴이 궁금했던 것처럼 그 사람의 속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어서 그렇다. 스스로 내뱉는 말이 어떤 모습인지 모르는 경우가 꽤 많은데 경험해 본 바 , 말은 그 사람의 태도를 보여주고 나아가 삶을 결정한다는 것에 큰 의의가 없다.


내가 '완벽'하지 않는 한 나보다 뛰어난 이들은 많다.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더 나은 삶이 된다는 건 결국 의도치 않은 공격들로부터 나를 발전시키는 방법을 찾아가는 게 아닌가 싶다.


비록 짧고 못나게 태어나도 훤칠한 미남 옆에서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빌딩 유리 속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스쳐 지나간 생각 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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