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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Oct 26. 2020

판옵티콘, 반옵티콘, 스마트 옵티콘

포스트 코로나, 초 감시 사회의 도래 #1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로 유명한 철학자 제러미 벤담. 그는 어느 날 동생이 일하는 작업장에 들렸다가 인상점인 점을 발견한다. 소수의 숙련 노동자가 다수의 비숙련 노동자를 효율적으로 관리 감독하고 있었는데 이는 작업장의 독특한 구조 덕분이었다. 제러미 벤담은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판 옵티콘 (Panopticon)이라는 개념을 창안한다.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보다’는 뜻인 ‘Opticon의 합성어인 판 옵티콘은 모두를 본다는 의미이다. 판 옵티콘의 건축 양식은 중앙에 감시자가 있고 외부에 피 감시자가 속한 공간이 원형으로 중앙을 들러 싼 형태이다. 외부의 공간에 속한 피 감시자들끼리는 서로를 감시할 수 있지만, 그들은 중앙 감시자의 상태를 파악할 수 없다. 따라서 피감시자 들은 보이지 않는 시선으로부터 항상 감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긴장 상태를 유지한다.


제러미 벤담은 판 옵티콘 건축 양식을 감옥, 학교, 병원, 병영과 같은 공공시설에 도입하면 공익이 증진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가 살아있을 당시 판옵티콘은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판 옵티콘 감시의 효율성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근현대 시대에 접어들어 기계 문명이 발전하면서부터 이다. 국가와 기업은 구성원들의 효율적인 관리와 통제를 위해 앞 다투어 판 옵티콘 건축 양식을 도입했다. 판 옵티콘 도입 덕분에 공공 위생이 개선되고 노동 생산성이 증가하는 등, 공익이 증진되며 제러미 벤담이 이루지 못한 꿈이 실현되고 그가 전적으로 옳은 듯 보였다. 미셸 푸코가 판 옵티콘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비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판옵티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판옵티콘’은 일종의 왕립 동물원이다. 단지 동물 대신 인간이, 특유한 무리 대신 개인별 배분이, 그리고 국왕 대신 은밀한 권력 장치가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그는 현대 사회의 권력과 통제 메커니즘의 기반에 판 옵티콘이 있다고 주장한다. 원래 감옥이나 병영처럼 위계 질서화된 공간에서 주로 사용되던 판 옵티콘이 사회 전반으로 확장되어 시민들이 ‘감시당하는 것을 내면화’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판옵티콘 사회에서는 권력이 규율을 만들어 시민들을 감시하고 훈육하고, 시민들은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며 권력에 순종한다.


한편, 판옵티콘뿐 아니라 반옵티콘 (Banopticon)이라는 개념도 주목할 만하다. 추방하다는 뜻을 지닌 ‘Ban’이 접두사로 쓰인 이 표현은, 감시와 규율에 순응하지 않는 자들이 사회로부터 추방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판옵티콘이 막연한 공포를 조장하고 권위를 앞세워 사람들을 훈육하는 체계라면, 반옵티콘은 체제에 적대적인 사람들을 아예 시스템 상에서 배제하는 구조이다.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대상을 명부에서 삭제해 버리고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는 점에서, 반옵티콘의 처벌은 판옵티콘의 그것 대비 더욱 무자비하다고 볼 수 있다.


디지털 빅브라더는 판옵티콘과 반옵티콘의 면모를 모두 갖추고 있다. 우선, 디지털 빅브라더가 판옵티콘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살펴보자. 디지털 빅브라더는 디지털 판옵티콘 중앙에 위치한 절대적 감시자이다. 과거에는 판옵티콘 감시자가 감시할 수 있는 대상이 고작 수 십, 수 백 명에 불과했다면, 오늘날 디지털 빅브라더가 디지털 판옵티콘에서 감시할 수 있는 대상은 수 억, 수 십억 명의 사람들이다. 디지털 빅브라더의 얼굴 없는 시선은 우리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개인 정보를 노출해가며 서로가 서로를 감시한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우리는 디지털 판옵티콘의 감시자이자 죄수인 셈이다. 물론 디지털 판옵티콘의 궁극적인 권력은 디지털 빅브라더에게 있지만 말이다. 


또한, 디지털 빅브라더는 ‘네트워크 효과’를 통해 반옵티콘을 구축하고 영향력을 행사한다. 네트워크 효과는 특정 상품 및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다른 사람들의 수요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의미한다. 디지털 세계는 네트워크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는 곳이다. 특정한 디지털 서비스가 주목을 받으면 사용자가 우르르 여기에 몰리고 관련 서비스를 제공한 기업은 시장을 선점한 대가로 승자 독식 효과를 누린다. 예를 들어, 한국인들은 카카오 톡으로 메시지 소통을 하고 페이스북 및 인스타그램에 일상을 공유하며 유튜브로 영상 콘텐츠를 시청한다. 사실 비슷한 역할을 하는 다른 디지털 서비스는 시장에 숱하게 많다. 그러나 사용자들이 해당 서비스를 사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의 주변 사람들이 이미 해당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어 편리하기 때문에 굳이 다른 서비스로 갈아탈 유인이 적기 때문이다. 


디지털 세계의 네트워크 효과는 반옵티콘의 형성으로 이어진다. 네트워크 효과를 구축한 특정 디지털 서비스에 문제가 있어도, 치명적인 결함이 있지 않는 한 사람들은 여전히 해당 서비스를 사용한다. 가령, 한때 정보기관이 카카오 톡을 사찰할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카카오 톡의 대안으로 텔레그램을 사용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보통의 한국인들은 여전히 카카오 톡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카카오 톡을 삭제하면 실시간 소통이 어려워지고 일상생활에서 불편을 느낀다. 사찰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 카카오 톡을 사용한다. 반옵티콘의 위력은 이토록 강력한 것이다.’ 진화하는 디지털 빅브라더’ 장에 소개한 각종 최첨단 기술 때문에, 앞으로 디지털 빅브라더가 감시하는 반옵티콘은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나는 판옵티콘과 반옵티콘에서 더 나아가 ‘스마트 옵티콘 (Smart Opticon)’이라는 개념을 소개하고 싶다. 영리하게 대상을 감시하는 스마트 옵티콘은 감시의 수준을 질적으로 높인다. 가령, 기존의 판옵티콘과 반옵티콘은 감시 대상이 감시자가 원치 않는 행동을 할 경우에만 조치를 취하는 다소 소극적인 감시였다. 게다가 판옵티콘과 반옵티콘은 규율과 추방이라는 무기를 통해 감시 대상을 강제적으로 억압하는 경향이 있다.


출판사 웨일북과 계약을 맺고 <친절한 독재자, 디지털 빅브라더가 온다>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해당 내용은 책의 일부이며,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스24 http://reurl.kr/213111B9DQP

교보문고 http://reurl.kr/213111B9F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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