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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Dec 21. 2022

파리에서의 단상

어느 노천카페에서

파리에 왔다. 원래 작년 이맘때 오려고 했는데 사정이 생겨 오지 못한 것을 이제야 왔다. 비행기 표를 취소하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집에서 와인 마시면서 <미드나잇 인 파리>를 봤던 기억이 있다. 스크린에 투사된 가상의 연출이었지만 충분히 좋았다. 파리에 막상 와보니 영화에 등장한 파리의 밤 골목과 비스트로, 그리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어쩌면 현실보다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재란 무엇인가. 파리에서 파리의 가상 이미지를 떠올리며 이상화하는 것이 무척이나 우습다.


연말까지 마무리해야 하는 원고가 있는데 영 손에 안 잡힌다. 파리까지 와서 일을 하기는 싫은가 보다. 써야 하는 글보다는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숙소 근처 노천카페에 왔다. 따뜻한 노란색 조명과 크리스마스트리가 인상적이다. 빗소리가 들린다. 투둑 투둑. 파리의 밤거리는 아름답게 젖었다. 나는 알코올 대신 코카콜라를 시킨다. 왜냐하면 이따 정신이 멀쩡한 상태로 재즈바에 가고 싶기 때문이다. 몇 시간 뒤면 나는 재즈바에서 라이브 공연을 본 뒤 숙소에 돌아와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잠들 것이다. 알람을 맞추지 않고 푹. 내일 아침에는 크루아상에 커피를 먹을 계획이다. 아- 좋다! 행복이 별거냐?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시간은 거의 모든 것을 용해시키고 퇴적시킨다. 사람 경험 기억 관계 느낌 등등. 나는 이것을 시간의 습격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시간의 습격을 받아 변형되거나 희석된다. 불멸의 클래식만이 시간의 습격으로부터 자유롭다. 약 10년 만에 다시 찾은 파리는 시간의 습격을 벗어난 듯하다,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파리는 그대로이다. 파리는 100년 전에도 파리였고 지금도 파리이며 미래에도 변하지 않는 파리일 테다.


한편, 파리와는 달리 난 시간의 습격의 영향을 정면으로 받았다. 자유분방한 대학생 꼬마는 신중하고 겁 많은 아저씨로 변했다. 모르는 외국인과 이층 침대를 쓰는 것을 불편해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타인과 방을 공유하는 것이 어렵다. 여행지에서 많은 명소를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한 곳에 오래 머무는 것이 좋다. 삶의 방향성 및 가치관도 많이 달라졌다. 10년간 나도 참 많이 변했구나. 앞으로도 많은 것이 변할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나이가 들어 뇌가 완전히 굳어버리기 전, 약 5-10년 주기로 사람은 다시 태어날 기회를 얻는다. 다시 태어남은 곧 기존의 그를 둘러싼 세계가 파괴되고 뇌의 회로가 새롭게 설정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태어남을 통해 성장하는 인간은 (다시 태어남을 경험하지 못한) 보통의 사람들 대비 차원 높은 인격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나에게는 죽기 전까지 다시 태어날 기회가 2-3번 정도 남아있으려나? 품격 있는 어른에 가까워지고 싶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시간의 습격은 두렵다기보다는 설레는 면이 있다. 나이 먹고 아저씨가 되는 것이 완전히 나쁘지만은 않은 이유이다. (체력과 건강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은 좀 슬프다) 누가 그러던데,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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