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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Apr 01. 2023

큰 불멸과 작은 불멸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를 보고

스포일러 주의


"이제 더 이상 네가 좋지 않아" 아일랜드의 외딴 섬마을 이니셰린에서 절친 사이였던 파우릭과 콜름. 어느 날 콜름은 파우릭에게 절교를 통보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파우릭은 콜름에게 자신이 실수한 것이 있는지, 관계 회복을 위해 무엇을 했으면 하는 지를 묻지만 콜름의 반응은 차갑다. 파우릭은 현실을 인정하기 어렵고 계속해서 콜름 주위를 맴돈다. 짜증이 난 콜름은 파우릭이 자신에게 말을 걸 때마다 본인의 손가락을 잘라버리겠다고 협박한다. 그냥 해본 말일 것이라고 생각한 파우릭, 하지만 콜름은 실제로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그들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사정은 이렇다. 콜름은 생각이 많고 진지한 사람인 반면 파우릭은 비교적 단순하고 수다스러운 사람이다. 파우릭보다 나이가 많은 콜름은 (참고로 둘 다 싱글이고 나이는 40대 중후반-50대로 추정된다) 남은 생에 무엇을 하면 의미가 있을지 신중하게 고민한 듯하다. 그가 내린 결론은 자신이 좋아하는 바이올린을 켜면서 죽기 전에 곡을 써 보는 것이다. (참고로 클롬이 작곡한 곡이 영화의 제목 이니셰린의 밴시이다) 콜름은 남은 생을 예술과 함께하기로 결심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파우릭과 일상적인 수다로  (수다에 대한 정의가 다른 것도 흥미롭다. 콜름은 이를 목적 없는 대화 aimless talk로 규정하는 반면, 파우릭은 친절하고 일상적인 대화 nice and normat chat로 여긴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콜름의 입장에서는 고역이다. 콜름의 눈에 파우릭은 사람은 좋지만, 아무런 영적 교감을 할 수 없는 '지루한' 사람이다. 콜름은 파우릭에게 부탁한다. 제발 나를 혼자 있게 내버려 둬.


콜름과 파우릭의 생각 차이는 그들이 다투는 장면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콜름, 당신 원래 친절한 (nice)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알아요?

친절함은 오래가지 않아 파우릭. 오래도록 지속되는 게 뭔지 아나?

빌어먹을 음악은 아니겠죠.

음악이지. 그림도 그렇고. 시도 오래도록 살아남지.

친절함도 마찬가지라고요!

이봐 파우릭, 17세기에 친절한 걸로 우리의 기억 속에 남은 사람 있나?

글쎄요.

없어. 하지만 우리는 그 당시 음악과 모차르트는 기억해.


위 대화는 밀란 쿤데라의 <불멸>을 떠오르게 한다. "불멸 앞에서 사람들은 모두 평등하지 않다. 작은 불멸, 말하자면 생전에 알고 지낸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어떤 인물에 대한 추억과 큰 불멸, 즉 생전에 몰랐던 이들의 머릿속에도 남는 어떤 인물에 대한 추억은 구분되어야 한다." 즉, 콜름이 추구하는 것은 큰 불멸인 반면, 파우릭이 지향하는 것은 작은 불멸이다.


손가락이 없는 상태에서도 바이올린을 키는 콜름의 모습은 마치, 최후임을 알면서도 기꺼이 활활 타오르는 짜리몽땅한 양초를 연상하게 한다. 확고한 인생의 목적이 있는 콜름은 초극하는 개인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싶어 한다. 콜름과는 달리, 파우릭은 소일거리를 하면서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이 인생의 큰 즐거움이다. 예술의 불멸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콜름에게 파우릭은 말한다. 자신은 부모님의 (비록 역사의 전당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파우릭에게 있어서는 모차르트 보다 훨씬 의미 있는 존재인) 다정함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고.


콜름과 파우릭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이지만 본디 둘 다 인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다. 콜름은 파우릭에게 시종일관 차갑게 굴지만, 옛 친구가 힘들어하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 준다. 반면, 파우릭은 화가 나서 콜름의 집에 불을 지를 때도 콜름의 신변과 강아지를 살피며 마음을 졸이는 사람이다.


영화의 엔딩은 그들이 화해할 일말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나는 동네 펍에서 파우릭과 3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말없이 맥주를 마시는 콜름의 모습을, 콜름의 '이니셰린의 밴시' 연주를 듣고는 묵묵히 박수를 쳐주는 파우릭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리하여 둘 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멸할 수 있다면,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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