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만난 사람들 ② 로마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숙소 사건 때문에 실패한 어제의 여행을 만회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길을 나섰다.
로마라는 도시 속에서 거닐다 보면,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아침마다 사과를 먹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밥은 안 먹어도 사과는 꼭 챙겨 먹곤 한다. 머나먼 에스토니아에서 교환학생을 지내는 동안에도 사과만큼은 꾸준히 먹었다.
하지만 여행 중에는 과일을 챙겨 먹는 것이 어려워서 한동안 못 먹고 있다가, 오랜만에 사과를 먹고 싶어 55센트짜리 사과를 한 개 샀다.
분위기 있게 사과를 먹고 싶어 스페인 계단 꼭대기에 올라갔다. 계단이 너무 높아서 힘겨웠다. 그리고 드디어 사과를 한 입 베어 먹으려는 그 순간 손안에 있던 사과를 놓쳤고, 빠른 속도로 굴러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어쩔 줄을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사과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깔깔대고 웃기 시작했다.
길고 긴 스페인 계단의 중간쯤 굴러갔을까, 어떤 남자의 엉덩이를 맞고 사과가 멈췄다. 가속이 붙어 무척 아픈 모양이었다. 화가 났는지 사과를 집어 옆으로 던졌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탄식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사과를 주우러 총총총 내려가기 시작했다. 앉아있던 사람들이 다시 웃기 시작한다. 너무 부끄러워서 사과를 줍고 바로 도망갔다. 결국 사과는 쓰레기통으로 버려졌다.
점심을 먹기 위해 한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그렇게 유명하다는 알리오 올리오를 시켰다. 주문받는 사람이 약간 무례한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냥 착각이겠거니 하고 넘겼다. 오랜만에 핸드폰을 확인해볼까 싶어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물으니 갈겨쓰는 글씨로 쪽지에 적어준다. 도저히 알아볼 수 없어 물으니 화를 내며 가르쳐준다.
한 이탈리안 가족이 내 옆 테이블에 앉았다. 그러더니 일찍 온 나보다 먼저 포크, 나이프 등을 세팅해준다. 하지만 그들이 음식이 아니라 그냥 음료를 마실 것이라 하자, 그들에게 세팅하였던 포크와 나이프를 갑자기 내 테이블로 옮기더니 던지듯이 준다. 그러는 바람에 포크는 뒤집히고, 나이프는 포크 위에 포개졌다. 순간 너무 화가 나서 웨이터를 불렀다.
“헤이!, 유 알 쏘 루드!!!”
내 포크와 나이프를 좀 보라고, 손님한테 어떻게 이렇게 던지느냐고 항의했다. 음식을 안 먹겠다는 말과 함께 레스토랑을 빠져나왔다. 억울하고 짜증 나는데 영어도 잘 안 나와서 항의도 제대로 못하고 나온 것이 서러웠다. 배가 너무 고팠다. 가방에 있던 쿠키를 꺼내 눈물의 식사를 했다.
바티칸 미술관에 들어가기 위해 3시간을 서서 기다렸다. (멍청하게 인터넷 예약을 하지 않았다) 화장실과 배고픔을 간신히 참고 드디어 미술관에 입장했다. 기다리는 동안 이미 기운이 빠져 미술관을 둘러볼 힘이 없어서 유명한 작품들만 보고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터덜터덜 복도를 걷는 중에 박물관 직원이 갑자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익스큐스 미”
로마를 언제 떠나느냐는 물음에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니까 1시간만 자기에 내달라고 부탁한다. 싫다고 하자 5분으로 줄인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가 있었던 전시공간을 줄로 막는다. 다른 관객들을 못 들어오게 하고, 이곳에서 함께 이야기를 하잔다. 갑자기 너무 화가 났다. 이렇게 멋진 미술관에서, 모두가 3시간 이상씩은 기다려 들어왔는데 본인만 좋자고 이런 못된 짓을 하다니. 그 자리에서 줄을 풀고 길을 떠났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었다. 예전에 누군가 이런 말을 했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남자들은 나 같은 50대 아줌마한테도 추파를 던지는데, 이런 경험 못 하면 여자가 아니야, 여자가”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