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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유 Feb 13. 2024

여동생을 통해 죽음을 처음 배웠다


지난주 목요일 아침.

끝내 항암을 견뎌내지 못하고 여동생은 하늘나라로 갔다.

55세, 아직은 죽음을 마주하기엔 너무 이른 나이에...

작년 10월 말기암 진단을 받은 지 4개월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충격적이었다.


그토록 건강하고, 작년까지도 남산을 몇 시간씩 뛰었다고 자랑했던 동생. 자신감 넘치고 통통 튀는 성격에 날씬한 몸매와 최강 동안의 미모로 어딜 가나 시선을 끌던 아이였다. 영정 사진 속에 웃고 있는 그 애의 모습은 너무나 예뻤다. 그랬기에 조문객들은 동생의 죽음을 더 안타까워했다.

"저렇게 어려 보이고 예쁜데.. 어쩌다가. 너무 아까워요."


60살이 되도록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내가 경험한 죽음은 7년 전 애완견의 죽음이 전부였다. 죽음은 나와는 아주 먼 일처럼 느껴졌다.

가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어떤 느낌일까? 상상해 본 적은 있지만 생각하고 싶지 않아 이내 다른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죽음의 첫 경험을 여동생을 통해 하게 될 줄이야...


남은 가족들의 충격은 엄청났다. 특히나 자식을 앞세운 부모님의 고통은 짐작조차 못할 만큼 아프시리라.

"내가 재작년에 아플 때 먼저 갔어야 했어. 그랬으면 이런 걸 안 봐도 됐을 텐데.."

90세가 넘으신 아버지가 절규하셨다.

"내가 살갑게 표현을 못해서 그렇지 자식들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이렇게 갑자기 가버릴 줄은 몰랐다. 못해줬던 것만 생각나서 견딜 수가 없어."

라며 꺼이꺼이 울음을 멈추지 못하셨다.


" 난 어떻게 사니? 소민이가 불쌍해서 어떡하니?"

아픈 손가락이었던 둘째 딸의 죽음은 엄마에겐 감당하기 힘든 쓰나미였다. 마치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눈빛이 초점을 잃었고 내딛는 발걸음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흐느적거렸다.

그 모습을 쳐다볼 수가 없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릴 수밖에 없었다.


여동생은 마지막 1달 반은 물도 넘기지 못하고 통증으로 너무나 고통스러워했다. 

마지막 통화할 때 " 언니 나 너무 아파. 한 달 넘게 아무것도 못 먹었어. 몸무게가 37kg이야. 언니가 제일 보고 싶어. 언니가 날 부르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해. 나 언니를 너무너무 사랑해. 그리고 난 언니 마음 다 알아.

내가 언니한테 잘못한 거 다 용서해 줘.. 미안해"라며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겨우 말하며 흐느꼈다.


" 아니야 용서하긴 뭘 용서해. 난 네가 항상 안쓰러웠어. 나도 너 많이 사랑해. 하나님께서 꼭 살려주실 거야. 희망을 버리지 말고 잘 이겨내야 돼." 난 기적이 일어나길 간절히 바랐다. 아니, 꼭 다시 일어나서 남산을 뛸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여동생은 그다음 날 응급실로 갔고 이틀 후 병원에서 임종면회를 오라고 했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은 건가? 설마, 진짜로, 이게 사실이라고? 믿을 수 없어.' 

병원으로 가는 내 가슴은 두근두근,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다.


가족 한 명씩 면회실로 들어갔다. 여동생의 외동아들인 조카가 함께 있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여동생은 멍한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제일 보고 싶었어..." 남은 생명을 짜내서 말하는 듯했다.

이미 여동생의 얼굴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난 터져 나오는 울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미안해 미안해. 더 일찍 찾아오지 못해서..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여동생의 손을 잡고 기도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하자 여동생은 힘을 다해 "아멘"이라고 했다.

"하나님 소민이를 살려주세요. 죽은 자도 살리시는 주님이시잖아요. 꼭 다시 건강을 회복하게 해 주세요."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붙잡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날밤 나의 바람과는 달리 여동생의 증세는 더 악화되어 중환자실로 가게 되었다.

그다음 날 저녁 "띠리링" 전화벨이 울렸다. 남동생이었다.

"누나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의사가 병원에 오라고 불렀어." 늦은 시간이었지만 정신없이 옷을 입고 병원으로 향했다.

'정말 죽는다고? 난 믿을 수 없어. 이렇게 허무하게 간다는 게 말이 되냐고.' 가는 택시 안에서 난 반쯤 넋이 나갔다.


병원에 도착하자 남동생과 조카가 도착해 있었다. 나와 남동생 둘, 조카가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면회를 하러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는 분들이 각종 기계에 의지하여 삶을 이어가는 모습이었다.


여동생의 얼굴은 푸르스름하게 변해있었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손은 피가 돌지 않는지 보라색이었다. 차마 그 모습을 보는 게 억장이 무너지는 고통이었으나 봐야만 했다. 여동생의 살아있는 마지막 모습일 테니..


눈은 우리를 쳐다보는 듯했으나 초점이 없었고 한 번도 깜빡이질 않았다. 볼 수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들을 수는 있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보는 마음은 날카로운 유리조각으로 생살을 도려내듯 처절하게 아팠다. 


" 엄마 하나님이 살려 주실 거예요. 이겨내셔야 해요. 엄마 너무너무 사랑해요. 그동안 엄마에게 틱틱거리며 말했던 거 너무 미안해요. 내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는데.. 미안해요."

면회를 하는 모든 식구들은 조카의 말에 모두 울음바다가 되었다.


남동생은 "누나 사랑해. 누나는 소중한 사람이야. 그리고 아들 걱정은 하지 마. 내가 내 친자식처럼 돌볼 거야. 잘 키울게." 담담하게 말하는 동생도 마음으론 수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아침 여동생은 숨을 거두었다.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했다고 했다.

내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은 고통 없고 슬픔 없는 천국으로 갔다. 그렇다고 확신한다.


'소민아 그곳은 어떠니?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라고 하는데 정말 얼마나 아름답니? 꿈속에서라도 언니에게 알려주렴. 넌 뭐든 언니한테 다 얘기했잖아. 기다릴게."


이제 여동생이 간지 5일이 지났다. 아직은 감정이 오락가락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아무렇지 않다가도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그럴 때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폭포수 같이 눈물이 났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충분히 슬퍼하며 여동생, 여동생과 함께한 추억, 죄책감과 후회, 아쉬움, 모든 감정들을 잘 애도하며 떠나보내는 기나긴 과정이 남아있다.


죽음은 바로 우리 옆에 있었다는 걸, 그래서 더 잘 살아야 한다는 걸, 더 많이 사랑하고 표현해야 한다는 걸, 여동생의 죽음을 통해 배웠다.


'소민아 그곳, 천국은 얼마나 아름답니? 거기서는 행복한 거지? 모든 사람들에게 젊고 예쁜 모습만 보여주고 떠나간 너. 오래오래 그 모습 기억할게.

다시 만날 때까지 거기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야 돼! 이 땅에서의 삶이 고달팠던 만큼 더 행복하길 언니가 간절히 기도할게... 사랑해... 내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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