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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유 Mar 28. 2024

부치지 못할 편지

하늘나라에 있는 너에게


소민이에게


네가 하늘나라로 간지 1달이 넘었네.

넌 거기서 잘 지내지?

난 그럭저럭, 하루하루 살아가는 중이야.

덜 자주 웃고 더 자주 우울해.

나에게 하나밖에 없는 자매지만 우리 관계는 좋지만은 않았지?


어린 시절부터 난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한 널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질투했어. 나와는 달리 예쁘고 당당한 널 선망했고,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워도 했지. 또 나에게 날 선 반응을 할 때는 네가 밉기도 했어. 하지만 동생이기에 다시 연락이 오면 미웠던 마음은 스르르 녹고 네가 좋았어.


나이 들수록 서로 의지하고 힘이 되어 주기도 했지.

그러다가도 별일 아닌 일에 또 서운해서 연락을 끊고, 그러다가 슬그머니 네가 연락하면 반가운 마음에 또 받아주고.


누구보다 건강하다고 믿었던 네가 말기암 진단을 받았을 때 난 내가 암진단을 받았을 때보다 더 큰 충격에 휩싸였지.

"아아악 안돼!!!" 절규하며 처음으로 하나님을 원망했어.

"하나님 소민이는 안 돼요!! 소민이도 암이라니요?

그렇게 씩씩하던 애가 암이라니요? 말도 안 돼요.

제발 소민이는 지켜주세요."


"5년 동안이나 건강 검진을 안 한 게 말이 돼? 엄마랑 언니가 암이었는데.. 말이 되냐고.."

 마음을 공감하기보다 책망하는 말이 나오더라.

나의 그런 반응에 넌 무섭다며 날 비난했어.

나도 왜 그런 반응을 했는지 생각하고 생각했어.

사실은 나도 무서웠던 건가 봐. 

네가 나보다 먼저 죽는다는 건 상상조차 안 해본 일이었기 때문에...


네가 마지막 쓰러져 응급실에 가기 전날 통화할 때

1달 이상 물도 못 마셔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나 언니 너무너무 사랑해. 며칠 전부터 언니가 계속 꿈에 나오고, 제일 보고 싶어. 언니가 날 얼마나 사랑했는지 언니 마음 다 알아.. 언니는 항상 착하고, 나에게 잘해줬어. 미안해. 언니 암수술하고 외롭게 있을 때 더 잘해주지 못해서.. 얼마나 외로웠을지.. 언니한테 못돼게 했던 거 다 용서해 줘.

난 언니 너무너무 사랑해.." 숨을 몰아쉬며 겨우 말을 이어갔지.


가슴이 미어졌어. 네가 죽는다는 건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어. 끝까지 거부하고 싶었어.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용서하긴 뭘 용서해. 나한테 넌 항상 안쓰러운 존재였어. 네가 나쁘게 대할 땐 잠깐 네가 미운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난 항상 네가 좋았어. 나도 그동안 연락 못하고 옆에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리고 하나님께서 꼭 살려주실 거야. 희망을 버리면 안 돼. 사랑해."

그게 마지막 통화가 될 줄이야...


그날 하지 못한 말이 있어.

미안해.

너를 더 이해하고 용납해주지 못해서,

좀 더 어른스럽게 널 안아주지 못해서,

나랑 더 많은 시간 얘기하고 싶어 했던 네 얘기 더 오래 들어주지 못해서.. 뭐든 다 나한테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너인 거 알면서도 피곤하다는 이유로 전화를 짧게 끊고..


용서해 줘. 

너무 후회스러워. 얘기 들어주는 게 일인 상담사인데 그깟 동생 얘기 들어주는 게 뭐 그리 힘들다고..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그렇게 짧다는 걸 몰랐어. 겨우 3개월밖에 안 남았었는데..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너와의 예쁜 추억을 더 만들고 싶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네가 먹고 싶어 하는 거 실컷 먹게 해 주고 여행도 자주 가고..

하루하루 더 소중하게 보냈다면 덜 슬펐을까?


소민아. 네가 많이 보고 싶다.

7년 전 겨울, 우리 둘이서만 강릉의 바닷가를 찾았었지.

파도가 세차게 치는 바닷가를 열심히 달리며

"우리 행복하자"를 외쳤었잖아. 그 이후 우린 행복했을까?


중저음의 목소리, 장군 같은 걸음걸이, 뛰어난 패션 감각으로 멋지게 등장하던 네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호탕하게 웃던 그 웃음소리도 듣고 싶다.


천국에서도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어.

거기서도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쟁이겠지.

언젠가 우리 만나게 되는 날,

"언니~~"하며 소리치며 달려와서 안아줄 거라 믿어. 그리고 그곳을 소개해 줄거지?

그때는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 실컷 나누자.

사랑하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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