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
어젯밤 서울에서 도망쳐 왔다. 12월 3일 밤 비상계엄 사태가 내겐 큰 충격이었나 보다. 집이 내곡동 국정원과 성남공항 근처라 평소대로 헬기가 뜨고 내리고, 비행기 소리가 들리는 것일 텐데도 그런 소리가 들리면 ‘무슨 일이 또 생겼나.’ 싶은 걱정과 함께 심장이 빨리 뛰고 불안해졌다. 심지어 헬기가 뜨지도 않았는데 멀리서 헬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환청까지 생겼다. 다행히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엔 불안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헬기 소리가 들리면 무슨 일이 생겼나 싶고 무서워졌다. 그런 심리 상태이다 보니, 수면장애도 따라왔다. 자다가 악몽을 꾸는 것은 예삿일이고, 한번 깨어나면 쉽사리 다시 잠들기가 어렵다. 깨고 나면 꼭 핸드폰을 확인해 무슨 일이 있었나 확인하는 건 비단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어제 서울에서 멀리 도망쳐 왔음에도 불구하고 간밤에 또 군인들에게 쫓기다 양팔과 양다리 사지가 네 명의 군인에게 붙들려 옮겨지는 악몽을 꿨다.
안다, 윤석열의 내란이 성공했다 하더라도 당장 나의 밥 먹고 살고, 운동하고, 친구들 만나는 일상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속속 드러나고 있는 사건의 전모는 그렇지 않음을 가리키긴 한다만….) 하지만 나의 계엄으로 인한 불안은 아마 헌법에서 보장되었던 ‘언론 · 출판 · 집회 · 결사의 자유’가 제한되었을 때 창작자의 본능적 불안에서 기인한 건지도 모른다. 한때 그들 당의 전신인 사람들을 비판했고, 시사 프로그램 재직 시에는 그들의 우두머리 같은 이를 추적한 적도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대도 큼직한 일들에 조력했고, 본능적으로 나 또한 사찰과 감시의 대상, 즉시 체포 · 납치 · 사살 대상은 아닐지언정 블랙리스트 그룹 티어 D나 E 정도에 내 이름자 석 자가 포함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그리고 앞으로 내가 써나가야 할 나의 작품들에 대한 검열, 침해된 사상의 자유, 그리고 그렇게 검열당하는 나의 작품은 오롯이 나의 작품이고 나의 세상일 수 있을 것인가. 한 줄로 얘기하자면 창작자로서 존재의 위협. 그래서인가, 불안함은 지속되었고 그 때문에 급히 서울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계속되는 긴장 상태와 스트레스, 그리고 수면장애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메니에르병의 고통이 다시 나를 덮쳐오고 있어서. 서울에서 가장 먼 곳으로, 가족들도 없고 지인도 없는 곳으로. 명분은 요양과 내년 계획 세우려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겠다는 거였는데 결론적으로는 잘 떠나왔다 싶으면서도 아니기도 하다. 조용하다 못해 적막한 숙소, 그리고 나를 옭아매는 모든 것들로의 자유. 하지만 여전히 뉴스 보도에 귀를 기울이고, 새로이 밝혀진 사실에 분통을 터뜨리고, 모든 게 잘될 거라며 애써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까지. 이래서야 떠나온 보람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멀어져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물속에서 물 밖의 파도와 일렁임, 그리고 수면에 반사된 빛이 어떻게 반짝이는지 알아챌 수 없는 것처럼. 그 안에서는 자각하지 못하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런 것들은 한 발짝 혹은 아주 멀리서 바라봐야 알 수 있게 된다. 이곳에 머무르는 며칠간 안정 및 세상을 보는 통찰력과 혜안을 좀 더 챙겨 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