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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hyuk kim Sep 07. 2020

친구야 네가 틀렸어

어느 한 계절의 초대장을 받고서

울적할 시기니까 울적한 게 당연하지. 친구가 말했다. 나는 네가 담담하게 말하길래 또 한참 전 일인 줄 알았지 뭐야. 그땐 다 그래. 일이 바쁠 땐 괜찮다가도 자기 전에 누우면 화도 났다가 눈물이 나기도 하고 그런 거지. 다 괜찮아. 대신 너무 무리하지만 마. 스스로를 북돋으려고 애쓰지 말라는 말이야. 


일은 할만하고? 뭐, 일은 다 어려운 거지. 그래도 흥미를 붙였다니 다행이네. 음, 좋아 보이네. 가능성도 있어 보이고. 앞으로 점점 더 전망 있는 분야 아냐? 일단 열심히 한번 해봐. 사직서는 다들 가슴에 품고 사는 거지. 아, 근데 아니겠다 싶으면 버티지 마. 몸 버리면서까지 버텨야 할 일은 없어. 


우리 25, 26살일 때 기억 나? 그땐 우리 다 늙어버린 줄 알았잖아. 10대부터 알고 지내 온 친구가 말했다. 지금 생각하니까 뭐든 할 수 있는 나이였어. 일도, 공부도. 한국은 나이에 너무 연연하는 거 같아. 나는 그냥 올해부터 내가 서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 충격 좀 덜 받으라고. 10년 후의 우리는 오늘 우리를 부러워하지 않을까?


아 근데 너는 책 많이 읽지? 카페를 나서며 친구가 말했다. 부럽다. 나는 책을 거의 안 읽어. 아니 못 읽어. 근데 이제 책을 안 읽으니까 뭐랄까, 사람이 생각의 폭이나 이런 게 제한되는 거 같아. 표현력도 더 안 늘고. 글 쓰는 사람들 보면 정말 대단한 거 같아. 나 책 몇 권만 추천해주라.


우리, 건강하자. 코로나 조심하고. 내가 말했다. 그리고 집으로 오면서 마저 하지 못한 말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무심한 듯 너라면 잘하겠지,라고 말하는 걸 들으며 단단한 위로가 무엇인지 배웠고 언제든 포기할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있다는 걸 알려주는 그 말에 세심한 배려가 무엇인지 배웠다고. 


한 가지는 네가 틀렸다고. 생각의 폭을 넓히는 데 책 같은 건 전혀 중요하지 않으며 누군가 글을 쓰는 건 더 대단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기 위한 거라고. 그렇게 말과 마음을 곱씹고 곱씹으며 걸었다. 걷다 보니 내 그늘이 조금 걷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금은 벅차올랐고. 어느 한 계절의 반듯한 초대장을 받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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