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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ru Oct 20. 2016

오래 전, 그대로의 아름다움

케냐산 등반기 (2) - 4,200m까지의 기록

아침 6시 20분. 낡은 베이스캠프에서 차가운 산의 밤공기를 온전히 느낀 하룻밤이 지났다. 짐을 최대한 가볍게 하고, 따뜻하게 입으라는 조언에 따라 준비를 마치면 따뜻한 아침식사를 준비해주신다. 아침을 먹으며 정신도 챙기고, 씻고 준비하며 나오자 가이드가 급히 불러냈다. 건너편 산에 움직이는 까만 점을 가리키며 케냐산 야생 코끼리라며, 실제로 본 우리가 매우 행운이라고 흥분해서 말해준다. 그렇게 코끼리가 살고 있는 케냐산 등반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어제와는 다르게 시작과 함께 수풀 사이 산길을 걸었다. 뒤에서 우리를 챙겨주던 가이드도 앞장서서 길을 안내해주었다.

한국에서도 나는 등산에 큰 취미가 없었다. 그래서 이 여행도 큰 자신이 없었고, 고산병도 조금 무섭기도 했었다. 산길은 훨씬 더 큰 힘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다행히 고산증도 없고, 가이드도 무척이나 천천히 걸어주었기 때문에 조금씩 조금씩 풍경을 만끽하며 산을 올랐다. 


어느 정도 오르자, 내내 끊임없이 쉬고 싶었지만, 나를 둘러싼 케냐산의 아름다움이 너무 압도적이었다. 물길을 건너고 점점 더 안으로 들어갈수록 화창하고 더웠던 날씨도 순식간에 안개가 뒤덮이며 쌀쌀해지기 시작했다. 케냐산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많다. 울창한 나무가 아니라 케냐산의 특이한 기후에 맞게 적응해서 살아가는 식물들은 케냐산만의 독특한 멋을 보여준다. 힘들 때마다 눈앞에 펼쳐진 케냐산의 웅장한 모습이 머리가 어지럽게 하기도 했다.


등반은 힘들었다. 가이드가 제시하는 쉬는 시간도 모자라다 느껴지기 시작했고, 멋진 풍경을 찍어야 한다는 핑계로 잠시 쉼을 갖는 꼼수도 부려보지만, 곧 깊은 피곤함이 몰려왔다. 그러다 절반쯤 되면 멀리서 나의 짐과 식량을 들고 험한 길을 오르는 요리사와 포터가 보인다. 갑자기 깊은 피곤함보다 더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리스펙트'한다는 말이 튀어나온다. 지친 나에게 큰 동기부여였다.



그렇게 산을 넘고, 물을 건너고 나면 셰프님이 정성스럽게 싸주신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점심을 먹고 한숨 누워있고 싶지만 어느덧 꽤 올라온 산은 잠시라도 가만히 있으면 스산한 추위가 몰려오기 때문에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하늘에서는 공기알만 한 우박이 사정없이 쏟아졌다. 세상에나. 


기후가 갑자기 바뀌면서 케냐산의 풍경도 바뀌었고, 더 깊이 들어갈수록 사람의 발길이 드문 이곳은 아주 오래전, 몇 만 년 전부터 이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을 것 같은 모습으로 신비로움을 더한다. 험한 기후를 이겨내고 케냐산에서 살아가는 특이한 식물들이 산 전체를 뒤덮은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고대시대에 들어온 느낌이다. 영화 '아바타'가 생각나기도 한다. 

4,000m를 넘을 때쯤, 고산증 증세가 시작됐다.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아프고, 걸음은 점점 느려지고.. 가이드 뒤를 바짝 따라붙었던 나는 자처하여 꼴찌가 되었다. 가이드는 목표지점이 보인다며 곧, 도착이라고 나를 응원했지만, 한 치 앞도 못 갈 것 같은 나에겐 힘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8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사계절을 맛본 케냐산의 4,200m Shipton캠프에 도착한 순간 첫날과는 다르게 바로 침대로 향해 잠을 청했다.


한 시간쯤 뒤, 한숨 자고 나니 고산증도 나아졌고, 가이드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다 어서 밖에 나가보라고 보챘다. 나가서 풍경 좀 보라고. 사실 좀 더 누워있고 싶었는데, 그의 따뜻한 위로와 걱정에 감사해서 차 한잔을 만들어 나간 순간. 


눈 덮인 아름다운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는 절경이었다. 



그 순간 정말 거짓말처럼 없던 기력이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다시 한번 케냐산은 나를 힘껏 환영해주었다. 한참을 빠져 바라보고 있자 가이드가 옆에 살짝 와서 왼쪽 봉우리가 내일 오를 곳이라며 가리킨다. 걱정스러운 내 마음을 읽었는지, 내일 일출을 볼 거라서 새벽 2시 30분에 올라가야 한다는 말을 하고 저녁을 먹으라며 들어갔다.

 

Lenana Point에 오르기 전, 총 3개의 그룹에서 한 그룹은 더 이상의 일정을 포기했다. 아무래도 고산병이 심해진 탓인 것 같았다. 우리는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다음날 새벽의 일정을 준비했다. 그렇지만 잠이 오지는 않았다. 기대감보다는 사실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과 좋은 컨디션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인 것 같았다. 숙소 앞에서 한참 찍은 사진을 보다가 그래도 이 아름다움 안에 있음에 감사하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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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산 2일 차 스케줄]

06:20 기상 및 아침식사(팬케이크, 프렌치토스트, 과일)

07:20 등산 시작

무한 반복의 쉼

13:00 점심(3단 샌드위치, 삶은 계란, 과일, 음료수) 

무한 반복의 쉼

16:30 4,200m 2차 베이스캠프 SHIPTON CAMP 도착

18:00 저녁식사(호박 수프, 닭고기 요리, 야채볶음, 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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