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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밀리H Sep 02. 2023

04. 매번 어긋나는 식성

차라리 이슬만 먹고살고 싶어요.

내가 어릴 때 아빠가 식탁 앞에서 수산물 타령, 특히나 생선 타령하는 것이 너무도 싫고 지긋지긋했다.


수산물이 비린내 나고 맛이 없어서가 아니다.


지금의 나는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좋아하는데....


그때 당시에는 다른 친구들처럼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치킨, 피자, 햄버거 등을 먹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한이 맺힌 듯... 지금도 가끔 아빠와의 어긋나는 식성 때문에 거부감이 먼저 들 때가 있다. 


나이가 많은 아빠는 물고기를 너무 좋아해서 내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들을 외식 메뉴로 허용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남들과 같은 외식 메뉴를 고를 거란 생각을 빨리 접는 것이 마음 편했다.


김치도 맵다고 물에 씻어 먹는 유치원생에게 붕장어 회와 초장을 들이미는 것도 모자라서 매운탕이 끝내준다며 먹어보라고 종용했던 사람이 나의 아빠다.


...


이러니... 음식들을 경건하게 좋아하는 마음을 가질 수가 없지 않은가?


아빠가 외식 메뉴를 선택할 때 1순위는 회, 2순위는 고기 3순위는 중화요리였다.


어쩌다 한 번씩 명동에 유명한 돈가스 집을 데려간 적도 있고,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토요일마다 치킨을 시켜 먹기도 했다. 하지만 주말마다 먹는 치킨도 아빠는 많이 건드리지 않았다. 


다 같이 맛있게 먹자고 시킨 치킨인데 우리 가장 님이 맛있게 드시지 못하니 '생선회가 아니라서 잘 안 드시는 건가?'라며 눈치를 보게 됐다.


치킨은 거의 유일하게 남들처럼 선택하는 외식 메뉴였지만 아빠 눈치 본다고 엄청 좋아하는 척도 못하고 가끔씩은 맛없게 먹는 척도 하고 그랬다.


그래서 결국... 토요일 가족 치킨 회식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언제부턴가 삼겹살을 사 오거나 차돌박이를 사 오면 집에서 구워 먹는 일이 많아졌다. 하지만 먹기 위해 식탁 세팅하는 것에서부터 다 먹고 나서 주변에 튄 기름과 상 정리를 하는 것이 너무도 귀찮았다. 그리고 기름 잘잘 흐르는 살코기를 한두 점 먹을 때는 괜찮은데 그 이상은 쉽게 질려서 안 먹고 딴짓하는 일이 많았다.


그냥... 나는 고깃집에 가서 고기를 구워 먹는 것보다 시원한 냉면 먹는 것이 더 즐거울 나이였다.


나는 구워 먹는 고기보다 물에 빠진 고기가 더 좋았지만 취향이 확실해질 나이가 아니라면서 의견을 존중받지 못했다.


그렇다면... 아빠 말처럼 내가 구운 김치, 파채, 구운 마늘, 쌈장, 그리고 쌈채소와의 훌륭한 조화를 알지 못했던 나이여서 그랬을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여기에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추가되어야 한다.


아빠는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질릴 때까지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다.


내가 어릴 때 아빠는 '제크' 또는 '웨하스'에 꽂혀서 마르고 닳도록 그것만 사 와서 먹었다. 그러다가 여름이 되면 '누가바', '브라보콘' 아이스크림이 맛있다면서 거의 사재기 수준으로 쓸어와서 냉동실에 그것만 채워놓고 먹었다.


그런데 어린이 입맛에는 제크는 밋밋하거나 텁텁함 그 자체였고 웨하스는 부스러기 잔뜩 떨어지는 치아 건강이 시원찮은 어르신들을 위한 과자처럼 느껴졌다. 누가바는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열었을 때 눈길조차 주지 않는 그런 먹을거리였고, 그나마 브라보콘한테는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동안 아빠 덕분에 질리도록 먹어서 지금까지도 안 먹고 있다.


아빠가 진한 초콜릿 또는 캐러멜이 잔뜩 들어간 아이스크림에 꽂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상상을 해봤다.


아니면 아빠가 언니와 나의 취향을 고려해서 매번 다양한 간식거리를 사다 주셨다면 불만 없이 먹었을 거라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나의 인생에서 그러한 기적은 없었다.


이러한 아빠의 특성 때문에 한동안 삼겹살을 지겹도록 먹었고, 제육에 꽂혔을 때는 양념을 만들어 고기를 재워놓는 일 때문에 엄마가 귀찮아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구워 먹는 고기에 큰 감흥이 없는 편이다.


계속해서 어긋나는 식성 때문에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가족들과 외식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본인 입맛에 맞는 음식만 강요하는 아빠랑 같이 외식하는 게 부담스럽고 싫었다.


그래서 아빠 나이가 많아서 입맛도 같이 늙은 거라고, 계속해서 어긋나는 식성에 대한 불만을 나이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아빠의 식욕이 한풀 꺾일 때가 있었다.

아빠가 50대 후반에 건강상에 큰 위기를 겪으면서부터였다.


갑자기 구워 먹는 고기를 너무 자주 먹으면 안 된다면서 한동안은 동물성 단백질을 멀리했었다. 하지만 한창 성장기 막바지였던 내가 어릴 적부터 그나마 잘 먹었던 양념갈비가 떠올랐는지... 아빠는 나를 챙겨줘야 하는 생각으로 자꾸 양념 돼지 갈비만 사다가 구웠다. 그리고 전혀 내 취향인 적이 없었던 음식들을 아무거나 사 와서 냉장고에 처박아두고 안 먹는다고 잔소리를 해대기 시작했다.


몇 년을 양념 돼지 갈비와 취향과 맞지 않은 음식들을 주야장천 먹어야 했다.


그래서 먹는 것이 질렸다. 


아마 주변 사람들은 나의 이러한 스토리를 몰라서 내가 먹을것에 둔하거나 까탈스럽게 군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예 안 먹는 것도 아닌데 뭐 먹으러 가자고 하면 메뉴 결정을 잘 못하거나 맛에 대한 평가를 잘 못 내린다. 그냥 남들이 하자는 대로 묻어가려고만 하는 모습 때문에 답답해한다.


하지만 지금 나의 식성과 먹을 거에 대한 생각은 개인적인 취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나이 많고 취향 독특한 아빠와 반복적으로 식성이 어긋난 이유가 크다. 


70대에 접어든 아빠는 점점 미각이 둔해졌고 더불어 먹을 걸로 건강을 챙기려는 욕구는 날로 심해졌다.

 

아빠와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30대가 되면서 기초대사량도 떨어지고 소화력이 점점 더 약해져서 활동량이 적거나 속이 더부룩한 날에는 끼니를 거르거나 가벼운 음식으로 식이 밸런스를 맞추는 날이 많아졌다. 


그래도 아빠를 위해 음식을 할 때면 신경 써서 나에게 적정한 간보다 세게 한다. 몇 번 내 간에 맞췄다가 밋밋하다고 아빠 멋대로 양념 더 치다가 나랑 싸운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맞춘 간도 그렇게 싱겁지는 않다. 그런데 미각이 둔해진 본인에게 조금이라도 슴슴하면 음식 자체가 밋밋하다고 여긴다. 그래놓고 아빠와 비슷한 나잇대에 주변 사람들보다 자신은 싱겁게 먹는 편이라면서 짜게 먹는 사람으로 몰아세우지 말라고 화를 낸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자신에게 맞을지 안맞을지 모르는 민간요법 정보를 가져와서 어설프게 따라먹거나 자신의 수용 능력보다 과하게 챙겨 먹는 집착스런 고집이 이어졌다. 


옆에서 보고 말려도 소용이 없다. 


매일 시간 맞춰 먹어야 하는 양약이 늘어난 서러움 때문에 음식으로 건강 챙기려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너무 과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장기에 부담이 되고 악순환이 반복될 거라 말해도 듣는 척도 안 한다.


이건 내가 70대의 서러움을 이해 못 하는 거란다.


그렇게 건강식에만 집착하면 덜 걱정하겠는데... 정작 아침, 점심, 저녁 끼니때 먹는 음식 테마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자극'과 '고열량' 그 자체다. 


심지어 삶아 먹는 고기뿐만 아니라 구워 먹는 고기에 대한 열정이 다시 샘솟기 시작하면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메인 재료만 사다 놓으면 내가 어떻게 해서라도 만들어내니까 날씨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눈에 보이는 먹고 싶은 재료를 사 오는 일이 많아졌다. 


이전에는 이런 아빠의 특성 때문에 엄마가 시달렸다면, 이제는 엄마가 없으니 내가 그대로 물려받아 시달리는 꼴이 됐다. 


나도 참을 만큼 참았다는 생각 때문에 아빠 식성을 고려하지 않고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배달시켜 놓은 후 아무 소리 말고 드시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아빠 본인도 끼니를 챙겨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깡패 같은 딸의 행동에 반항도 못하고 드시기는 한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튀어나오는 불만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옛날에 어느 지역에 가면 이 음식이 그렇게 맛있었다는 둥, 지금은 그런 맛을 찾을 수 없다는 둥... 결국 맛이 없다는 얘기를 정성스럽게 돌려 말하는 아빠의 모습에 화가 나 버럭 성질을 낼 수밖에 없게 만든다. 


아빠 취향에 맞게 음식을 시켜 먹거나 집에서 만들어 먹어도 마찬가지다. 기껏 먹고 싶다는 걸로 차려놨는데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젓가락 놔버리고 정제된 탄수화물 덩어리의 주전부리를 먹으면서 한참을 먹고 있는 사람 면전에다가 불만을 퍼붓는다. 


이러한 실상 때문에 결혼한 언니네가 와서 외식이라도 할라치면 메뉴 선택 때문에 고민이 크다. 모두의 만족을 이끌어내는 건 어려운 일인걸 잘 알고 있지만 누군가의 불만족이 접수되는 순간에는 기운이 쪽쪽 빠진다.


그래서 나는 가족끼리 다 같이 뭐 먹자고 하는 날에는 신경이 곤두서있다.


행여라도 아빠 본인 취향을 제대로 저격하는 음식이 식탁에 있는 날에는 젓가락이 쉴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인다. 이때 먹는 속도가 말도 안 되게 빨라지는데 천천히 먹는 나를 고려하지 않고 양껏 다 먹은 후에 하는 말이 있다. 


"아빠가 다 먹어서 어떡해? 네가 먹을 게 없네?"


진짜 얄밉다. 


먹을 때는 뒤도 안 돌아보고 젓가락질해놓고선 양껏 충분히 다 먹은 후에야 상대방 생각해 주는 척한다. 


이래놓고 평소에 내가 까탈스럽고 예민해서 내 눈치 보느라 먹고 싶은 거 마음껏 못 먹는다는 말을 할 때면... 어디론가 증발해버리고 싶다. 


그렇게 증발하면 그곳에서 내 속이 편안하고 내가 원하는 음식들로만 구성해서 우아하게 먹고 싶다.


차라리 이슬(?)만 먹고사는 게 낫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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