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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우 Jun 02. 2024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

이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에 썼던 글을 조금 수정해서 올립니다.

 

 2017년 3월 29일. 8살 난 여자아이가 사라졌다. 부모는 곧장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아파트 cctv에서 어떤 여자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을 확인, 건물을 수색했다. 그리고 아파트 옥상 물탱크에서 살해당한 아이를 찾았다. 사체는 훼손되어 있었다. 경찰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탄 여자를 긴급체포했다. 그녀는 이제 17살이 된 김양이었다. 


이 사건의 범인들의 신상은 이미 언론을 통해서 밝혀져 있기에 조금만 검색해 보면 다들 있을 것이다. 


 수사과정에서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김양이 아이를 살해하고 사체를 훼손 처리하는 과정에서 사체 일부를 sns를 통해 알고 지내던 박양에게 선물했다는 것. 박양은 혐의를 부인했으나 공범으로 구속되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급속도로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자극적일수록 많이 알려진다. 사람들이 찾아보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말이 나왔다. 미국 드라마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주장도 나오고 잔인한 게임을 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게임 많이 하니까 게임중독되었다는 식의 이런 논리는 좀 유치한 편이다. 우리가 신경증을 수용하기 위해서 임시로 진단명을 찾는 것과 같다. 나타난 범죄 현상을 어떻게 설명하는지에 더 큰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편의성 짙은 주장은 인간의 정신장치를 고려하지 않은 내용이다. 뭔가 자주 접하면 그렇게 된다는 동일시에 바탕해서 상상한 내용이다. 모델링 이론을 이야기한 반두라도 이런 식으로 대중이 상상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것 같다. 생각을 해보자.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을 많이 한다고 해서 연애 잘하는 경우는 있을까? 성인 영상을 즐겨보고 정력이 강해져서 부인을 만족시키는 남자가 있을까? 하지만 상상력에 의해서 납득이 된다면 좀 받아들이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종의 세계관이 그 내용을 부추긴다고 생각한다.


 이런 현상을 보면 아주 간단하고 빠른 정답이 매우 심각한 오답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물론 이 내용은 신경증을 치료하는 과정에서도 자주 듣게 된다. 말더듬의 경우, 말을 더듬지 않는 이유를 '말을 많이 하지 않아서'라는 따위의 말로 포장하려고 한다. 그건 단순히 현재 증상을 수용하려는 방식에 불과한 것이어서 치료와는 무관하다. 마찬가지로 신경증의 원인은 우리 의식에 뜨지 않는다. 억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식에 뜨는 내용으로 바로 잡아버려서 치료를 시작하게 된다면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가 있다. 정신치료에서는 특히 그런 경우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제 사건을 좀 들여다보자.


최근 들어서 여성들에 의한 아동 학대 및 살해가 자주 보도되었다. 나는 여성들 고유의 모성으로 인해서 아동을 살해하기 어려울 것으로 믿고 있었다. 성인이 아동에게 행하는 범죄는 거의 대부분의 사회에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러한 범죄가 등장한다는 것은 사회문화적 환경에 따라서 정신적인 내용이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사실 불륜을 생각지도 못한 과거와 비교해서 불륜이 수시로 일어나는 현대를 생각해 본다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닐 것 같다. 정신분석에서도 과거 남성에게서만 특징적으로 일어나던 현상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현대에는 여성에게서도 나타나고 있으니 말이다. 프로이트가 성별에 따른 충동성 변화를 처음에 생각했다가 곧바로 폐기한 것은 아마 그의 선견지명이지 않았을까 싶다.


 한번 생각해 보자. 어린아이의 살해는 어지간한 흉악범도 꺼린다고 한다. 그런데 8살 된 여자 아이를 17세 김양이 어떻게 살해했을까? 어떤 다른 요소가 정신에 개입해서 작용했다는 말이 된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초자아는 그런 범죄 행동에 대해서 금지를 지시한다. 그것도 폭격하듯이 지시한다. 그래서 자아는 그런 초자아의 폭격이 있기 때문에 범죄가 사전에 차단된다. 따라서 정신에 자아에 힘을 공급해 주는 어떤 추가적인 힘이 있어야만 이 범행이 가능할 것이다. 그 점은 다소 진지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꼭 중2병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어떤 특별한 존재로 가공하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과 다른 사람을 구분 짓는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서사를 삶에서 지워버리고 자신의 서사만을 남겨둔다. 마치 세상은 자기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런 것은 신경증적 반응으로 여겨진다. 


 검찰조사 과정에서 김양은 꽤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는데 자기 안에 인격이 두 개가 있다는 것이다. 온순한 A와 잔혹한 J가 있는데 J를 공범인 박양이 자꾸 일깨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J가 살해, 사체 손괴 등의 범행을 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중인격을 주장하려는 것인데, 이런 식의 성격변화는 특별한 것이라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관찰되는 것이다. 배고프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김양의 잔혹한 인격이라고 말하는 것의 정체는 피암시성으로도 검토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김양과 박양은 서로 동성 연인관계였다고 한다. 그러니 그에 따르는 신체적 접촉도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김양이 높은 피암시성을 소유하고 있다면 박양에 대해 복종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피암시성이 높을 것이라는 근거도 없진 않다. 김양은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피암시성을 높이는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약물로 인해서 가스라이팅 범죄도 발생한다. 실제 사례들도 있다.


 김양은 스스로를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주장했다. 심신 미약에 대한 노림수였다. 어쩌면 복용하는 약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많은 경우 스스로를 아스퍼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생활에서 효율이 좀 떨어져 있는 자기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이기 어려우니 고기능 자폐라는 개념을 끌어들여서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멀쩡해도 자폐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혹은 ADHD에 시달리고 있어서 행동이 이상하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진단명을 들먹거리는 것은 뻔히 심신 미약을 노리는 것이다. 이건 김양이 법적으로 치밀해서 그런 건 아니다. 도리어 잘 모르니까 혼자서 그러면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걸로 여겨진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아파서 그런 거니까 좀 봐주세요

 책임지기 싫어서 하는 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는 없다. 책임은 져야지. 모든 정신치료의 기본 중 하나다. 정신적 문제로 인해서 책임이 면제된다면 그것으로 이차이득(병리적 이득)을 노리면서 심해지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더 문제가 생기기 전에 자기 잘못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지는 것이 좋다. 


 생각해 보면 김양이 ADHD를 주장했다면 어떤 말이 떠돌았을까? 상상해 보건대, 수많은 청소년들을 예비 범죄자화 하는 효과도 발생했을 것 같다. 범죄의 낙인과도 같은 질환은 사람들이 거부하기 마련이니까. 그럼 ADHD 진단 자체가 낙인 효과도 가질 수 있었을 것 같다. 지금의 조현병 범죄가 그렇지 않은가?


 김양은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했다.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몇몇 사람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범죄를 생각해 보자. 죄다 성관련 범죄 아닌가? 여성을 성추행한 남성 페미니스트도 있고 여성 N 번 방 사건도 그렇다. 페미니즘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벌인 범죄니까. 이건 어떤 사상이 범죄를 일으킨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상에 심취한 사람이 왜 그런 범죄로 이어지는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집단을 형성하면 생각보다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나치도 그런 류다. 그들에게 유태인은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학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치 독일의 상급돌격대 지도자인 아돌프 아이히만은 홀로코스트를 실행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수백만 명의 유대인들을 동유럽의 게토와 학살 수용소로 강제 추방하는 것을 촉진하고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그에게 어떠한 죄책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에게 그것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한나 아렌트가 이야기한 악의 평범성이란 것은 여기서 이야기될 수 있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군인으로서 명령에 복종한 것이지만 그 결과는 수백만명의 죽음이었다. 그는 인간을 하나의 물건처럼 보고 처리한 것이다. 이 경우에 그 수백만 명에게는 어떠한 서사도 부여되지 않는다. 


 그럼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이데올로기는 정신에서 어떤 작용을 할까? 이데올로기가 환상을 작동하게 해주는 것 같은데 자아에 힘을 훨씬 더 실어준다. 그리고 환상의 작용을 마비시킬 수 있다. 병리적으로 작동할 때 <망상>을 직접적으로 형성할 수도 있다. 그렇게 페미니스트들에게 박해자의 설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 박해자는 <남성>으로 대표될 것이다.


 환상 기능이 마비된다는 점은 좀 더 중요하다. 환상이 기능할 때, 자아에는 적당한 에너지가 들어가고 과잉되는 에너지는 신체로 밀어내는 작용을 한다. 덕분에 신체와 정신은 언제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망상이 형성된다면 그 균형이 깨어진 상태이기도 하다.


 예외적으로 이데올로기를 통해 환상보다 망상에 가까워지게 된다면 자아는 초자아의 명령을 거스를 수 있다. 예를 든다면 ISIS(수니파 이슬람 근본주의자 )에 심취한 어떤 남자가 자신의 어머니와 여동생을 성노예로 집에서 데려가려 한 사건이다. 그 아버지는 그 아들의 머리에 총을 쏘았다. 당연하다. 그 상태가 되면 짐승만도 못한 짓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슬람이라서만 그런 것이 아니고 어떤 종교나 사상에 대해서 근본주의적인 내용에 빠지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행동이 쏠리게 된다. 이런 움직임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더 큰 힘으로 밟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 아버지의 행동은 가슴 아프겠지만 더 큰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이데올로기에 심취한 인간은 자기 행동의 통제력을 상실할 수 있다. 사이비 종교에서도 그런 것을 많이 보여준다. 갱생 수단도 거의 없다. 없는 사실도 있는 듯 지어내서 스스로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책임은 늘 사회 탓을 하지 않나. 사이비 종교든 마약이든 인간의 인식에 그런 쏠림을 만들어내서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들은 무엇을 범죄의 동기로 삼았을까? 김양은 높은 피 암시성으로 박양의 말을 철썩 같이 믿었을 것이고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집단 충동의 영향력도 받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김양은 박양의 장난스러운 말도 단순하게 듣진 않았을 것 같다. 이 점은 생각보다 중요할 수 있다. 그 내용을 검토하기 위해서 유사사례를 한번 생각해 보자.


 정신분석에서는 여성 편집증과 범죄 간의 관계를 따지곤 했다. 거기다가 유명한 라캉은 미친 여성들의 폭력적 행동에 매료된 적이 있다. 그녀들의 편집증적 글쓰기에도 관심을 보였다. 1933년에 있었던 악명 높은 빠뺑 자매의 범죄에 대해 라캉은 글을 썼다.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엽기적인 이 사건은 프랑스 인들의 상상력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다. 사실 프랑스에서 일어난 엽기적인 범죄는 지금 봐도 상상 그 이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 푸코가 다뤘던 유명한 피에르 리비에르도 그렇고 말이다. 도끼로 일가족을 살해한 그 사건은 당시에도 엽기적이었고 지금 생각해도 엽기적인 사건이다. 심지어 피에르 리비에르는 갓난 동생까지 도끼로 찍었으니 말이다.


 그녀들의 범행은 이렇다. 크리스틴과 레아 빠뺑 자매는 르망이라는 마을에서 중노동을 하는 하녀들로 언제나 함께 있었다. 일을 쉬는 날에도 바깥에 나가지 않았다. 어느 폭풍우 치는 날 밤, 벼락이 쳐서 전기가 나가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들의 고용주인 모녀가 자매를 심하게 야단쳤다. 평소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두 자매는 모녀를 한 명씩 잡았다. 그리고 그들의 눈알을 뽑았다. 땅바닥에 내팽개치고 모녀의 얼굴을 짓이기고 몸을 짓밟았다. 두 사람이 죽자 허벅지와 엉덩이 살을 도려냈다. 흘러내린 피를 모아 죽은 모녀의 성기에 들이부었다. 이런 작업이 모두 끝나고 이들은 조심스럽게 칼과 망치 기타 싱크대의 부엌 가재도구를 모두 세척하고 몸을 깨끗이 씻었다. 이후 평소와 마찬가지로 잠자리에 들었다.


이 사건이 알려지고 난 후, 프랑스 전역은 충격에 휩싸였다고 한다. 




 인천 초등생 살인범 두 사람이 크리스틴과 레아 빠뺑 자매와 같지는 않지만 유사성은 관찰할 수 있다. 그 둘은 강력한 피암시성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빠뺑 자매의 범죄는 대상 파괴 충동이 성립하는데 충분한 메커니즘을 추론할 수 있는 과정이 있다. 다만 인천 살인범에게서는 그것이 김양 단독으로 발생했다.


 김양은 박양에게서 암시를 받았을 것이다. 범죄라는 메시지를 받고 또 자신이 범죄와 관련되어서 과장된 표현도 했을 것이고 장난 삼아한 말도 있었을 것인데 그게 김양에게는 과장이 아니라 솔직함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양이 그 암시에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박양을 좋아했던지 아니면 신체가 쇠약해져 있었을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정신과 약도 복용하고 있었던 상태니만큼 피암시성의 증대는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과거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강남역 사건은 전형적인 편집증 범죄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전형적이진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범인 간의 피암시성으로 촉발된 범죄로 여겨지기 대문이다. 동시에 어떤 사상에 심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도 생각할 수 있게 한 것 같다. 사상에 심취한다는 것이 고결하게 느껴질 수는 있다. 나치도 고결했으니까. 그렇게 편집 상태로 빠져들게 된다면 현실을 받아들이는 차원이 달라져버리기도 한다. 미친 사람 된다는 말이다.


 나중에 주범인 김양은 자신의 잘못을 후회했다. 아마도 높아진 피암시성이 조금 약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유사한 방식으로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후회하는 사건들은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로 인해서 암시에 걸려있는 경우가 그렇다. 이때는 신체적 조건이 관계가 되기 때문에 회복되는 순간에는 그 피암시성이 좀 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범죄에 대해 뒤늦은 후회를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물론 후회라는 건 아무리 빨라도 늦은 것이지만 말이다. 


 시간이 좀 지난 사건이지만 우리는 이러한 사건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 인간 행동에 대한 이론들은 새롭게 만들어지지만 과거로부터 인간의 행동 메커니즘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미래에도 변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칸트가 말했던 선험적 요인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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