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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우 Jun 26. 2024

킹스 스피치 2

치료효율과 관련하여

증상은 특정한 구조를 지닙니다. 그리고 심리치료 역시도 그러한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정신분석의 진단체계를 통해서 증상과 심리치료 기법 간의 관계를 살펴보면 치료효율에 대해서도 검토할 수 있습니다. 정신적 변화가 도모되지 않으면 행동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시작해 보도록 하죠.


  

 조지 5세의 죽음 이후에 왕위는 에드워드 8세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에드워드 8세는 이때 미국 출신의 심슨부인과 사랑에 빠집니다. 에드워드 8세가 여는 파티에 아내와 함께 참석한 버티는 형에게 충언을 하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형은 그런 동생을 무시하고 '버벅 버티'라고 놀립니다. 그 문제를 로그와 함께 이야기하다가 서로 감정적으로 상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버티는 치료를 그만둬 버리죠. 


 이런 상황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상담하는 과정에서 감정이 상해서 상담을 그만두게 되는 상황이 계속 발생하는 것이죠. 그렇게 그만두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물론 상담의 처음 시작에서 문제가 발생해서 상담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 태도를 취해서 취소하는 경우가 있지만 상담내용에서도 일종의 헤게모니 싸움처럼 등장하는 내용이 현실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그래서 그만두게 되는 경우도 등장합니다. 


  버티는 형의 놀림을 견뎌야 했습니다. 형의 상징적인 위치가 어떻습니까?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왕이 된 '형'은 초자아를 대리하는 역할이 됩니다. 흔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사회적 위치가 인격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로그와 이 문제를 상의합니다. 그런데 그의 제안이 좀 황당합니다. 버티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제안한 겁니다. 그 제안은 버티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이미 왕위에 형이 올라가 있는데 쉽게 바꿀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야기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에 치료도 그만둬 버립니다. 


  정신분석이나 심리치료를 진행할 때, 내담자의 사생활에 얼마만큼 간섭할 수 있을까요? 로그는 버티의 정치적인 입장에 대해서 간섭을 했습니다. 개인의 문제는 직접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 맞습니다. 책임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책임을 대신 질 수 없다면 함부로 끼어들 권리는 없습니다. 물론 신경증으로 인해서 병리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집니다. 


  예를 들어서 피학적 성관계를 즐기는 내담자가 있다고 해봅시다. 이 사람이 상담이 필요하다고 해서 강제로 그만두게 하는 것이 옳을까요? 물론 의식에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행동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가 되죠. 이 사람이 상담이 필요하다고 여겨져서 상담실에 가게 되면 그런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일종의 서약서를 작성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라는 강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불만만 더 커지기도 하죠. 상대에게 얻어맞으면서 즐기는 것을 멈추기 위해서는 무엇이 발생하는지를 찾는 게 효율적입니다. 강제로 얻어맞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반발만 사게 합니다. 상담실을 떠난 내담자가 선택하는 행동을 상담사가 강제로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증상을 통해서 만족하고 살겠다는 태도가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병이 있는데 낫기를 거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자해의 경우가 있습니다. 자해라는 것 자체는 스스로가 처벌받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기 처벌자체는 부정적으로 보이지만 그 사람은 자해를 하면서 자기 스스로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자해만 하고 나면 괜찮아지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도 않는다고 해서 거기에 안주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해와 같은 방어기제의 형식을 빌린 것은 매우 다양한 현상으로 등장합니다. 요즘 문제가 되는 먹토도 그중 하나이고 약물 과다복용역시도 마찬가집니다. 약물 자해가 된다는 것이죠. 어쩌면 약물을 과다 사용하는 사람들에게서 성 문제가 드물지 않게 나타난다는 것은 관계된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할 겁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봅시다. 에드워드 8세는 스캔들로 인해서 왕위에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버티가 선왕의 이름을 이어받아 조지 6세로 책봉됩니다. 그런데 이때 버티는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다시 심한 말 더듬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버티는 로그를 통해 다시 치료를 재개하고자 합니다. 그때 로그는 버티에게 과거를 잊고 성인으로서의 자세를 가지길 조언합니다. 


  버티의 말더듬이 왜 다시 심해진 것일까요? 현재 버티는 공작에서 왕으로 즉위하기 직전입니다. 사회적 지위가 변하기 전의 과도기 상태죠. 흔히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부정적인 사건으로 트라우마가 생기면 정신적인 문제가 생긴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 역시도 부정적인 사건에만 부여되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일이 있어도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정말 스트레스의 정의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스트레스라는 것은 원래 '신경압착'이라는 의학용어였습니다. 그리고 이 스트레스에 대해서 1920년대부터 벌써 연구가 되었습니다. 다른 내용은 접어두고 스트레스는 결국 외부 사건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구분을 잘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병리적 행동이 등장한다면 그것이 외부 사건에 의해서 일어난 것인지 아니면 내적 충동에 의해서 발생한 것인지는 검토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잘 검토되지 않는다면 진단 차원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럼 여기서 라이오넬 박사. 로그의 치료 배경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버티가 왕위문제로 인해서 치료를 그만두었을 때, 그 뒷조사를 좀 합니다. 라이오넬 박사는 치료능력이 있지만 제대로 학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치료능력에서 학위가 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할 수 있을까요? 


   학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전문적으로 연구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그에 따라서 학문적으로 현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초개념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언어치료학위가 있다는 말은 기초이론이 있다는 겁니다. 물론 그것을 무시하고 치료를 진행하는 경우도 적진 않습니다. 이것이 흔히 이야기하는 공신력을 가지게 해주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그런 공신력이 없는 곳에서 치료효과가 나타난다면 공신력 있는 이론으로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프로이트가 곧잘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론이 아무리 좋아도 존재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는 거죠. 


  로그는 제1 차 세계대전에서 발생한 전쟁신경증 환자들의 치료를 시도했고 그것으로 임상경험을 쌓았습니다. 그 시기에 발생한 전쟁 신경증은 현대의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했습니다.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온몸이 뒤틀리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임상경험을 쌓을 수 있다면 치료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엄청납니다. 그것이 치료효율을 담보해 주는 것이기도 하죠. 

  그것은 심리적 내용에 접근할 수 있는 경험적 자료를 마련해 줍니다. 그 덕분에 버티의 정신작용에 간섭할 수 있었던 겁니다. 다른 치료사들이 훈련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정신작용의 문제를 검토할 수가 없었던 것도 있었을 겁니다. 조금 어렵게 이야기한다면 버티의 말 더듬은 선험적으로 등장하는 겁니다. 선험이라는 말을 쉽게 풀이한다면 '경험하게 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정신분석의 용어로 설명한다면 '구조'라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로그의 치료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치료경험이 축적되어 있는 만큼 해당 경험에서 치료근거들을 마련했을 겁니다. 현대의 언어치료에서는 심리상담도 조금 들어간다고 합니다. 말더듬이나 말 막힘에 있어서 심리적인 부분에서 설명이 되어야 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로그의 치료자체는 기존의 언어치료 훈련에 더해서 버티의 신뢰까지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신뢰가 없다면 치료효과가 쉽게 나타나진 않습니다. 

  버티가 치료사를 계속 바꾼 이유도 이 신뢰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이가 그래서 굉장히 중요하죠. 이 부분은 현대에도 꽤 중요한데 전이가 형성된 이후에 정신분석가나 심리상담사를 여러 명 돌아가면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상담사들 중에서도 여러 명의 분석을 경험해보고 싶다고 해서 그런 결정을 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그렇게 긍정적이진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생각하는 증상도 더욱 교묘해질 수 있습니다. 치료를 통해 습득한 내용은 처음에는 긍정적인데 나중에 재발하는 경우 치료저항으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치료사를 변경하려고 했던 태도도 그렇게 등장했을 겁니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그 이론들에서 사소한 차이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정신분석이라는 타이틀이 같아도 학자별로 차이가 나타나고요. 즉. 분석가 자꾸 바꾸는 건 이론의 중심을 잡지 못하게 되는, 더욱 병리적인 결과를 불러옵니다. 정신분석사를 들여다봐도 그런 현상은 나타나고요. 사담이지만 예전에 어느 전문가가 분석가 바꾸면서 해도 된다고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내담자는 치료효과문제로 인해서 그걸 결정할 수가 있지만 상담사나 전문가가 그런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더군요. 

 만약 그렇게 분석가 변경해도 된다고 하면 라캉은 수십 번도 더 바꿨을 겁니다. 그런데 라캉은 뢰벤슈타인이 분석가 자격 내는데 너무 소심해서 화나서 한 번 바꿨었습니다. 그 이외는 변경한 적이 없었고요. 


 사담이 길었습니다.  로그는 자격증에 있어서는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다만 풍부한 임상 경험이 그의 치료능력을 입증해 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격증을 확보한다고 해서 치료능력이 덩달아 따라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론이든 경험에 따라서 해석능력의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죠. 이런 현상은 의학에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해부학적 기준하에서 진단을 해보면 의사들끼리 서로 다른 의견을 내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검사하기 전에 어떤 증상일 거라고 추측하는 과정이 그렇습니다. 이런 장면은 드라마에서도 등장하죠.


 그런데 신경증의 경우는 조금 독특합니다. 해부학적이지 않은 특징 때문에 진단에 있어서 불확실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신경증이란 어떤 특정 이론의 자격증을 딴다고 해도 치료 효율까지 담보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증상 역시도 구조를 지니고 치료기법 역시도 구조를 지니는데 증상의 작동에 치료기법이 들어가면서 영향력을 미치는 과정에서의 효율성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효율이 높으면 효과가 일찍 등장합니다. 대신 효율이 낮으면 효과가 늦게 등장하거나 안 나타날 수 있습니다. 


 증상 a가 있다고 해봅시다. 여기에는 기법 A가 효율적입니다. 그런데 기법 B로 접근을 한다면 치료효율은 상당히 떨어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강박구조를 지닌 내담자에게는 인지치료가 감정을 풀어주는 치료보다 훨씬 유익합니다. 증상이 작동하는 방식과 잘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약간 더 직접적인 내용으로 CRPS 같은 질환에 무작정 약물 처방만 한다고 해봅시다. 그럼 환자는 계속 고통에 시달리게 되는 결과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겁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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