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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우 Jul 03. 2024

킹스 스피치 (3)

결국 다시 찾은 권리

 조지 6세는 TV에서 대관식 방영한 것을 봅니다. 그리고 이어서 히틀러의 연설을 보죠. 그리고 그의 말솜씨를 보고 부러움을 느끼면서 말을 잘하고 싶다는 소망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히틀러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총리가 사퇴를 선언해 버립니다. 


 히틀러가 전쟁을 선포한 것에 대한 저항으로 영국 역시도 전쟁을 선포해야 했습니다. 국가 사회주의에 사로잡힌 전쟁광이 날뛰도록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여러 갈등 상황에서 조지 6세는 라디오 방송을 준비하게 됩니다. 그리고 말더듬이 갑자기 심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라이오넬 박사를 호출하죠. 다른 사람보다 조지 6세의 말 더듬을 잘 아는 사람은 라이오넬 박사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치료자는 증상을 함께 탐구하기 때문에 그 증상의 작동방식에 대해서 조금 더 전문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치료효과에 영향을 미칩니다. 


 말더듬이 갑자기 심해진 이유에 대해서 극심한 스트레스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세기의 로맨티시스트라고 불린 에드워드 8세는 심슨부인이랑 같이 살 거라고 왕위를 포기했고 그 뒷일을 모두 조지 6세가 감당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이런 변화는 심리적 압박감을 불러옵니다. 이때 자아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증상의 도움을 얻으려 하기도 합니다. 자아는 생존이 최우선이기 때문입니다. 그 갈등 속에서 자아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기능을 저하시키는 움직임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런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기능 향상에만 몰두하게 됩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신경증을 대하는 태도가 그렇죠.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신경증이 심각해진다면 시험을 제대로 치르기 위해서 어떤 희생이라도 감당하려고 하는 태도까지 나타나기도 합니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한다면 매슬로우의 욕구 5단 계설을 아실 겁니다. 아직도 많이 언급되는 심리학 이론입니다. 그런데 그 욕구 5단 계설은 후대에 의해서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만 그래도 여전한 위력을 자랑하는 이론입니다. 자아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상태들에 대해서 단계적으로 이야기해 주기 때문에 이해가 잘 됩니다. 

 욕구 5단계설이 마치 진리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신경증은 그것을 약간 비틀어버립니다. 소속이 되어 있다고 해도 권리 포기를 일으킴으로 인해서 소속감을 지워버리기도 하고 경제적 풍족함으로 의식주가 겸비되어 있어도 죽을까 봐 두려워합니다. 이런 현상은 미국의 경제부흥시기에 많이 관찰되었습니다. 그래서 부자병(apluenza)이라는 말도 생겼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움에도 불구하고 병에 자꾸 시달리니까요.

 

 증상은 한순간에 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방에서 말하는 명현현상과 같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는 겁니다. 명현이란 한방치료를 받고 있다가 상태가 바로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상태가 점점 나빠지다가 어느 순간에 확 좋아지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당연히 우리 정신에서도 이런 현상이 발생합니다. 상태가 점점 나빠지다가 한순간에 갑자기 확 좋아지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정신분석에서도 그런 현상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등장하는 경우 저항이 심각해지기도 하죠. 하지만 그 좋아지기까지의 과정을 견뎌내기가 무척 힘든 경우도 있습니다. 신경증이 지독한 경우에 그렇습니다.  


 조지 6세는 좋든 싫든 이제 왕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사회적 위치가 고정된 셈입니다. 왕실의 정통성을 위해서라도 왕위를 이제는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봅시다. 로그 박사와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헤드폰을 끼고 유창한 자기 목소리를 녹음하던 요크공작을 생각해 봅시다. 그는 자신의 유창한 발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자신의 고질적인 증상인 말더듬이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던 겁니다. 무엇을 위해서 말더듬이 사라진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증상이 자아의 균형상태를 유지하는데 어떤 방식으로든 기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증상이 드러나 있으면 초자아의 검열을 조금 느슨하게 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조지 6세의 어린 시절을 잠시 되돌아봅시다. 어린 시절의 그는 늘 주변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했습니다. 유모에게 부당하게 학대를 받음에도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상해도 너무나 강력한 모델입니다. 한 나라의 왕이 하는 말을 함부로 거역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초자아가 성립되는 시점에서 약간 특이한 경우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너무 대단한 사람일 때, 초자아에는 엄청난 힘이 집중이 됩니다. 아버지가 너무 대단한 사람이라서 어머니가 쉽게 어떤 의견을 제시하지 못할 때도 병리적으로 형성될 수 있습니다. 

 이런 걸 생각해 보면 재벌가의 자녀들이 성장해서 부족한 것 없는데 마약에 빠지고 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 대단한 초자아의 검열을 피하기 위한 변태적인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그 결정으로 인해서 더 많은 희생을 치러야만 하겠지만요. 


이제 조지 6세는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할 수는 없습니다. 국가의 위기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조금 독특한 경우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어느 한 직원이 일처리도 미숙하고 뭔가 믿음이 안 갑니다. 그래서 자주 야단맞고 무시당하기 일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함께 일하는 팀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해서 업무가 제대로 이어지기 어려워지는 그런 상황이 생깁니다. 그런데 이때 그 미숙한 직원의 업무처리능력이 갑자기 상승하면서 혼자서 팀의 업무를 훌륭하게 처리하게 되는 그런 경우들이 있습니다. 주변에서 그런 모습을 보면 한순간에 이미지가 확 달라지기도 하죠.


조지 6세도 그런 경우에 해당할 수 있을까요? 조지 6세는 마이크 앞에서 천천히 입을 뗍니다. 그리고 더듬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발음하면서 훌륭하게 연설을 마칩니다. 실제 유튜브 같은 곳에 조지 6세의 연설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 연설들을 들어보면 영어 듣기가 취약한 사람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천천히 발음하는 것을 들어볼 수 있습니다. 대신 말 더듬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쫓기듯이 살아간다고 합니다. 이때 우리가 시간에 쫓긴다고 생각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그 느낌을 주는 것이 바로 우리 '초자아'의 작용으로 인한 것일 때가 많습니다. 흔히 사람들이 누군가가 나를 쳐다본다고 과민하게 반응할 때도 바로 이 초자아의 비판에 대한 경계를 보이는 것이기도 합니다. 

 초자아가 너무 강력할 때, 자아의 입장에서는 여유가 없어집니다. 조지 6세가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자아에 힘이 더해지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왕의 곁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말 더듬이로 등장했던 조지 6세의 신경증은 극복하게 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지 6세는 히틀러에 대항한 그 시대의 훌륭한 왕으로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프로이트가 이야기했듯이, 신경증을 극복하는 경우에는 예외 없이 성숙한다는 예시로써 조지 6세의 말 더듬을 예시로 들어도 될 것 같습니다. 


글을 마치면서 셰익스피어를 읽다 보면 작품에서 왕이 그런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오 나의 주체들이여..'라는 말입니다. 이때의 주체들은 백성을 뜻합니다. 주체의 움직임을 통해서 자아는 힘을 얻고 초자아의 비판을 견뎌내기도 합니다. 주체는 자아가 아니고 주인도 아니지요.



여담 : 실제로 언어치료 하는 분들의 관점은 이것과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과거에 언어치료하던 분과 이 내용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맞다 아니다를 떠나서 실제 이러한 치료경험이 있다면 이론적인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치료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 됩니다. 물론 저는 제가 과거에 공개했던 임상에서 이런 케이스가 있었고요. 프로이트가 이야기하듯 이론이 아무리 좋아도 존재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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