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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우 Aug 21. 2024

이상한 나라의 피비 (3)

가혹함

 할로윈 데이 코스프레 장면을 다시 한번 생각해봅시다. 피비와 샐리는 할로윈 데이 사탕을 받으려고 나왔는데, 과자를 주는 아주머니가 좀 뚱뚱합니다. 그런데 피비가 그 아주머니를 보고 먹던거 아니냐면서 뚱뚱하다고 이야기해버립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fat-fat-water rat"이라고 이상한 소리를 하죠. 그 말에 아주머니는 상당히 불쾌해하며 방에 들어가 버립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볼 것은 언어 연상입니다. 피비는 살쪘다는 "fat"만 이야기하면 될 건데, 그것도 노래 부르듯이 "fat-fat-water rat"이라고 하는 겁니다. 예의 없이 말하는 것이 좀 마음에 들지 않아 보이기도 한데, 이런 현상이 강박증에서 의외로 많이 나옵니다. 말이 이상하게 헛나오는 거죠. 어떤 관념이 끼어들기 때문입니다. 



 왜 "water rat"이 들어갔을까요? "water rat"은 상황과 맥락에 전혀 상관없는 단어죠. 이게 갑자기 왜 끼어들었을까요? 유년 신경증에서는 강박증과 히스테리적 성격이 혼재하는 아주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즉, 강박증적인 태도로 인해서 이 말이 튀어나왔다는 게 되겠죠. 이때의 발화, 즉 말하기는 이 단어를 삭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증상에 대한 철학적이고 역사적인 논의도 있습니다만 그 사건을 이야기하려면 글이 너무 길어지니 다음 내용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쥐는 강박증에 있어서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프로이트 전집에 '쥐 인간’이라는 분석 사례가 있습니다. 강박증 사례의 총정리입니다. 저도 처음 배울 때는 쥐 인간이 증상 내용에서 쥐가 나오는 것이 가장 인상이 깊어서 쥐 인간이라고 했다고 생각했는데요. 몇 년 공부를 하다 보니까 문명에 따라서 상징 체계들이 좀 달라지는 내용이 있는데 희한하게 강박증은 공통적으로 쥐와 관련성이 깊었습니다. 쥐를 단순하게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죠.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대체 왜 중간에 "water"가 끼어드느냐 하는 겁니다. 언어의 리듬만 따라간다고 하면 "fat-fat-rat"만 하면 될 겁니다. 그런데 "water"가 들어가면서 새로운 운율이 생깁니다. 일단 강박증에서 흔히 알려져 있는 침투 사고라는 것으로 이야기를 해도 나쁘진 않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강박증 사례에서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어느 독실한 기독교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강박증에 심하게 시달려요. 그래도 신앙생활은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기도하면서 느끼실지 모르겠지만, 혼자서 기도하다 보면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끔 그런 내용을 캐치하게 되는 목사님들은 설교할 때 하나님이 지켜보신다는 식으로 풀어서 설명을 해주죠.


 그리고 이 강박증자 역시도 그걸 느낀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 느낌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믿지 않고 사탄이 나의 기도를 듣는다고 생각한 겁니다. 따라서 자신의 기도를 사탄이 중간에 가로채서 하나님이 듣지 못하게 막고 있다고 여긴 겁니다. 그럼 이 사람은 사탄이 그 기도문을 중간에 가로채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나만 알 수 있는 독특한 암호문으로 변경을 시켜야만 합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는데 한 글자씩 중간에 빼버려서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게 만들어버립니다. 그리고 그것을 점점 가공하게 되고 나중에는 정말 이상한 주문 외우는 것처럼 변해버리는 그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런 사례에 비춰볼 때 피비가 그 말 중간에 "water rat"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이러한 영향으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도 좀 듭니다. 이러한 말 실수는 분석 현장에서 접하게 된다면 소중한 단서이기도 하죠. 물론 또 다른 언어적인 분석 내용을 찾아볼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러한 측면이 있으니 제가 보기에는 뚜렛증후군이라는 특정 증상이라기보다 유년 신경증이라는 독특한 구조로 보는 것이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행동만 본다면 강박증으로 생각하는게 일반적일겁니다. 피비의 아빠도 그렇게 보고 있었으니까요.


피비의 행동을 검토하다 보면 욕이 등장합니다. 연극 연습을 할 때 제이미라는 친구의 붉은 망토에 "fagot"이라는 말을 씁니다. 사전에는 나무 뭉치라는 뜻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철자가 하나 빠집니다. 정확하게는 "faggot"입니다. 이런 류의 말실수는 정신분석 강의에서도 나타나곤 합니다. 발음을 잘못해서 성적인 내용이 나온다거나 하는 경우죠.


그런데 여기서 다저 선생님의 붉은 여왕과도 같은 통찰력이 발휘됩니다. 그 말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세세하게 설명해주는 겁니다. "faggot"이 나무 뭉치라는 뜻이지만 동시에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겁니다. 특히나 제이미가 붉은 여왕 역할을 하고 있으니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의미로 쓴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그리고 다저 선생님은 그런 이야기를 하죠. 사람한테 단어를 갖다 붙이려면 뜻부터 제대로 알고 해야 한다는 겁니다. 다저 선생님은 여기서 초자아의 역할을 합니다. 하려면 제대로 하라는 거죠. 제대로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오만함에 일침을 가하는 겁니다. 


재미있게도 이것은 우리가 문해력 문제를 이야기할 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 겁니다. 요즘에는 뜻도 제대로 모르고 일단 단어만 갖다 붙이는 경우들이 종종 발견됩니다. 언론에서도 나왔지만 "고지식"이라는 말을 자의적인 해석으로 이해해버리는 겁니다. “높을 고” 플러스 "지식"으로 해석해서 "높은 지식"이다. 이렇게 이해를 해버리는 거죠. 과거에는 어땠을까요? "고지식"이라는 말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지식"이 뭔지 모르지만 그 상황의 분위기라든지 선생님의 반응을 보고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늬앙스를 고려하지 않고 들리는 말에 따라서 상황을 평가하게 되는 다소 분열적인 태도가 등장합니다. 야단을 치고 있는데 말은 칭찬을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버리는 겁니다. 따라서 텍스트를 대하는 데 있어서 곤란함을 많이 겪게 되고요, 언어 해석에 있어서 좀 뒤떨어지는 그런 태도를 보일 수가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교육 현장에서도 많이 발견이 될 겁니다. 이런 내용들이 심화되면 심화될 수록 상담에도 영향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한자어가 들어가는 말을 하는 경우 못알아듣는 경우도 발생한다는 거죠. 


 정신분석 강의에서 프로이트가 말한 예시 중에서도 이런 말실수와 관련된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어떤 성인 남자가 어두운 밤중에 집에 돌아가는 아가씨에게 집까지 바래다 줄까 하고 작업을 겁니다. 그런데 발음을 잘못해서 이상한 말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그 말이 성희롱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챈 아가씨는 그 남자의 싸다구를 날려버리는 이야기가 있죠.



 피비가 "faggot"이란 낙서를 한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동성애자라는 놀림 섞인 단어가 어떤 차원에서 기능하고 있을 까요? 저는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차성징이 다가오는 아주 애매한 시기라는 겁니다. 청소년기에 동성애자가 아님에도 동성에게 성적매력을 느끼는 그런 시기가 지나갈 수 있습니다. 이차성징이 다가오면서 정신적 변화가 발생하는 시기다보니 조금의 혼란이 발생하는 겁니다. 이차성징전에는 성적 의미가 들어가있지 않은 좋아함이 있었는데 그것에 성적 의미가 부여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이걸 착각해서 자신을 동성애자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프로이트가 지적했듯이 신경증 발병이 일어나는 시기가 이차성징이 다가오는 아주 애매한 시기라고 하죠. 체모가 발달하거나 초경이 시작되었다면 이미 이차성징이 시작되었고 동시에 이제는 어른처럼 생각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때 발생하는 환상의 힘이 좀 강하면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운명의 빨간 실이라던가 월하노인 이야기는 이 환상에 적절하게 잘 들어맞는 이야깁니다. 


피비의 교실에서는 카를리타라는 저빌쥐를 한 마리 기르고 있습니다. 저빌쥐란 햄스터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피비가 카를리타에게 먹이를 주고 난 뒤에 쥐가 죽어버립니다. 물론 쥐가 죽은 이유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에게 책임을 추궁받던 피비는 애들에게 침을 뱉어버립니다. 그리고 그것을 스스로 멈출 수가 없었다고 하죠.


그런데 이 장면에서는 좀 문제가 되는 내용이 있습니다. 피비의 엄마는 더 이상 의사를 만나려 하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증상에 대해서 유효한 말을 해줄 수가 없고 행동의 변화도 일어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좀 더 좋은 치료사를 찾고자 하죠. 그런데 제가 보기에 피비의 엄마는 무조건 적으로 피비의 편을 들어줄 수 있는 치료사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피비의 증상행위를 '아이들이라면 그럴 수 있다'는 식으로 설명해주길 바라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여기에는 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현재 어떤 문제행동을 보이는 아동에 대해서 '나이가 들면 괜찮아진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문기관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면 더 큰 문제일 거고요. 앞서 다른 글에서 '심리성적 발달단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잠복기에서 사춘기로 접어들어가면서 논리 체계가 변한다고요. 이미 사춘기에 접어들어가 있다면 나이가 든다고 해도 의식구조 자체는 변하질 않습니다. 따라서 나이가 들어도 그대로라는 말입니다.


 엄마는 교장 선생님 정도는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학부모들의 이런 태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권이 약화되어 아이들에게 환경을 맞추는 태도가 일반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사를 보면 초등학교 교사가 훈육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동기분상해죄 때문입니다. 


 안나 프로이트가 이야기했듯이 아이에게 환경을 맞춰주는 것은 가장 최악의 교육 방식입니다. 자아가 발달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환경을 맞춰주게 되면 자아는 일을 하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자아 발달 역시도 더뎌질 수밖에 없죠. 이것은 최근 많이 등장하는 경계선 지능의 문제와도 직결될 겁니다. 현재의 아이들은 지금의 학부모들이 학생일 때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서 경계선 지능이 많이 나타나게 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만큼 자아가 일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일 겁니다. 아마 앞으로 AI 교과서가 도입되고 그렇게 되면 느린 학습자가 더 폭발적으로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듭니다. 


저는 분석을 할 때 내담자들에게 분석 내용을 꼭 필사로 정리해두는 것을 권합니다. 그런데 온라인에서 하는 특징인 만큼 내용을 온라인으로 정리해두는 경우들이 많았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도 저는 미리 주의를 줍니다. 왜냐하면 온라인으로 정리를 해둔다거나 하는 경우, 분명히 안 봅니다. 노트에 써두지 않으면 생각이 나도 다시 볼 생각을 안 하게 됩니다. 필기하면서 발생하게 되는 반추 작용은 자아에게 유익한 작용을 하는데 컴퓨터나 태블릿 화면에서는 이러한 작용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쓰면서 공부하는 것이 정말 좋은 공부법입니다. 고 박경리 선생의 토지에서도 좋은 공부방식으로 소개가 되어 있습니다. 


 피비는 엄마에게 그런 말을 합니다. 하면 안 되는 것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럼 결국 하게 된다고요. 강박 사고는 쉽게 멈추지 않습니다. 약 먹으면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일시적입니다. 강박 사고를 멈추기 위해서는 강박행동으로 발달해야합니다. 손 씻기라든지 혹은 양말을 신고 벗고 하는 것을 반복하는 경우죠. 강박행동이 나타나고 나서 그것을 알아차리게 되면 대부분 이때를 '초기'로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강박사고가 먼저 있었고 그것을 방어하기 위해서 강박행동이 등장합니다. 따라서 강박증을 알아차린 사람들은 대부분 '중기'를 넘어선 시점에서 알아차리게 됩니다.  


 피비 엄마는 다시 교장 선생님을 찾아가면서 다저 선생님과도 만납니다. 그리고 피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죠. 다저 선생님은 피비가 아주 뛰어나다고 이야기해주기도 하고요. 물론 신경증적 태도를 지닌 아이들은 머리가 좋습니다. 신경증이 머리가 나빠서 생기는 건 아니죠.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볼 것은 우리가 신경증으로 생각하고 있는 내용이 경계선 지능에서 나타나게 된다면 조금 독특한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신경증이 등장하면서 자아의 효율이 떨어지게 되는데, 그게 지능문제로 착각이 되는 경웁니다. 물론 지능검사에서도 경계선 지능이 나옵니다. 


그리고 여기서 또 피비의 독특한 말이 튀어나옵니다. 교장 선생님이 피비의 행동을 이야기하자 "spat-spat-water rat"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엉뚱한 생각이 또 끼어들어오는 겁니다. 이러한 단어를 조금 더 진지하게 검토해본다면 water rat이 엉뚱하게 끼어드는 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피비의 엄마는 교장 선생님과 이야기하면서 애들이 피비를 화나게 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피비를 일방적으로 변호하고 있는 겁니다. 그때 뒤에서 피비는 강박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주술적인 의례입니다. 자기 뜻대로 상황이 해결되길 바라는 겁니다. 그것도 엄마가 모두 해결해주길 바라죠. 자기가 할 일은 없는 겁니다. 현실에 능동적이기 보다는 수동적인 태도만을 취하고 있는 겁니다. 바로 이런 점이 동생 새라조차 견딜 수 없는 내용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잘 보면 피비의 행동이 안정화되는 곳은 연극 연습할 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는 올라오는 충동들의 제어가 어려웠습니다. 환경이 자신에게 맞춰져 있으니까 뭘 하든 힘을 적게 들일 수가 있습니다. 이게 교육적이진 않은 겁니다. 그런데 연극 연습은 어떻습니까? 연극이라는 상황에 들어가기 위해서 피비는 다저 선생님의 말을 들어야 하고 자신의 행동을 통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피비의 충동 작용이 승화로 작용할 수 있는 겁니다. 또한 이렇게 승화로 작용하면서 이상 행동들의 빈도가 훨씬 줄어들게 되죠. 이런 내용이 승화와 직접적인 관련성을 지닙니다. 


 증상과 자아의 에너지의 출처는 같습니다. 즉, 자아가 교육의 영향으로 충분한 에너지를 활용하게 된다면 증상 행위의 빈도도 줄어들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치료실에 가서 치료세션을 진행하는 것을 '수업'으로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위에서 이야기한 내용입니다. 저도 치료사들이 상담시간을 수업으로 표현하는 것을 조금 이해하지 못했었던 적이 있는데 이렇게 생각해보니까 수업이라는 표현도 타당하다고 여겨졌습니다. 


 이 점을 간과한다면 교육 효과는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전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초등교육의 핵심은 질서 교육입니다. 그 질서를 망치게 된다면 아이들이 현실을 살아가는 방식이 신경증적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이들이 교사의 체벌보다 훨씬 가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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