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어로 새긴 십자가
켈트 문화는 기원전에 유럽 중부와 서부에서 활동하던 민족입니다. 라틴어로는 갈리아인이라고 부르기도 했죠. 청동기와 철기 문화를 담당했었습니다. 대륙 켈트족은 율리우스 시저에 의해 평정되어서 로마화가 되었었습니다. 아일랜드는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지 않았었습니다. 그 덕분에 켈트족의 오리지널리티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을 라틴어로 갈리아인(Galus)이라고 불렀습니다. 켈트족 중에서 로마제국 영토에 거주했던 집단이죠.
그리고 ad 5세기. 성 파트리치오가 아일랜드에 와서 가톨릭을 전파합니다. 그리고 그 가톨릭은 켈트족의 오리지널리티와 결합하면서 켈트 기독교라는 독창적인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그런데 17세기가 되자 문제가 생겼습니다. 영국 왕정의 종교 개혁(성공회 확립) 이후, 영국은 가톨릭을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17세기 플랜테이션 정책을 통해 영국/스코틀랜드의 개신교 정착민을 아일랜드에 대규모로 이주시키면서 종교적/민족적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
이때 영국이 아일랜드를 공격합니다. 역사가들마다 제각각 해석이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종교분쟁으로 해석하는 학자들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분쟁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런 시각보다는 식민과 반식민의 충돌이라고 보는 게 더 옳겠죠.
특히 올리버 크롬웰의 1649년 아일랜드 정복은 피의 역사를 남겼습니다. 이 정복은 대규모 학살과 토지 몰수를 동반한 극단적인 탄압의 시기였습니다. 크롬웰 통치 기간 동안 대규모 학살과 토지 몰수가 자행되었습니다. 17세기 후반부터는 일련의 형벌법을 통해 가톨릭 신자들의 정치, 경제, 교육 권리를 박탈하고 아일랜드어 사용을 억압했습니다. '아차!' 하는 말도 아일랜드어로 하는 게 발견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죽였을 정도라고 하니까요. 얼마나 많이 죽였으면 아일랜드의 인구가 줄었다고 합니다.
1700년대의 영국 헌법에는 아일랜드에서 쓰던 언어인 Gaeilge을 폐지하고 공교육 및 공문서에 영어만 사용하도록 강제했습니다. 오직 영어만 쓰게 하는 거죠. 이것이 식민지화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이런 영향이 있어서 일까요? 영국은 아일랜드어만이 아니라 다른 소멸위기언어도 있습니다. 콘월어나 맨섬어, 웨일스어가 그것이죠. 유네스코에서 소멸 위기 언어로 지정한 언어입니다.
그리고 당시 영국은 아일랜드인들에게 교육도 시키지 않았고 투표권도 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아일랜드인들의 신념은 완전히 꺾이지 않았습니다. 영어를 정복자의 억압적 언어로 보고 그들의 언어를 말하면 내면이 엉망이 되고 감정표현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꼭두각시처럼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가톨릭 신부들이 게일어를 예배를 통해 조금씩 사람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적발되면 바로 처형되었지만 목숨 걸고 가르친 겁니다.
아일랜드도 영국에 저항해서 독립운동을 한 끝에 1921년에 독립을 합니다. 영국과 앵글로-아일랜드 조약을 체결한 겁니다. 이때 협상을 하면서 아일랜드의 일부를 영국에 넘겨주고 독립하게 됩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식민지 경험을 한 우리의 역사와 공감대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윤동주 시인의 시와 잘 어울립니다. 켈트문화와 결합된 가톨릭은 어떤 분위기일까요? 상상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An ghrian a bhí ag tóraíocht,
Anois crochta, ar chros-altóir ard
An tséipéil.
Tá an spuaic chomh hard sin,
Conas a d'fhéadfainn dreapadh?
Ní chloistear cloigín ar bith,
Ag spaisteoireacht, ag feadaíl.
An fear cráite,
Dá gceadófaí cros dó,
Mar Íosa Críost shona,
Crochfaidh mé mo mhuineál,
Doirtfidh mé go ciúin m'fhuil,
Ag bláthú mar bhláth,
Faoin spéir ag dul i ndorchadas.
쫓던 태양,
이제 걸렸네, 교회 높은 십자가 제단에.
첨탑은 저리도 높아,
어찌 오를 수 있을까?
어떤 종소리도 들리지 않고,
정처 없이 헤매며, 휘파람 소리만.
고뇌하는 자여,
그에게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축복받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나는 내 목을 내어주고,
고요히 내 피를 쏟으리니,
꽃처럼 피어나,
어둠 속으로 저무는 하늘 아래.
본 보고서는 켈트어파에 속하는 **아일랜드어 시(詩)**가 현대 한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법적, 의미론적 변환 양상을 분석합니다.
아일랜드어는 동사-주어-목적어(VSO)의 어순, 풍부한 전치사 활용, 그리고 명사의 성(性)과 격(格) 변화 등 한국어(SOV, 교착어)와는 매우 상이한 구조를 지닙니다. 이러한 언어적 간극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AI) 번역 시스템이 원문의 시적 표현과 함의를 한국어의 문법 체계에 맞춰 어떻게 자연스럽게 재구성하는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분석 대상은 윤동주 시인의 테마와 공명하는 아일랜드어 시 **"An Chros (십자가)"**의 AI 번역본입니다.
AI 번역은 아일랜드어의 구조를 한국어에 맞추기 위해 다음 네 가지의 계산적 문법 변환 원리를 적용합니다.
1. 어순(Word Order)의 변환: VSO에서 SOV로 아일랜드어의 기본 VSO(동사-주어-목적어) 구조를 한국어의 자연스러운 SOV(주어-목적어-동사) 어순에 맞춰 단어와 구의 순서를 재배열합니다.
2. 형태론적 변환: 굴절어에서 교착어로 아일랜드어의 명사, 동사 굴절 형태(격, 성, 수, 시제 변화)를 한국어의 조사, 어미, 또는 문맥상 적절한 어휘로 치환하여 문법적 관계를 명확히 합니다. (예: 정관사 'An'은 한국어에 직접 대응어가 없어 문맥에 따라 생략되거나 지시어로 번역됩니다.)
3. 전치사(Preposition)의 후치사(Postposition)화 아일랜드어가 전치사를 사용하여 관계나 위치를 나타내는 반면, AI는 이를 한국어의 명사 뒤에 붙는 조사(후치사) 형태로 변환하여 의미를 전달합니다.
4. 시적 표현 및 함의의 재구성 단순한 직역을 넘어, 원문의 비유, 은유, 내포된 정서를 한국어의 시적 관용구와 표현 방식으로 재구성하여 원문의 정서를 보존합니다.
다음은 아일랜드어 시 "An Chros"의 구체적인 구문을 통해 AI가 위 변환 원리를 어떻게 적용하는지 상세히 보여줍니다.
아일랜드어 원문은 "An ghrian a bhí ag tóraíocht," 이며, 한국어 번역은 "쫓던 태양," 입니다. 이는 어순 변환 및 관형절 처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아일랜드어 원문은 VSO 어순의 관계절 구조(The sun that was chasing)를 가지는데, AI 번역은 이를 한국어의 SOV 어순에 맞게 **"쫓던 태양"**이라는 자연스러운 관형절로 재구성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일랜드어의 정관사 'An'은 한국어 문맥상 생략되어 자연스러운 표현을 만들었습니다.
아일랜드어 원문은 "ar chros-altóir ard An tséipéil." 이며, 한국어 번역은 "교회 높은 십자가 제단에." 입니다. 이 구문은 전치사 후치사화 및 소유격 처리 원리를 따릅니다. 아일랜드어 원문은 전치사 'ar' (~위에)와 소유격 형태 'An tséipéil' (of the church)를 포함합니다. AI는 'ar'을 한국어의 처소격 조사 **'에'**로 변환하고, 소유격 형태는 문맥상 명사 **'교회'**로 간결화하여 "교회 높은 십자가 제단에"로 표현했습니다.
아일랜드어 원문은 "Conas a d'fhéadfainn dreapadh?" 이며, 한국어 번역은 "어찌 오를 수 있을까?" 입니다. 이는 의문문 구조 및 조동사 처리를 보여줍니다. 아일랜드어 원문은 의문사 'Conas' (How)와 복잡한 조동사 굴절 'd'fhéadfainn dreapadh' (could I climb)를 사용합니다. AI는 이를 한국어의 의문 부사 "어찌"와 가능 표현 '-(으)ㄹ 수 있다', 그리고 의문형 어미 '-(으)ㄹ까'를 활용하여 **"어찌 오를 수 있을까?"**로 적절히 대응시켰습니다.
아일랜드어 원문은 "Ag bláthú mar bhláth," 이며, 한국어 번역은 "꽃처럼 피어나," 입니다. 이 구문은 비유적 표현의 보존 사례입니다. 아일랜드어의 비교 전치사 'mar' (~처럼)를 한국어의 비교 부사격 조사 **"처럼"**으로 정확히 번역했습니다. 문법 구조는 다르지만, 비유의 핵심 정서와 의미를 "꽃처럼 피어나"라는 표현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했습니다.
아일랜드어 원문은 "An fear cráite," 이며, 한국어 번역은 "고뇌하는 자여," 입니다. 이 예시는 정관사의 문맥적 처리를 보여줍니다. 'An fear cráite'는 'The tormented man'을 의미하며 정관사 'An'을 포함합니다. AI는 이를 직접 번역하는 대신, 시적 뉘앙스와 문맥을 고려하여 '고뇌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강조한 **"고뇌하는 자여"**라는 호칭으로 변환하여 시적 정서를 살렸습니다.
AI 번역은 아일랜드어와 한국어 간의 심대한 문법적 차이를 극복하는 데 성공적이지만, 시 번역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몇 가지 한계점 또한 존재합니다.
시적 운율 및 음보의 변형: AI는 의미 전달에 중점을 두므로, 아일랜드어 시의 고유한 음성적 아름다움이나 운율(Rhythm)은 한국어 번역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변형되거나 상실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의어 및 함축의 미포착: 시어는 종종 다의적이거나 깊은 함축적 의미를 지닙니다. AI는 통계적 확률에 기반하여 가장 일반적인 의미를 선택하므로, 'chros'가 지닌 종교적, 희생적 상징성을 완전히 재현하기는 어렵습니다.
문화적/외부 문맥 활용의 한계: AI는 주어진 텍스트 내에서 문맥을 파악하지만, 시 전체의 맥락, 작가의 의도, 그리고 아일랜드의 깊은 켈트 문화적 배경 등 외부 정보를 인간 번역가처럼 활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일랜드어 시의 한국어 AI 번역은 언어 간의 근본적인 문법적 차이(VSO vs. SOV, 굴절어 vs. 교착어)를 극복하고 원문의 핵심 의미와 정서를 재구성하는 데 성공적인 양상을 보입니다.
AI는 언어 장벽을 넘어 문학 작품을 더 많은 독자에게 소개하는 강력한 조력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의 예술적 깊이와 문화적 함의를 완전히 전달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인간 번역가의 섬세한 통찰과 감각이 상호 보완적으로 결합되어야 할 영역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