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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hee An Oct 15. 2016

이방인으로 사는 것에 대하여

그 집의 식구들은 모두 스물넷에서 서른두 살 사이의 사람들이었다.

 



 그 집의 식구들은 모두 스물넷에서 서른두 살 사이의 사람들이었다. 인생의 정거장 같은 나이. 늘 누군가를 새로 만나고 또 떠나보내는데 익숙해져야만 하는 나이. 옛 가족은 떠났으나 새 가족은 이루지 못한 나이. 그 누구와도 가족처럼 지낼 수 있으나 다음 날이면 남남처럼 헤어질 수 있는 나이.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  *  * 




 유럽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온 지 420일째가 되는 날이다. 



 타고난 성향 탓일 것이다. 나는 종종 그 무엇도 나 자신을 구원해 주지 못할 것 같은 순간을 맞이한다.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저 시간이 흘러 밤이 되고 다음날 아침이 밝아 컷 편집을 하듯이 그 순간을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는. 아일랜드에서는 그런 순간을 꽤나 많이 맞이했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필요 이상으로 자주. 하지만 아주 다행히도 런던에 넘어온 이후로는 그런 순간을 아주 아주 드물게 만나고 있다. 나와 이 도시는 서로를 위해 디자인된 것처럼 서로 조화롭기 때문이고, 눈만 마주쳐도 이유 없이 웃음이 나서 실없이 깔깔댈 수 있는, 내겐 너무나 과분한 사람들과 살고 있기 때문이고, 비록 하루가 멀다 하고 들고 나기를 반복할지언정 매일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존재한다. 



 나는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멋지고 아름다운, 여전히 나를 매혹시키는 이 도시에서의 삶은 시간제한이 걸려 있다. 그래서 나는 완전히 이 곳에 섞일 수가 없고, 사람들은 항시 들고 나는 탓에 나는 일과를 마치고 심심할 때 불러내 시답지 않은 대화를 하며 함께 산책을 할 수 있는 친구가 딱히 없다 할 실정이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나는 여전히 혼자가 되는 일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이다. 아일랜드에서의 시간이 너무나 지독했던 탓일까, 나도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들어서 도전하는 일을 어렵게 느끼게 되었기 때문일까.



 물론 진짜 이유는 따로 있겠지.  



 알고 있다. 인간은 모두 혼자이지. 그러나 나는 아직 그 사실이 뭇내 서글프기만 하다. 인간은 모두가 공평하게 외로운 것이라면 그냥 공평하게 모두가 외롭지 않으면 안 될까, 라는 유아적인 생각을 아직도 종종 하곤 한다. 분명 나 또한 아름답고 좋은 사람에게 둘러 싸여 안전하고 아늑한 일상을 영위하고 있는데도, 어느 순간 문득 덩그러니 남겨졌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과연 외국 생활을 지속할 만한 인간인가 하는 의심을 다시 한번 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이 내 조국이고, 그 땅을 영영 떠날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아버릴 준비가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원하는 것과 도무지 견딜 수 없는 것이 너무나 정확하다면, 그리고 그것들과 타협할 생각이 전혀 없다면, 심지어는 그 두 가지가 공존한다면 그 삶은 조금 고달파진다. 



 '나'라는 이방인은 참 피곤한 인간이기도 하다. 



 언제까지 정류장 같은 나이를 살아내야 하는 것일까. 나이가 든다고 인생이 쉬워지지는 않는다는 건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으나, 아직도 나는 헛된 희망을 품는다. 대망의 이십 대를 끝내고 삼십 대가 되면 조금은 나 자신에게 익숙해지지 않을까 하는, 그때는 적어도 무언가 되고 있지 않을까 하는. 하지만 알고 있지, 그 누구의 삶도 그렇게 한 순간에 단순해질 수는 없다는 걸. 나는 아마 호호 할머니가 되어서도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테고, 이제 생에서 남은 일은 누울 자리 보러 다니는 일 말고는 할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루어 놓은 일이 없어 자책하고 있을 것이란 걸. 



 스스로 찾아내야겠지. 이방인으로써의 자유를 누리며 동시에 외로울 것인가, 같잖은 소속감을 느끼며 노예 같은 삶을 살 것인가. 두 가지의 선택지에서 나는 분명 한 가지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자의이든 타의이든, 언젠가는 결판이 날 것이다. 다만 나는 바랄 뿐이다. 어떤 선택을 하던지 단단하기를, 지금의 나처럼 그때도 강인하기를. 



 이런 나이도 마침내 그리워질 것 같으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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