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기 위해
요즘 다시 부지런히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물론 10대 시절 영화에 미쳐 살던 때의 나 만큼은 못하다. 그땐 집에서 하루에 3-4편씩 보고도 지치지 않았고, 극장에서 연달아 2-3편 보는 일도 예사였으니까. 그때는 용돈이 생기면 무조건 대학로에 갔다. 동숭아트센터의 하이퍼텍 나다. 고등학생 시절의 나를 위로하던 아지트였다. 상영관 너머로 장독대가 단아하게 놓인 작은 마당이 보였고, 영화 시작 전이면 커튼이 닫혔다. 아마 그곳에서 지금의 내가 뜯어먹으며 사는 많은 이미지를 저축해 둔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를 배우겠다고 들어간 대학 시절부터 영화와 담을 쌓기 시작했다. 그때는 한 달에 1-2번도 극장을 찾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에는 영화에 진절머리가 나서 영화 제작 실습수업에 들어가는 일이 제일 지옥 같은 일이었다. 영화에 대한 회의와 재능 없음을 직시하는 일만으로도 너무 벅찬데, 열정에 똘똘 뭉쳐있는 학우들을 보고 있자면 나 스스로가 이방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참 못났었다.
그러다 글쓰기가 좋아졌고, 그 후로도 글을 써서 살려는 꿈을 오래도록 꾸어왔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이상하게 요즘의 내 모습에서 하이퍼텍 나다를 드나들던 어린 내가 다시 보인다. 이래저래 일진이 사나워 울적한 겨울이 지속되는 요즘, 마음이 찌뿌둥하면 일단 극장에 간다. 물론 런던에도 특별히 좋아하는 극장이 몇 있고, 불이 꺼진 상영관에 앉아 아름다운 음악과 독특한 세계관과 황홀한 이미지와 지적인 메시지를 경험하면 한동안은 또 살아갈 힘이 나는 것이다.
누구든 자기가 위로를 찾는 대상이 하나씩은 있을 텐데, 요즘의 내게 가장 큰 위안을 주는 것, 바로 다시 영화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영화감독이 되려는 꿈을 꾸지는 않을 것이다. 촬영 현장이 죽도록 괴롭고, 더욱이 영상을 만들어내는 재능이 눈곱 만치도 없으며, 결정적으로 그 모든 걸 극복하고 버텨볼 깡이 없으니까. 아마도 나는 이렇게 평생을 완전한 관객도 아닌 채, 완전한 영화인도 아닌 채 중간의 어느 지점을 기웃거리며 살 것이다. 기웃거리다 언젠가 한 번은 쿡 찔러보기도 할 테고, 역시 이건 아니라며 도망쳐 엉뚱한 일을 하며 먹고살기도 할 테지.
아마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영화 관련된 일을 찾아볼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아직은 내 가슴을 뛰게 하고 진득한 위로를 주는 것, 아무래도 영화가 제일인 것 같으니까. 현장에 나가 영화를 직접적으로 만드는 것만이 영화의 전부는 아니니, 사무실이든 극장이든 영화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긴 하겠지. 부디 그 과정이 즐겁기를, 또 못난 나를 발견하지 않길 바랄 뿐.
대학 시절 오며 가며 마주했던 선배들이 첫 장편을 세상에 내놓는 모습을 요즘 들어 심심치 않게 목격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연락할 만큼 친분이 있지 않아서 차마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지 못하고 있다. 이래저래 다들 각자의 사정이 있었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창작을 하고 있었다 생각을 하니 너무나 멋진 것이다. 나 또한 그동안에 무언가를 하며 살았을 테지만, 그만큼 부지런히 살아왔나 생각하면 썩 자신이 없다. 재능과 근면을 겸비한 그대들은 만들면 되고, 약간의 애정을 지닌 나는 보면 된다. 그렇게 보다가 마음이 동하는 작품을 만나면 그저 감사하고.
기쁘다. 영화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알게 되어서 참 다행이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내가 아직 그대로 여기에 있어서, 그게 가장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