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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hee An Jul 28. 2018

나의 꿈은 B급.



 주제가 B급이래. 나는 B급 감성이 없는데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날 아파버릴까? 나의 칭얼거림에 친구가 답했다. 니 인생이 B급이라고 생각 안 해? 생각나는 거 아무거나 써도 줄줄이 나오겠네. 아. 뼈를 맞은 기분이어라.



/



 제주에 다녀왔다. 전혀 틈이 없어 보이지만 비행기표를 영수증과 함께 내다 버릴 수 있을 만큼은 인간적인 매력을 가진 친구와 함께였다. 그녀와 나는 허공에 한 손을 올려 살랑살랑 흔드는 모습이 언뜻 오래된 멜로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시인의 아파트에 짐을 풀었다. 재워달라는 직선적인 요청 대신에 내려가면 놀아 주실 테냐 운을 띄웠다. 역시 시인이라서일까, 수없이 많은 손님을 치르며 다져진 내공일까. '재워는 드릴게'라는 나의 행간을 정확히 파악한 답이 돌아왔다. 공항에 도착하자 시인과 제주살이 중인 또 한 명의 밝은 친구가 우리를 마중 나왔다. 우리들 넷은 우왁 반갑다며 돌고래 소리를 내면서 차에 짐을 싣고, 그날의 첫끼를 마셔버린 뒤 이곳저곳으로 살살 나들이를 다녔다. 마음이 미어져서 어쩔 줄을 모르게 만드는 노래들과 우리들을 실어 나르던 귀여운 차가 뒤집힐 만큼 신나는 음악을 번갈아 재생했다. 달뜬 오후였다.



 마트에 들렀다. 그의 앞으로 8만 원이 넘는 포인트가 적립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3일 내내 충분히 먹고 마시고도 남을 거라던 양의 술과 안주거리들을 결제했지만 결론적으로는 그날 밤, 그 속에 빠져 익사하고도 남을 양의 술을 다 마시고도 모자라 다시 술을 사러 나가야 했다. 음주에 재능이 없는 나는 작은 맥주 2캔을 밤새 나눠 마시며 관찰자의 입장이 되어 두 문학청년의 대담을 지켜보았다. 그네들은 밤새 자신이 쓴 시를 한 편 읽고 감상을 전하고 답시를 읽고 감상을 전하기를 반복했다. 조개 스테이크니 귤이니 하는 시어들이 후텁한 밤의 강 위에 둥둥 떠다녔다. 문학을 전공한 이들의 작품들은 진짜 '시'처럼 들렸다.



 "현대무용은 바닥에서 엉덩이를 떼면 안 되는 거예요." 라며 바닥에 널브러져 양팔로 바닥을 쓸어버리고 있는 두 문학청년을 보며 이들이 술독에 빠져 죽지 않게 돌보는 일이 이 순간의 내 사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철 지난 유행가에 맞춰 막춤을 추다가, 탱고를 추다가,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양팔을 휘휘 젓던 그들의 손을 내 양손에 꼭 붙잡고 편의점으로 나갔다. 렌즈를 벗어둔 나는 뵈는 게 없어 주황색 재활용 수거함들을 보고 포장마차 떡볶이를 연상했고, 시인은 매우 시적인 비유라며 다음날에는 전혀 기억 못 할 감상을 던져주었다. 동이 트려는 무렵 나는 오돌뼈와 밥을 김에 야무지게 싸 먹고 힘을 내어 술상을 물러두었고, 입이 돌아가지 않길 바라며 여기저기 시어가 매달려 있는 그들의 몸에 이불 두 개를 사악 던져주었다. 초현실적인 밤이었다.



 방으로 돌아왔다. 대낮의 한라산 드라이브에서 누군가 재생했던 "우리들을 젊었고, 여름이었고, 여름밤은 길었고, 아름다웠다."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를 밤새도록 들으며 곰곰 생각했다. 응 정말이지 젊은 우리들은 이 긴긴 여름밤에 참 아름답구나, 그런데 나는 왜 내 문장을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하고 말이다. 좋은 작품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참 괜찮은 밤이라 위안하였으나, 나는 결국 내가 아끼는 단어 하나조차도 발설하지 못했다는 자명한 사실에 조금은 성질머리가 났다.



 영화를 전공했지만 허구의 인물을 창조해 서사 안에 욱여넣는 일이 중노동처럼 느껴져 연출가가 되기를 포기했다. 언젠가 꼭 좋은 영화를 만드세요,라고 말하는 선한 이들에게 영화는 진작에 때려치웠는 걸요 호호 깽판을 치며, 대신에 저는 글 쓰는 걸 굉장히 좋아해라고 덧붙이고는 한다. 그러면 그들에게서 아, 시나리오 잘 쓰실 것 같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사람들의 선한 오해를 침소봉대하는 나의 성향은 스스로를 부자연스러운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거 하면 될 걸, 도대체 누구의 인정이 필요한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비행기를 타기 전 육지에서 마주한 어떤 순간들과 섬에서의 며칠 밤 동안 내 생에 작은 틈이 생겨났다. 섬에서의 나는 3일 내내 이 미세한 균열에 대해 생각했다. 돌이킬 수 있는 균열인가, 앞으로의 내 생은 또 전과 같지 않을 것인가. 생각을 해 보아도 답은 없어서 나는 종일 "우리들은 젊었고, 여름이었고, 여름밤은 길었고, 아름다웠다"라는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시인은 벌게진 얼굴로 말했지. "모든 고백은 부끄러움을 동반하는 것 같아요." 나의 이 부끄러운 고백이 비로소 시작이기를 바란다. 월화수목금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의젓한 직장인으로 살다가 토요일 밤이면 빨래를 돌리고 일요일 밤이면 손톱을 깎는 평온한 일상의 사이사이에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솔직한 글을 끼워 넣다 보면 균열은 조금씩 메워지고 나의 부자연스러움도 조금은 봐줄만하게 되지 않겠는가 하고. 어쩌면 그 균열이 무시 못할 만큼 커져서 기대치 못한 어떤 흥미로운 방향으로 내 생이 흘러갈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고 말이다.



 누군가의 저평가, 당신의 고평가, 이제는 그것들에 휘둘리지 않아 보려고 한다. 시도 소설도 비평도 아닌 내 글은 언제까지나 문학의 언저리만 겉돌겠지만, 결국 A급이 되는 일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나는 내 길을 묵묵히 걸어보려고. 갈팡질팡하다 그 어떤 것도 표현하지 못하는 일보다는 부끄러운 고백을 내 힘닿는 데까지 발설하는 일이 덜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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