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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연 Jan 14. 2019

다양한 이름이 존재한다

나는 당신의 말에 내 진심을 걸려한다

빨간색이라고 다 같은 빨간색이 아니라고.

채도가 조금씩 다르다고.
하다못해 채도가 같다 해도 보는 시각에 따라 색이 달라지기도 한다.

빛을 받은 빨강과 받지 않은 빨강의 농도는 차이가 있다.


마찬가지로 말도 그렇다. 

말은 정확하게 들어도 오해가 생기는 법이다. 서로 생각하는 것이 달라서이기도 했지만, 말 안에 모든 상황을 표현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한정된 데다가 입을 여는 순간 사방으로 흩어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말은 글이 아니라 볼 수 없으니 보이지 않는 부분은 각자가 채워내야 비로소 온전한 말의 무게를 지녔다. 


말은 사실 잘할 필요가 없다.

완전히 듣고 말을 잘해야 하는 줄만 알고 잠시 입을 닫고 멈춰있을 때가 있었다. 어떤 말이든 머릿속으로 깔끔하게 정리해서 완벽한 문장을 구사해야만 잘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초등학생 무렵, 말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친척 어르신 말씀에 의해 나는 친구들에게 한 마디를 건넬 때도 머릿속으로 육하원칙을 따져가며 말했다. 

하지만 사실 진정 중요한 것은 뭔가를 수려하게 잘 표현한다기보다는 진심을 읽어낼 수 있느냐였다. 소통은 말로 하는 것이지만, 침묵 속에서 완성되는 말도 더러 있었다. 사람의 표정, 행동, 눈빛만으로도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설리번 선생님이 헬렌 켈러에게 소리로서 말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물을 만지게 하고 꽃 향기를 맡아보게 하면서 마음으로 느끼게 했던 것처럼. 

말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이해하는가, 얼마나 소통하려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마음이 열려있다면 말이 없는 세상에서도 많은 것을 주고받으며 살 수 있다. 그렇게 말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마음을 통하려 하기 시작하니 비로소 사람의 말이 들렸다. 그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신기하게도 모두 알 수 있었다. 정말 시끄러운 식당에 가거나 혹은 놀이기구를 탈 때, 상대의 목소리가 갈라질 때조차 그 사람의 마음에 내 마음을 걸면 정확한 상황은 알지 못하더라도 온전히 이해가 되고 그렇게 서로 어우러졌다.


같은 색깔도 채도와 명도에 따라 다양하게 나뉠 수 있는 것처럼,

'빵'이라는 단어에도, '좋아한다, 고맙다, 사랑한다, 미안하다'와 같은 따뜻한 단어에도

다양한 시각과 구분이 존재한다.


누군가의 말을 왜곡하지 않고,

상대가 A의 농도 B의 채도로 C의 색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 때 

나도 그 농도로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각자의 시각에 따라 말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마도 마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네가 좋다는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이 겉껍데기뿐인 말이라 생각하거나 

혹은 언젠가 변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과 두려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좋다'는 단어인데

서로의 상황과 사정에 따라 파악이 달랐다.


아픈 단어는,

혹은 겉으론 좋은 단어지만 상대의 진심은 아닌 것 같을 때는

높은 농도와 채도를 걸어 최대한 밝은 색으로 나에게 남겨주고 싶다.


채도가 높은 보라색과 낮은 보라색이 있다면

나는 높은 보라색을 선택하고 싶다.


나에게 선물한 말이 오래오래 선명하게 남아

그 기억이 소중한 시간으로 존재하기를.


마무리를 아프게 한 사람일지라도

과거의 과정만큼은 나를 진심으로 사랑했기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어떤 말도 어떤 상황도 늘

같은 색 안에서 최대한 밝은 명도와 채도로 바꿔 받아들이는 자세를 지니겠다.


어떨 때는 네가 좋다는 말보다

네가 싫다는 말이 더 오랜 여운을 남기는 법이었다.


네가 싫다는 말에도 나름의 의미를 걸어 

한마디 말도 소중하게 생각하려 한다.


사실은 나를 많이 사랑했는데 말을 그렇게 한 것뿐이야.

과정은 나를 사랑했지만, 나도 실수를 했어.

그가 나를 떠난 것은 그만의 잘못은 아니야.

좋아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기를 진심으로 바랄게.


어떤 말에도 분노를 느끼기보다는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고 바라보는 것이

결국엔 나의 마음에도 좋은 일임을 잘 안다.


상대가 던진 채도만큼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적어도 지난 일들에 얽매여 색을 왜곡하지는 말아야 한다.


어떤 말이든 사실 모두 아름답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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