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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연 Dec 17. 2018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살았네


며칠 전 눈이 내리고 한동안 영하의 날씨가 계속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날씨가 빨리 풀렸다.

그래서 운동을 할 겸 친구와 집 근처 공원을 도는데

아직 덜 녹은 눈이 공원 군데군데 보였다.


바닥에 있는 눈은 가로등에 운치 있게 어우러졌다.


눈이 아직 덜 녹아서, 밤이 되어서, 가로등 불빛이 공원을 은은히 비추는 게 좋았다.


"아름답다."


감탄사처럼 내뱉었다.

그래, 아름답다는 말은 신중을 기해서 나오는 단어가 아니었다.

마음속에 겹겹이 쌓인 삶과 상처, 낭만과 슬픔, 웃음과 행복과 같은 감정들이 한순간 터져 나오듯 만들어지는 단어였다.

천천히 빚어야 하고 정말 소중한 순간에 써야 하는 말이었지만, 

우리의 무의식에 있는 단어여서 언제나, 어디에서든 

아무렇지 않게 툭툭 나오곤 했다.  


나는 발 밑의 풍경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사진을 찍었다.


"오래 기억하고 싶어."


외로울 때, 아플 때,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지만 기댈 사람이 없을 때 그런 순간마다 이 사진을 보면 참 따뜻해질 것 같았다.


그간 정말 소중하고 맑은 것들을 잊고 살아온 것은 아닌가 싶어 서운해졌다.

삶에 여유를 갖고, 아름다운 것들을 기억하며 살자고 다짐했음에도 덜 중요한 것들에 마음을 뺏겨 

살아왔다. 

 

걸음을 천천히 옮겨 주변의 소중하고 감사한 것들을 기억하며 살아야지.

맑은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고 조심스럽게 마음에 쌓아 마음을 조금씩 정화하며 살아야지.

밥을 천천히 먹으며 단순히 배를 불리는 행위보다

주변 사람들의 말과 표정 행동 등 더 소중한 것들에 집중해야지.


그래, 그런 것들을 기억하며 살아야지.

배를 불리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들보다는

밥을 먹으며 소중한 사람들과 나눴던 대화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풍부해져

오래오래 마음에 온기를 주는 것들에 더 집중하는 습관을 지녀야겠다.


반찬 하나를 더 먹으려 하기보다는

설령 밥을 덜 먹더라도 들어야 할 이야기를 듣고,

기억해야 할 것들을 기억하며 식사시간을 보내야겠다.

그런 것들이 가장 오래 마음을 불리게 하기 때문이다. 


정녕 더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살아왔다.


아스팔트에 피어있는 풀꽃,

비가 갠 후의 무지개,

카페에 울리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

밤바다의 파도소리,

눈이 덜 녹은 거리 등.


소소하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에

더 위로를 얻는 법이었다.


친구와 공원을 두 바퀴 돌면서 

서로의 소중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는 사람이라고 했고,

나는 삶이라고 했다. 


사람들에겐 저마다의 삶이 존재하듯이

나의 삶에도 역시 각자의 삶을 지닌 사람들이 존재한다.


친구에게 소중한 것들이 나에게 소중한 것과 많이 닮아있었다.


누군가의 소중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삶을 공유하고

또 내가 그 소중한 사람이 되어주는 것.


"아름답다."


친구와 함께 했던 그 밤이

통째로 선물 같은 시간이 되었다.


그날 밤, 

주고받았던 이야기들이 

오래오래 

포근하게 남았다. 


나의 소중한 삶 사이사이에

친구의 말과 

눈이 덜 녹은 공원 거리,

친구의 뺨,

친구의 사람들이 군데군데 섞여 

나의 삶을 응원하는 고마운 말들로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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