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대할땐 늘 흰 도화지를 대하듯이.
고등학생 때 환경이 어려운 중학생을 상대로 멘토링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다. 한달에 한 번 만나서 취미활동을 함께 하고, 수시로 전화나 메일 등으로 학생의 고민을 들어주며 좋은 나침반이 되어주면 되었다.
아이를 만나기 전 사전정보를 받았는데 소년원에 다녀온 아이라는 점, 가출경력이 많다는 점이 가장 인상깊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상당히 센 아이인듯하여
내 멘토링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오히려 역효과가 나진 않을까, 싶어서 도서관에서 학교부적응 아이들에 관한 책을 몇 권 읽었다.
아이를 처음 만난 날 , 내가 엄청난 선입견을 갖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아이는 미소가 밝았고, 내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썼다.
도저히 소년원에 다녀왔을 거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세상이 저를 놓아주지 않아요."
아이가 말했다.
"세상이 너를 놓아주지 않는다는 게 무슨 말이야?"
"선생님. 한번 a인 사람은 죽을 때까지 a로만 사는 거에요?
어릴 때 아버지한테 매일 폭행을 당했어요. 죽고싶었는데 죽는 법도 몰랐고요. 집에서 위축되고 스트레스 받으니까 집도 몇 번 나갔고 학교에선 수업 집중을 못하겠더라고요. 성적이 개판이었어요. 근데요. 저 너무 아파서 그런 거잖아요. 너무 힘들어서 그런거잖아요. 어른들은 그런거 못보나봐요. 많이 힘들지는 않냐는 한마디, 괜찮아 넌 할 수 있어 한마디 건네는 사람 한 명 없었어요. 오히려 성적이 왜 이 모양이니? 넌 구제불능이야. 커서 뭐가 되려고 그래? ....저는 정말 버틸 수가 없었어요. 그래도 작년부턴 열심히해보려고 수업도 열심히 듣고 과제도 꼬박꼬박하고 성적도 많이 올렸어요. 근데요. 그럼 된줄알았는데 여전히 선생님들이 한마디씩 해요. '넌 안돼.' '이러다 말겠지.'
마음이 너무 아파요."
먹먹했다.
한번 a로 살면 끝까지 a로 살아야하냐니.
인생이 얼마나 긴데 왜 죽을때까지 a로 살아야하지?
결국엔 사람들의 시선이 삶을 구분하고, 아이가 새로 살아갈 용기를 앗았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하는 노력조차 '아이의 과거'와 아이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편견과 손짓으로 더디게했다.
더 잘 될거라고 용기를 주지는 못할망정
네가 그럼 그렇지, 아무렇지 않게 뱉어버리는 아이 주변의 어른들에 화가 났다.
"a가 계속 a여야된다고 누가 그러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발전이 없는 사람들인거야. 위인전 읽어봤어? 수많은 위인들이 한때 역경이 있었어. 하지만 그걸 극복했고 훌륭한 사람이 되었지. 내가 사람 진짜 잘보거든? 너 진짜 잘될거야. 내가 확신하는데 너 엄청엄청 잘 살거고 좋은 사람들 만날거야. 너 앞으로 행복할 일밖에 없어. 장담해. "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 안하면요? 우리반 애 한명이랑 제가 둘다 배아파서 보건실갔는데 담임선생님이 저한테만 꾀병부리지 말라고했어요. 진짜 아팠는데..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다가도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걸 알면 기운이 빠져요. 그래 내가 그렇지 뭐.."
"그렇게 생각 안 하는 사람들? 너 훌륭한 사람될건데 뭐 그런 하찮은 사람들까지 생각할래? 너에 대한 안목이 있는 사람들만 신경쓰면서 살아. 인생 바빠. 쓸데없는 사람들한테 시간쓰지 말고 널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만 생각해. 삶이 훨씬 행복해질거야."
"...고마워요. 쌤 쌤은 나중에 크면 아니 어른이 되면요. 하나만 약속해줘요. 남한테 편견주는 사람되지 말아요. 그리고 누군가를 편견으로 바라보지도 않겠다고."
"응 약속할게. 늘 사람을 하얀 도화지로 바라볼게. 그 사람에 대한 a라는 소문을 들어도 그 사람을 a를 기반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아예 하얀도화지로 대할게. 소문이 a든 b든 나에겐 어떤 사람인지를 보면서 살아갈게. 고마워. 누군가에겐 a여도 나에겐 b일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c일수도 있으니까."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사람을 볼 때 오로지 그 사람 자체로만 판단하게 되었다. 평판이 좋은 사람도 나와의 관계에선 무례할수도 있고, 반면 평판이 좋지 않은 사람도 나에게만큼은 최고의 존재가 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의 평판이나 그가 지니고 있는 것들, 그의 삶에 대해 바라보기 보다는 오로지 그가 나에게 어떻게 행동하는가. 나에게 그의 말이 어떻게 느껴지는가를 보려했다.
그러다보니 정말 좋은 사람을 알게되었고, 소중한 관계를 얻을 수 있었다.
a와의 관계에서 어떤 사람이었는가, 이런 복잡한 것들을 신경쓰지 않고 살다보니 훨씬 살아가는데도 수월했다.
단순하게 내게 다가오는 것들만 바라봤다.
또한 나역시 웬만하면 어떤 사람에 대해 선입견을 심어줄만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했다.
그 사람에 대해 서운한 감정이라던가 오해가 생긴 일들은 나와 그 사람 간의 문제일뿐 다른 사람들이 개입하여 생긴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려하지도, 또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나의 시선으로만 삶과 사람을 바라보고
또 다른 사람들도 오로지 본인들의 시선으로만 살아가기를 바란다.
어떤 해변이 있다.
당신은 그곳을 향해 가는 중이었는데
길에서 마주친 누군가가 거기엔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했다.
당신은 갑자기 거기에 가고싶은 마음이 줄어든다.
보통 거기에서 방향을 틀어 다른 곳으로 가거나 혹은 일단 가보거나 둘중 하나다.
막상 도착하면 정말 냄새가 나는지 한참 코를 킁킁댈 것이다.
실제 냄새가 난다면 역시 그렇구나, 하는 반응으로 실망할 것이다.
하지만 악취가 아닌 자연스러운 냄새일뿐임에도 냄새가 날거라는 편견에 의해 '진짜 무슨 냄새가 나는 것 같긴해.' 악취를 만들어낼 수 있다.
만약 그곳이 정말 자연스러운 바다냄새에 아름다운 경관을 가진 곳이었다면?
당신은 누군가의 말에 편견을 얻어 아름다운 곳을 바라볼 시간을 빼앗긴 셈이다.
진정 아름다운 곳은 당신만이 안다.
누군가는 바닷물은 없지만 넒은 갯벌이 있는 공간을 아름답게 여기며
또 어느누군가는 반짝이는 모래사장이 있는 바닷가를 아름답게 여긴다.
또 어릴 때 쓰레기더미가 있는 모래사장에서 놀았던 기억이 아름다운 추억인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러워보인다며.
누군가의 삶과 선택, 상황에 자신의 삶을 맡기지 말라.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열다섯의 소녀가 말한다.
"쌤 쌤 쌤은요. 어른이 되면 그 사람은 그 사람으로만 바라봐주세요. 누군가에게 편견을 심지 않는 어른이 되어주세요."
"약속할게. 용감하게 살아줘서 고마워. 네가 어떤 삶을 살았든 나는 너를 응원해. 너 진짜 잘될거야."
십년이 넘었지만, 아이의 온기가 아직도 느껴지는듯하다.
아름다운 풍경은 오로지 나의 오감에 의존해 판단할 일이다.
누군가의 삶을, 또 나의 삶에 대해 어떠하다고 평가하기엔
너무 이르다.
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라.
오로지 당신의 시선으로.
이미 빨간 물감, 보라색 크레파스가 칠해져있다면
그림을 그릴 영역이 한정되겠지만
개의치 말라. 당신은 당신만의 그림을 그리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