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si Apr 07. 2023

친애하는 너에게

To.  친애하는 너에게



 국경을 넘어서 가본적이 있어? 사실 말은 거창하지만, 해외로 여행을 가본 적이 있는지 궁금해. 나는 사실 어렸을적(이라고 하면 대학생 이하 시절에 말야)이나, 직장에서 보내주는 해외연수 말고는 따로 여행을 목적으로 해외를 놀러가본 일이 없거든. 나는 늘 여행을 그리워 하면서도, 이상하게 (내가 사랑하고 애증-정?하는) 한국을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어. 매순간 목적지를 선택해서 흘러가는게 삶이라고들 하지만, 요즘 나는 저 멀리 정해진 곳보다 더 생각해보고 싶은건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거든. 앞만보고 가는 삶보다 이제는 좀 더 주변을 둘러보면서 돌아서 가보기도 하고, 되돌아보기도 하면서 걸어가려고 해, 방향만 잃지 않는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는걸 이제는 알거든.


 


 이번 봄에는 좀 더 남쪽으로 가보고 싶더라? 그래서 그냥 무수히 많은 남쪽마을을 두고서도 밑으로, 밑으로 내려가다보니 '광양'과 '하동'사이에 머무르게 되었어. 그 안에는 섬진강도 있고, 매화도 있고, 섬정원이 있는 해변공원이 있는데 걷고 또 걷기에 좋은 풍경들이 많아. 광양 다압마을의 섬진강을 따라서 걷다보면 건너편 하동의 작은마을들도 보이고, 강변에 묶어놓은 작은 배들이 잔잔한 물결에 움직이면서 통통거리는 소리도 들리고, 멀리 오리떼들이 강변에 모여있는 모습들, 해변에서 넘어온 갈매기들이 끼룩-끼룩- 울면서 날아다니는 풍경을 계속 볼 수 있어.  걷다보면 같이 걷는 사람과도 침묵의 비중이 커지는 시간이 되곤 하는데, 그 시간 마저 평화롭고 아름답게 느껴지는건 내 기분탓일까?


 


 어떤 사람과 있느냐에 따라 그 날의 내 체취가 달라지는 걸 느낄 수가 있어. 잔잔한 사람과 대화를 하다보면 나도 마치 호수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듯이 목소리가 한톤 내려간 채로 안온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늘 기분이 좋은 사람과 같이 있다 보면 나도 대화가 끊이지 않고 헤어질때까지 까르르- 웃으면서 큰 소리를 내기도 하잖아. 그런게 아마 우리가 서로 느끼는 말의 파동일까 싶기도 해. 그것이 서로를 사랑하는 일일 수도 있고 말이야.



 아침부터 저녁까지 울음을 멈추지 않는 새들을 보면, 나는 언젠가부터 뜨거운 마음들을 잊어버리고 (혹은 잃어버린채?) 살고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 사실 난 여기까지 오는것도 온 맘을 다해 온건데, 아직도 남은 여정이 있다고 생각하면 내 안에 다 타버린 양초들 말고, 또 남은 불빛들이 있을지도 의문이고. 내가 30대가 되기전까지 늘 생각하는 나의 좌우명은 "즐겁게 살자"였는데, 정말 난 삶을 즐기며 살아왔을까? 이 모든것은 "행복한 삶"을 위해서 노력하는 마음이고, 아직 노력해야하는 날들이 남아있으므로 조금 더 내 마음을 아껴야 하는 순간도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 조금 실감해.



 그런거 있잖아, 글감을 줄때 단어를 던져놓으면 글짓기를 해야했던 시간들. 내가 "지금의 나"를 시어로 던져 본다면 어떤 말들로 표현할 수 있을까?   달력, 크림, 돌멩이, 화분, 산책, 보리, 사랑, 포스트잇 그런것들. 지금도 책을 읽다 말면 꼭 귀퉁이를 접어놓는데, 책갈피를 꽂아두고도 자꾸만 종이를 접게되는건 왜일까.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건 단어 말고도 이런 생활의 한 조각들로 몇십개의 문장들을 만들 수 있을거야- 파일의 최종, 최종최종, 진짜최종-2 이런것들처럼.


 아이폰 메모장에 시의 한구절을 적어두거나, 어쩌다 듣게 된 신비한 조합의 단어들을 기억하거나, 하나 둘씩 모으다 보니 책장 한칸을 차지하고도 차고 넘치는 시집들 처럼 어쩌면 저장공간을 넘어선 내 기억들도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는 중일 수도 있겠지.



 가을을 좋아했었다가 봄을 좋아하게 된것처럼, 너를 그리워 하다가도 언젠간 웃으며 우리가 우리였던 날을 추억할 수도 있고, 힘들때마다 찾던 바다보다 잔잔한 돌멩이가 비치는 강변을 사랑하게 될 때가 온다면 그건 내가 한뼘 더 마음의 반경을 넓히게 된 것이라고 생각해도 될까. 내가 하는 일이 결국엔 누군가를 돕는 일이 된다는 생각을 하면, 꾸준한 마음으로 해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기도 하고 그런거 말야.



 사랑이 사랑인 줄도 모르고 살기는 싫어. 우리는 종종 사랑에 시들고 사랑때문에 젖는 날이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사랑할테야-라는 말처럼 꿋꿋한 마음으로 하루를 버텨보기도 하고. 때론 견디는 마음으로 지내다 보면 언젠간 내 행복이 어디를 향해있는지를 알 수도 있을거라 믿어. 가끔 버티는 것도 답이라고들 하잖아.



  어느새 4월이야- 가끔 궁금해, 오늘 나한테 준비된 페이지는 어떤 내용일까- 이런 생각이 들때면 나는 나를 다시 읽어보곤해. 테라스커피도 한철이잖아, 오늘 산책은 길게 해보려고. 4월이 길고 길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빈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