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사람들이 성공을 이야기하는 법에 대하여
누구에게나 첫 시작은 어렵다. 과거형으로 시작되는 성공스토리가 지겨운 이유다. 처음부터 대박을 터뜨린 행운아는 세상에 없다. 대박 성공, 대박 스타들이 알고 보면 엄친아 내지는 숨은 재력가라는 걸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순진한 사회초년생이었을 때 믿었던 동화 같은 이야기는 진짜 동화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성공스토리가 감동적인 건 소박하게 성공한 이웃들이 존재하고 그들이 자신의 성공을 이야기하며 인생을 노래한다는 것에 있다. 근근이 살아가지만 행복하다는 마지막 말 한마디가 조금씩 나를 움직인다. 현실에 발을 딛는 법. 그건 어쩌면 환상을 지우는 과정이다.
국가가 제공해주는 모든 혜택을 다 받아보겠노라 다짐했다. 내가 냈던 고용보험료를 다 받아내리라. 그리고 국가의 보살핌을 받아보리라. 그리고 다시 돌아가서 일하리라. 그래서 오늘도 교육을 받으러 갔다.
교육의 질은 선생님, 강사님에 의해 좌우된다. 어떨 때는 선생님 같지 않은 이들도 만난다. 눈을 가늘게 뜨고 찬찬히 그들의 얼굴과 목소리, 몸짓을 읽어 내려본다. 적당한 쇼맨쉽이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감싸고 있는 이가 있는 반면 자신의 삶에 확신이 있고 기꺼이 스스로의 자산을 나누려는 이들도 있다.
선생님이 성공을 이야기할 때의 전제는 두 가지로 나뉜다. 자신을 성공했다고 이야기하거나 아직도 노력에 비해 미진하다고 이야기하거나. 둘 중 어떤 전제조건을 따르냐에 따라 이야기는 사기스 멜을 풍기게 된다. 나는 매우 능동적이다. 기왕이면 저지르고 후회하는 편이며, 주워 담을 수 없다 해도 언젠간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그런데도 요즘은 무조건 해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사기꾼처럼 보인다.
성공했다 혹은 나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힘들었다는 이들은 대부분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지신 분들이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시작이라는 것, 과거형이다. 지금도 그 방식이 통할 거라고 그들 역시 믿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과거에 빗대어 도전하라 이야기한다. 어떻게 시작하느냐는 개인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문제다. 뭐든지 시작해봐라, 어떻게든 얻어걸리는 경우가 당신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자신의 능력을 모르니 일단 써 봐라. 그 응원이 오늘은 매우 불편했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뼈를 깎는 노력 끝에 어느 궤도에 올랐다. 미칠 듯이 노력해도 어느 순간 한계에 부딪힌다. 거기에 운이 더해져야 뭔가라도 이룬다. 그저 즐겁게 하다 보면 어떻게든 될 거라는 말, 희망을 주는 말이야 누구나 한다. 그런데 그 희망이 현실이 돼야 한다. 그저 희망으로 끝이 나거나 아무것도 아닌 이벤트에 그치면 그건 그 사람의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라고 부추긴 셈이 된다.
오늘의 응원이 불편했던 이유는 성공을 이야기하는 선생님의 기준 때문이었다. 글을 써서 성공한 예시에 해당하는 이가 판권이 팔려 몇 억을 벌어 좋은 동네로 이사 간 후배이고 결혼 후 오랜만에 쓴 소설이 대박을 쳐 시어머니에게 대접받는다는 며느리이다. 참 쉽다. 그런데 그들은 정말 쉬웠을까. 세상의 차고 넘치는 작가들 중 배고픔과 좌절에 고민하는 이들 모두에게 반짝이는 대박 성공 신화가 펼쳐지지 않는다. 그걸 가장 잘 아는 사람일 텐데 그중 성공한 몇몇을 콕 집어서 당신이 될지도 모른다고 즐겁게 외친다.
무얼 계획하고 계신가요? 그걸 돈으로 연결시키려면 어떤 마케팅으로, 어떤 전략으로 접근하는 게 좋겠군요. 지금 그 시장은 포화상태랍니다. 그러니 강한 차별화가 필요해요. 음, 그건 좋은 아이템 같군요.
모두가 방긋 웃는다. 새로운 상담을 받고 뭔가 잘 될 것 같은 기운을 얻은 느낌이다. 그런데 나는 계속 그 분위기가 불편하다. 그렇게 쉽게 누군가의 계획을 평가하고 충고하고 그리고 성공을 기원할 만큼 이 바닥이 긍정적인가?
희망은 좋은 것이고 긍정적인 마음도 좋은 것인데,
혼자서 불편하게 느끼는 나는 비뚤어진 인간인가?
곰곰이 나의 불편함의 기원을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그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오늘 무한대의 응원을 펼친 그 선생님에게서 올해 초 만났던 대선배들의 기운을 느꼈다. 살아남기 위해 로비하고 누군가를 짓밟았던 선배들, 건축계의 어두운 면에 기생해서 성공했기에 후배들에게 조언할 수 있는 자리까지 올라온 그 선배들 말이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거짓말로 포장을 하고 거짓임을 알면서도 서로의 사정을 봐주었고 그 관례를 부수지 못해놓고 후배들에게 열정 없음을 탓하던 이들이다. 그들에게 거짓말은 필수이고 업계의 의리란 서로의 비리를 눈감는 것이다.
희망을 얘기하는 오늘의 선생님에게서도 선배들에게 느꼈던 모순이 느껴졌다. 출판 쪽 업계의 뿌리 깊은 연줄과 인맥에 의한 밀어주기나 글 쓰는 이들의 박봉에 비해 유통하는 사람과 마케팅하는 사람이 더 돈을 많이 버는 기이한 현실에 대한 불만을 듣지 못했다.
무조건 오직 열심히 쓰다보면 문을 두들기다 보면 얻어걸릴 수 있으니 웅크리고 있지 말고 뭐든 해보라는 것이다. 실력으로, 오직 글만으로 승부하는 세상이 아니란다. 모든 것은 전략이고 대중들에게 먹힐 만한 스토리는 이미 존재하니 콘텐츠를 찾으면 된단다. 백 퍼센트 성공하고 먹히는 분야가 있단다. 그 분야를 파고들란다. 그러니 돈이 되는 글을 써서 누구에게든 보내란다. 혹은 자신이 소개하여줄 수도 있단다. 참 희망이 되는 이야기이다.
내게는 그 이야기가 이렇게 들렸다.
좋아하는 글이 아닌 돈이 되는 글을 써 대가를 바라지 말고 열심히 투고를 해라. 공모전을 내고 문을 두들겨라. 그러면 백명중에 한두명? 이 중에 누군가는 성공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의 열정 덕분에 대중의 입맛에 맞지 않는 분야가 사라질 것이다. 입맛에 맞는 글들만 쏟아져 나올 테니까. 좋은 것은 누구에게나 좋다. 그러나 모두가 좋다고 말하는 것만 살아남는다면 세상은 다양성을 잃어가고 대박이라 일컬어지는 글들의 아류작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선생님은 업계의 아쉬움이 문학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작가들이 오로지 대중에게 어필하는 콘텐츠로 명맥을 이어가는 것이라 말하면서도 아무렇게나 글을 써도 사람들에게 읽히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 모순을 선생님은 모를까. 알면서도 이 열정을 부채질하는 걸까.
분명 모든 분야에는 깊이가 존재한다. 짧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품격 같은 게 있다. 그래서 연륜과 경험 없이 태어난 반짝 스타는 죽었다 깨어나도 가질 수 없는 고고함이 있다. 그 고고함을 말하는 꼬장꼬장한 꼰대 같은 선생님이 아쉽다.
누구나 글 써도 된다. 누구나 디자인해도 된다. 누구나 건축해도 된다. 그렇게 영역이 확장되어가고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가 무너지는 사이에 다양성과 독창성이 폭팔하는 대신 깊이가 사라지고 있다. 그건 건축에서 이미 한참 오래전에 일어난 일이다. 전문가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모든 것은 돈의 논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저렴하고 값싼 것들이 난무하는 사이에 아무도 오랜 연륜이 있는 비싼 고급 인력를 찾지 않는다. 길고 가난한 시절을 너무나 잘 알기에 청년들은 함부로 발을 딪지 않는다. 사서 고생해서 성공했던 시대가 저물었다. 사서 고생하면 그저 고생일 뿐이다. 아무도 고생스러운 자기만의 길을 찾지 않는다. 모두가 사랑하는 대중의 입맛에 정확히는 돈이 되는 유행에 자신을 바꾼다.
유행이라는 것, 대중에게 사랑받고 돈이 되는 뭔가를 한다는 것. 그마저도 요원한 일이다. 그런데 유행과 멀찍이 떨어져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 그건 생계마저 위협받는 일이다.
나는 생계를 위협받는 그 일이 너무도 하고 싶다. 외면받고 고립되는 건 무섭다.
그렇다. 그래서 아직도 꼼짝을 못 하겠다.
오늘 여전히 백수인 나의 변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