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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A Sep 18. 2018

알다시피 내가 새롭게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럼에도 계속 새로운 나를 꿈꾼다.

퇴사를 하면서 어렴풋이 서울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퇴사란 모두가 꿈꾸는 이상적인 삶에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한가하기 그지없는 시골에서의 적당히 바쁘고 적당히 심심한 삶, 뭐 요즘 유행하는 대충의 그런 이미지 말이다.


나와 남편을 합친 단어는 백수부부. 우리는 서울에 살았지만 집을 사지 않았고 이제 연애 십 년 차에 노산의 대열에 접어든 나는 아이가 없다. 그래서 퇴사만큼 이사도 쉬웠다. 서울을 미련 없이 떠났다. 그저 전세금을 받고 주소를 옮기는 것으로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


적게 벌어도 작은 꿈을 꾼다면 지방에 내려와 주야장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상상했다.

'하고 싶은 일이 즐거울 수 있을 것이다. 결과를 보고 실망할 일도 적을 것이다. 하루가 지나도 내가 멈춘 이 시간에 다른 이가 얼마나 앞서 나가는지를 지켜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삶의 속도가 한껏 느려져도 괜찮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내가 꿨던 꿈은 모순이었다. 적게 벌어도 되지만 가치 있었으면 좋겠다느니, 남들과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던지, 늦었지만 꿈꾸던 걸 이뤄보겠다는 건 스무 살 때즘 이미 깨달았던 '삶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것을 이제 와서 부정하는 것이다.


일을 하면 한만큼 벌어야 하는 게 맞다. 그만큼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그건 일이 아니라 취미여야 한다. 어떤 일을 하든 간에 세상을 이루는 뼈대의 일부인데 더 가치 있는 일을 해보겠다는 건 젊은 치기에서나 나오는 말이다. 모두가 다 다르게 살고 있는데 어떻게 사는 게 진정한 삶이라느니 어쩌느니 하는 건 말장난이다. 꿈꾸는 대로 살라는 말이 멋져 보이지만 이뤄지는 만큼 꿈꾸고 행복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 나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보통의 퇴사자들이 빠지는 착각 중에 가장 중증의 증상을 보였던 거다. 퇴사 한 번으로 지금껏 내가 살아온 세상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설레었다. 물론 그 설렘은 좋다. 딱 거기까지만 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 이상을 바랐다. 빵~ 하고 다른 이가 되기를 바랐다. 내 이력서와는 전혀 다른 명함을 갖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삶을 살아오지 않았는데 한방에 훅 하고 변하는 대박을 꿈꿨다. 희망퇴직 이 년 차에 들어서며 여기저기 지원했던 프로젝트들이 다 떨어지고 나서 실망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깨달았다. 성공스토리를 말도 안 된다고 코웃음 치면서 은근히 바랬나 보다.


소소한 삶을 살겠다면서 반대론 잔뜩 기대했던 내가 우스꽝스럽다. 한편으론 사랑스럽다. 실망하는 내가 신기하다. 아무리 열심히 일했더라도 프로젝트가 잘 되지 않아 실망한 기억이 팔팔했던 스물아홉 대리 때 이후로 없다. 속상해하는 동료들을 보며 순진하다 생각했다. 어차피 돈 받은 만큼 일할 뿐이었던 내게 프로젝트의 성패나 결과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보너스였지, 일 그 자체는 아니었다. 그런 내가 속상해하고 있다. 그리고 결과에 실망했다.


회자되는 퇴사 이야기처럼 '퇴사하고 나서 새로운 나를 만났어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퇴사해도 나는 변하지 않아요.'라고 말해야 한다.


그저 아름답기만 한 꿈은 욕심이다. 알면서도 나는 여러 번 실망했다. 신기루를 그만 보고 현실과 환상 사이에 선을 그어야 한다. 가능한 것들을 모아 지금까지의 노력을 매듭지어야 한다. 꾸준히 한다면 될지도 모른다. 그 기대와 희망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면 현실로 돌아와 보상받을 수 있는 진짜 일을 찾아야 한다.


직장인 구 년 차이기도 한 나는 될 것과 되지 않을 것을 구분하는 눈이 있다. 언젠가는 될지도 모르는 일에 매달리는 것도 삶의 일부이지만 보통의 삶을 지탱하는 건 적합한  보상이 돌아오는 '현실의 일'이다. 지금 당장 되지 않을 노력에 내 모든 시간을 쏟을 수 없다. 지금 보통의 삶을 유지해야 계속 환상의 삶을 꿈꿀 수 있다.


퇴사하기 전 나는 이 모든 것을 보았고 알고 있었다. 먼저 퇴사한 언니가 보여주었고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업계로 돌아온 대학 동기가 알려주었다. 그럼에도 한 번쯤은 도전해 보고 싶었나 보다. 잔뜩 기대하며 설레고 싶었나 보다. 한번 안된 일은 두 번 안되기가 쉽고 죽을 때까지 안될지도 모른다. 시작은 그냥 내가 재밌으면 되는 것이었는데 기대하는 사이 욕심으로 변해버렸다. 그러니 이 즐거운 일을 계속하고 싶다면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딱 퇴사하며 즐겁기만 하면 되지라는 마음, 가벼운 기쁨 말이다. 남들보다 열심히 했는지 죽을 만큼 괴로워하며 노력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게 퇴사는 가볍게 살아가기 위한 쉼표였다.


다시 현실이다. 내가 할 일을 찾아 다시 돌아가면 된다. 그리고 하던 대로 하면 된다. 퇴사를 했다는 건 그래도 그전에 했던 일이 있다는 거니까, 했던 일로 돌아가면 된다.


입사 지원을 했다가 떨어진 것보다 새로운 분야에 발을 딛는 게 어렵다는 걸 새삼 느낀다. 그리고 한편으론 내가 그동안 해왔던 일이 있다는 것에 안도감도 느낀다. 그렇다고 시작한 새로운 도전을 멈추진 않을 것이다. 평범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돈을 벌며 여전히 즐거운 일을 도모할 것이다. 결과와 돈으로 보상받지 않아도 되는 일을 가졌다는 건 자발적인 백수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다.


누가 그랬다. 애매한 재능은 삶을 고통스럽게 한다고. 살짝 그 애매한 재능 때문에 괴롭고 고통스러울 뻔했다. 그런데 그건 엄청난 무언가가 되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나는 이미 완성된 삶을 살고 있다. 이 애매한 재능 또는 무모하고 새로운 도전은 완벽하고 평범한 나의 삶에 찾아든 씨앗이다. 굳이 싹을 틔울 필요가 없는 씨앗. 그 씨앗은 싹이 나고 자라난다 해도 도무지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맺을 생각이 없는 나무이다. 그러니 그냥 매일 물을 주고 햇볕을 쬐여주면 된다. 나무에게 왜 너는 향기 나는 꽃을 피우지 않냐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지 않냐고 다그치면 안 되는 것이다.


구 년의 경력이 면접을 부르는 요즘이다. 후루룩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에 기대했던 지원사업에 똑떨어졌다. 낙엽으로 거름을 만들며 큰 그림을 다시 그려봐야겠다. 지금 당장은 내일 있을 면접을 준비해야겠다.


 

돌아온 탕아가 된 기분이다. 두팔 벌려 나를 안아줄 회사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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