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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A Sep 09. 2019

19년 육지 투어

섬에 살다 보면 장거리 투어가 하고 싶다.

오랜만에 남편의 바이크에 박스를 달았다. 제주도로 이주한 지 이제 일 년이 넘어간다. 한동안은 제주도의 풍광에 미쳐서 매일 주차장을 나서곤 했는데 이제는 배가 불러 궂은 날씨면 집에 박혀 티비를 보게 된다. 제주도에 사는 라이더들에게 해안 도로나 한라산 도로는 아쉽지 않다. 언제든 갈 수 있으니까. 우리 동네 뒷산이 한라산이라니, 우리 동네 앞마당이 제주 앞바다라니. 그 감동이 평범한 일상으로 깊숙이 들어오는 순간, 문득 장거리 투어가 하고 싶어 진다.


그래서 시작했다.

“오빠, 동해 해안도로를 달려보고 싶어.”

“힘들 텐데, 오랜만이라 오래 달리는 게 쉽지 않을 거야.”

“맞아. 그 느낌이 그리워.”


제주도 태생 라이더들과 얘기하다 보면 한 시간 내내 달리는걸 부담스러워하는 게 보인다. 아무래도 짧은 도로의 길이가 짧은 라이딩과 쉬엄쉬엄 커피 마시며 풍광을 즐기는 스타일의 투어를 만드는 것 같다.  왜 그렇게 달리냐는 이해할 수 없음이 묻어날 때쯤, 장거리 투어가 얼마나 지치는지 그래서 얼마나 카타르시스가 있는지 나누고 싶은 마음을 슬그머니 접게 된다.  

오랫동안 바이크 위에 앉아서 쉼 없이 달린다는 것, 그 맛에 빠진 건 유라시아 횡단 때였다.  직진 700km, 내비게이션에 찍힌 숫자가 그럭저럭 익숙해질 때쯤이었다. 무아지경이랄까. 그냥 달려. 끝없는 길 위에  엔진음과 함께 떠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면 내가 달리는 건지, 세상이 움직이는 건이 헷갈린다. 그 고요한 순간은 세상에 나밖에 없는 순간이다.


그 찰나가 그리웠다. 사람 적은 서귀포에 살며 혼자서 누볐던 수많은 라이딩 순간이 있었지만 길고 긴 시간 동안 스로틀을 놓지 않는 지루한 라이딩이 하고 싶었다.


서귀포에서 출발할 때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리더니 완도로 떠나는 배에 오토바이를 세우자마자 비가 그친다. 언제나 그렇듯 출발과 도착은 비와 함께다. 그래서인지 반갑다. 뿌옇게 흐려진 시야 속으로 풍경들이 수묵화가 한다. 그 어느 것 하나 뚜렷하지 않은 세상 속으로 부릉부릉 달리는 것, 부모님은 걱정이 태산 같다 하시지만 헬맷을 두들기는 빗방울 소리와 함께 촤악 갈라지는 빗물이 가득한 도로를 달리는 것은 그 나름의 재미가 있다.


지루한 배 안에서의 시간이 끝나고 완도의 하늘은 여전히 흐리다.  비를 맞으며 숙소를 향하고 내일은 비가 그치기를 바라본다.


사실 비를 맞으며 달리는 게 신나는 건 어디선가 비가 그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나는 깨끗하고 맑은 하늘, 상쾌한 바람과 아직은 빗물이 마르지 않은 도로를 달리는 기분 때문이다.  가을장마와 동행하는 이번 육지 투어가 나를 설레게 한다.  분명 이 길의 중간 즈음  비가 그칠 것이다. 그리고 쉴드의 물방울들이 바람결에 순식간에 마를 것이다. 쉴드를 열고 깨끗한 공기를 담뿍 담은 바람에 안경이 부딪히고 눈을 간신히 뜨게 될 것이다. 왜 라이딩을 하는지 그 기분을 느껴보면 누구나 알게 될 텐데, 이 표현할 수 없는 해방감, 자유롭게 나는 듯한 착각 이 기분을 전할 수 없음이 매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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