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nA Oct 12. 2022

신입, 그 녀석.

십 년 차 실장에게 가장 어려운 사람.

출근을 기다리며 마지막 남은 여유를 한껏 만끽하던 어느 날, 소장에게 예상치 못한 전화가 왔다.


"김실장, 잠깐 통화 한번 해봐."

"네? 누구랑요?"

"어, 지금 신입을 뽑으려고 하는데 어차피 김실장이 데리고 일할 애니까."

"아, 네. 넵, 바꿔주세요."


가장 중요한 첫인사를 늦잠을 자던 와중에 하게 되었다. 잠에서 막 깬 기색을 애써 감추고 별 특징 없던 포트폴리오에 대한 기억을 간신히 끄집어내어 물어봤다.

"아, 그 포트폴리오는 잘 봤어요. 직접 작업했어요?"

"네, 모델링하고 렌더까지 했어요."

대충 직접 해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들을 몇 가지 물어보고 나니 어색하게 대화가 끊겼다.

"출근하면 즐겁게 일해봐요."

"네."


'앳된 목소리의 어린 대학생, 이제 곧 내 밑으로 들어오겠구나.

십 년이 훌쩍 넘어가는 나이 차도 걱정이지만 힘없는 목소리도 마뜩잖다. 뭐, 젊고 어린애들 모두가 뭐든 씹어먹겠다고 덤비는 스타일인 건 아니니까. 적당한 열정과 적당한 소속감 정도면 되지 뭐. 그 녀석에겐 자신감도 그리고 함께 일할 때 만들어낼 파이팅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 어차피 나도 고용된 사람, 너도 고용된 사람. 적당한 경계를 지키면 그래도 상처 입을 없을 테지.'


그땐, 몰랐다. 같은 고용의 형태라도 그 녀석의 흠과 잘못, 그리고 열정 없는 결과물이 모두 내 잘못이 될 것이라는 것과 함께 일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운이라 생각하고 각자의 일만 하는 걸로 생각하는 나와는 달리 소장과 이사는 아주 옛날 사람이었고, 모든 것을 책임지고 원망할 사람이 필요했다는 것을.


신입은 졸업식을 하고 출근을 했다. 나의 출근 후 삼 개월이 지난 후였다. 어느 정도 회사 사람들에 대한 판단이 끝났을 즈음이었다. 나보다 고인 물인 사람들은 내가 맞춰줘야겠지만, 신입은 서로 맞춰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음, 이걸 원래 우리가 언제까지 하기로 했지?"

"......"

"만일, 야근을 하고 싶지 않으면 미리 내게 얘기라도 해줬으면 나눠서 했을 텐데. 그래, 그럼 언제까지 해볼래? 수정해야 되는 부분은 뭔지 알겠지?"

"네, 이번 주에는 정리해보겠습니다."

"정말 이해했니? 할 수 있겠어? 다시 한번 설명해줄까?

"아니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십 년 차 실장이 신입에게 바라는 것은 단순하다. 일하고자 하는 의지, 약속된 시간에 해내지 못하더라도 노력하려는 자세, 그리고 정확한 마감 시간 준수. 그러나 고학년 선배에서 다시 햇병아리 신입이 되는 과정은 녹녹지 않다. 군대까지 다녀와 학교 내에서 가장 나이 많은 연장자였던 신분에서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가 된 느낌에 자존심은 무너지고 계속된 수정과 반복되는 지루한 작업에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다. 그래서 똑똑한 녀석일수록 쉽게 나가떨어진다.


오늘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자꾸 힐끗거리며 녀석의 컴퓨터 화면을 보게 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조언을 건네고 싶지만 꾹 참는다.


마감을 놓치고 실수와 오류가 넘쳐나는 일들이 조금씩 내게로 넘겨졌다. 그 녀석의 목소리가 점점 힘이 없어졌다. 힘을 내라고 얘기하는 것도, 또 다른 갈굼이 될까 봐 내 기분까지 처지는 걸 감수하고 그대로 놔뒀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나마 녀석이 잘하는 것을 눈 크게 뜨고 찾는 것뿐이다. 작은 성과 하나에 박수를 크게 쳐준다. 잘했다고, 아주 훌륭하다. 대단하다. 조금만 더 하면 되겠어. 아니야, 이 정도면 충분해. 어깨에 뽕 열개쯤 넣은 것 같은 으쓱한 기분을 주고 싶었으나 정말 눈을 크게 뜨고 찾아야 했다.


내 경험상 칭찬은 신입에게 희망이다. 물론 그것도 사람에 대한 애정,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녀석과 나는 일면식도 없고 쌓아놓은 친분도 없다. 그저 어쩌다 같은 시간대에 이 회사에 머무르게 된 것뿐이다. 원하지 않는 칭찬을 쏟아내며 어쩌면 녀석에게 존재하지도 않는 일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켜야 하는 일은 내게도 주어진 업무 외의 추가 업무가 되기 시작했다. 메아리 없는 고요한 산속에서 홀로 야호를 한 백번쯤 외쳐도 여전히 사무실은 고요했다.


"묻지 않는 , 요청하지 않은 것에 대해 미리 대답하지도, 미리 건네주지도 말라."


함께 일하는 후배에 대한 교육이 이제는 선임의 쓸데없는 참견이  수도 있다.  어떤 조언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스트레스가  것이다. 그러나 그 녀석의 성과가 내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좋은 선배 되겠다고 해야  말을 삼키자니 신입의 정시 퇴근을 위해  내가 발버둥 쳐야 했다.  


신입이라고 무조건 선배에게 배워야 하는 건 아니다. 개똥 같은 선배를 만나본 경험이 내게도 있으니까. 능력만 보여준다면 얼마든지 존중해주고 동등한 위치에서 대우받을 수 있다. 성과는 제대로 내지 못하며 대우받기를 원하니 업무의 스텝이 꼬인다. 신입이 부족한 결과물을 소중이 간직한 채 퇴근하면 다음날 내 업무가 늘어났다.


녀석은 일을 적당히 한다. 그게 제주도 식이라나. 야근하지 않는다. 다들 그렇게 일한단다. 내가 월급 주는 사람도 아닌데 뭐라 할 수 없지. 문제는 야근하지 않고는 끝낼 수 없는 능력치이다. 그런데 그 일의 결과는 오롯이 내게 돌아오기 시작하니 결과적으로 시간이 배로 걸린다. 아직은 신입이 할만한 일이 아니라고 차라리 처음부터 작은 일을 시키자고 요청했다. 다 망친 일을 되돌리느니 그냥 처음부터 내가 하는 게 나으니까.


"소장님, 아직은 시기상조입니다. 그냥 제 밑에 두고 하나씩 차근차근시키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렇게 해서 언제 일을 맡기나. 일단 시키면 알아서 다 잘하게 되는 거야."


소장은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소리를 한다.

일단 시키면 알아서 한단다. 다 그렇게 배웠단다. 그건 배우고 싶은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얘기고, 일하는 사람 하나 아쉬운 건 이 회사 아닌가. 나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구나. 소장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다.


나는 스스로에게 매우 관대한 신입이었다. 그리고 매우 긍정적이었다. 아주 개똥 같은 보고서를 들고 매번 아주 환하게 웃었다. 너무 환하게 웃으니 뭐라고 화도 못 내겠더라는 이야기를 아주 나중에서야 들었다. 매번 빨간색으로 온통 도배된 보고서를 돌려받았다. 그래서 좋았다. 몇 번이고 다시 고쳐주는 사수의 존재도 감사했고, 검수를 거쳐 실장에게로 소장에게로 책임이 넘겨지는 것도 좋았다. 능력은 천천히 느리게 길러졌고 그만큼 철야와 주말근무가 많았다. 개똥 같은 업무능력이 어느 순간 일취월장하고 대리가 되어 혼자서도 너끈히 일을 해낼 때가 되자, 실장이 되어버린 대리님이 말했다.

"나나씨는 참 성격이 좋아."


그때는 암흑기였을까. 아니면 양지바른 햇살 가득한 곳이었을까.

신입인 나는 내 회사를 좋아했다. 내 선택이었으니까.


그러나 신입, 이 녀석은 이 회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나마 나아 보이는 회사로 들어온 것인데, 소장은 자꾸 약속을 지키지 않고 실장은 깐깐한 데다 일을 처리하는 속도가 차이 나게 다르니 비교 대상이 되기 시작하고. 거기에 가족 같은 회사가 아니라 가족회사다. 다른 제주도의 회사들처럼 적당히 하다가 시간 돼서 퇴근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소장의 말에 조금은 신입, 그 녀석의 처지가 이해된다. 선택했던 회사가 자신의 생각과 아주 많이 달랐던 것이다. 그렇다고 본인의 선택을 내가 책임져 줄 수는 없다. 본인의 몫이다.


이직 삼 개월, 가족 같은 회사의 지켜지지 않은 약속은 그러려니 했는데 가장 큰 난관을 만났다.


십 년 차 실장에게 가장 어려운 상대, 회사를 좋아하지 않는 신입. 그 녀석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로를 관찰할 때 지켜야 할 예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