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오월은 향기롭다.
사람들은 제주의 귤을 사랑한다. 노랗고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귤농장은 관광상품이다. 육지의 추운 겨울에 비해 더없이 따스한 제주의 겨울이 더 따스해 보이는 건 아마도 감귤의 따스한 색 때문일지도.
서귀포 길가에 흔히 보이는 주렁주렁 매달린 귤은 노지감귤이다. 길 가에 핀 커다란 귤은 관상용이다. 노지귤은 제주의 일상이다. 길을 가다가 돌담 너머에 귤나무들이 빼곡하다. 서귀포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 게 이 귤 때문이라는 얘기를 택시기사 아저씨에게 들었다. 박정희 시절, 귤을 생산해야 하기에 전라도 사람들을 데려다 정착을 시켰단다. 그때만 해도 서귀포에는 일꾼들이 부족했고, 농장을 아주 싸게 살 수 있었단다. 서귀포 사람과 제주 사람 다르다는 것을 제주 설계 사무실에 일할 때 어렴풋이 느꼈다. 작은 섬에도 지역감정이 있더라. 그게 신기하면서도 슬펐다. 어쨌든 섬은 외지인에게 배타적일 수밖에 없는데, 알고 보면 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들에 놓였던 게 아닐까.
나 역시도 서귀포에 내려앉은 외지인이다. 적당히 어울릴 생각조차 없는 고립된 외지인.
초반에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서울에서 내려온 외지인들끼리의 만남도, 어색하게 친해지기 위해 만들어야 하는 약속들도 어려웠다. 서울에서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이었던 것처럼, 제주에서도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이다. 어렵사리 어울려도 넘기 힘든 선이 있다. 끼자니 불편하고 안 끼자니 외지인을 자처하는 애매한 느낌.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 사람이 그립고 외롭다면 계속 어울렸을 것이다. 그런데 제주에는 사람보다 더 좋은 게 많다. 그러니 어울려서 보내는 시간에 제주의 다른 더 좋은 것들에 시간을 쏟게 되고, 서서히 멀어진 관계들은 이제 아예 끓여 버렸다. 서로 아쉽지 않은 걸 보면 그저 부질없는 노력이었던 거겠지.
덕분에 제주의 오월이 제일 향기롭다는 걸 금방 깨달았다. 라일락 향기보다 심심한 그 달콤한 그 향기가 귤 덕분이라는 것을.
벚꽃이 예쁘기는 제일이다. 게다라 유채까지 합쳐지면 아름다운 날 중 최고이다. 그 봄날을 달리는 특권은 제주에 머무르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봄날에 여행을 온 운이 좋은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은은하게 퍼지는 귤꽃의 향기가 꽃이 진 봄날의 끝자락에 나타난다. 그 향이 넘실거리는 바람을 깨닫기란 쉽지 않다. 이게 뭘까. 하는 사이 풍경이 바뀌어 바다를 만나면 눈이 휘둥그레지니까. 바람에 실려온 그 향이 무엇인지 관심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지인들에게 오월에 서귀포에 오면 가만히 바람을 맡아보라고 한다.
어디선가 달콤한 향이 넘실거리는 것을 알게 될 거라고, 그게 바로 귤꽃의 향기라고.
어딘가에 뿌리내리고 정착한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부모님이 귀농을 하셔서 이제 이십 년이 되어간다. 그 긴 시간 동안 시골마을의 인심 뒤에 못난 사람들의 텃세를 다양하게 보고 들었다. 그게 사람 사는 동네라면 어딜 가나 있는 일라 생각하면 별 거 아닐 것이다. 나이 들수록 이웃과의 작고 소소한 일상이 전부인 부모님을 볼 때마다 언젠가는 내게도 이웃이 생길까 라는 기대를 해본다. 도란도란 귤 꽃의 향기에 감탄하면서 하루에 몇 번을 스치듯 만나는 그런 친구 말이다.
요즘은 법환의 작은 마을을 뛰놀고 있다. 오가며 만나는 할머니들에게 수줍게 눈인사를 한다. 마을엔 외지인이 들어와 자리 잡은 작은 공동주택들이 있고, 오랜 세월 자리 잡은 단독주택이 있다. 작은 골목길들 사이로 여지없이 귤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언제쯤 꽃망울을 터트릴지 하루하루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골목길을 지나 바다로 향할 때, 월드컵 경기장 트랙을 향할 때, 언제쯤 저 꽃망울이 터질까 기대감이 차오른다.
맛있는 귤보다 더 맛있는 바람이 기다려진다. 새들의 노랫소리가 아침마다 상쾌한 바람을 타고 들려온다. 조만간 귤꽃향기가 함께 넘실거리는 날이 지나면 더운 여름이 올 것이다. 올해는 얼마나 더우려나. 그 더위가 오기 전에 열심히 달려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