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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같은 마음

by NanA

# 2009년 여름

한 달째이다. 거지 같은 한글파일의 양식을 맞춘 지가, 한글의 기능을 익힌 지 얼마 안 되긴 했지만 이리저리 하다 보니 대충 프로그램을 다룰 수 있겠더라. 엑셀과 파워포인트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쓰는데 왜 한글일까? 그런데 이걸 왜 정음으로 또 바꿔야 하는 거지? 협력업체들은 어째서 이거 하나 맞춰서 못 보내주는 거지? 근데 이 짓을 한 달 째 하고 있다. 대충 하고 퇴근해도 내일 또 해야 한다. 나는 무슨 일을 배우고 있는 걸까?

대리님은 작년 그 일 이후로 멀어졌다. 주말약속을 깨고 출근을 해주길 바랐지만 , 어쩌면 그 약속을 가지 않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지만, 한편으론 다행이다 싶다. 사소하다면 아주 사소한 그 일에 거리가 생긴 사람이라면 그다지 내 인생에서 좋을 사람은 아닌 듯하다. 마땅히 해야 할 일과 선의에 의해 도움을 주는 일, 그 성격이 다른 일을 모두 다 바란다면 그리고 그 경계에 고마움을 잊는 사람이라면 계속 그럴 테니까.

오늘이야 말로 얘기를 해야겠다. 이미 하라는 일은 다 했고, 도저히 가만히 앉아있질 못하겠다.

“ 실장님, 저 다른 일 좀 주세요. 보고서는 다 작성했습니다. 저도 도면 그려보고 싶어요.”

“어? 어. 그럼, 장대리가 좀 챙겨줘.”

……


기억은 미화되기 마련이고, 이제는 너무 오래전이라 그 어떤 감정도 남아있지 않지만, 내 신입사원 시절은 당돌한 녀석, 일도 못하는데 항상 밝았던 녀석이었다. 처음 시키는 일을 어떻게 잘하겠는가. 늦어지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고 잘못하기도 하고, 그런데 그 첫 단추가 어떤지 모르지만 분명 그 당시 내 사수였던 대리님과 실장님과는 맞지 않았다. 그것도 복이었을까. 안 맞는 사람과의 업무는 나와 상대방 모두를 지치게 하고, 누군가가 사라져야 편해진다는 것을 아주 빨리 깨달았다. 때로는 내가 움직이기도 했고, (팔려나간다는 표현을 그 당시엔 많이 써다. 고되고 힘들 외부 합사 같은 경우 전체 본부에서 몇 명씩 차출해 나가는데 나는 자주 나갔던 편이었다. 그리고 그걸 좋아했다.) 결국엔 첫 팀원들과는 아는 사이, 한때 일했던 사이 정도의 적당한 거리감을 가진채 나는 다른 팀으로 옮겨졌다.


서운했던 마음이야 그때 당시엔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돌이켜보면 별거 아닌 일이다. 사직서를 얘기했던 탓에 팀을 옮기게 된 것치곤 내막을 모르는 사람도 많았고, 그래서 나와 트레이드된 학교 선배와는 친해지게 되었으며, 나는 천하의 이기적인 후배쯤이 되었다. 그 당시에도 난 외부의 소문에 대해 덤덤했다. 시절인연이라고 해야 하나. 대학교 때고 그랬고, 회사 동기들도 그랬다. 인연이란 우연이 이어질 수 없는 경우도 있고, 굳이 이어가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었다. 친해질 수 있는 시기엔 그렇게 좋던 사람들도 각자의 사정이 생기면 멀어지는 법이다. 그 멀어지는 과정이 힘든 사람들도 더러 보았지만, 나는 내 맘이 제일 소중한 사람인지라, 끓어지는 인연이 서운하지 않았다. 서운할 사람이라면 분명 내가 더 노력했을 것이다. 소중하고 아까운 사람을 놓치는 법이 없으니까.


#2023년 여름

한 달째이다. 저 단순한 보고서를 가지고 서로를 들들 볶은 지가. 후줄근한 티셔츠와 편한 면바지를 입고 온건 그래, 그렇다 치자. 누군가를 만날 일도 없는 사원이니까. 그런데 100장도 안 되는 보고서이다. 띄어쓰기, 들여 쓰지, 목차 정리, 협력업체들의 자료 체크하기, 이 정도의 업무를 벌써 한 달째하고 있는 중이다. 일주일은 혼자 어떻게든 만들어보겠지 싶었는데, 이주차에는 그래도 한번 체크해서 봐줘야겠다 싶었다. 삼주차에 들어서 수정을 지시했던 부분들이 하나 걸러 하나씩 그대로인 채 확인받겠다고 가져오니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낸다. 어쩌자는 걸까. 입사한 지 반년이 흘렀고, 그간 혼낼 만큼 혼냈다. 가르칠 만큼 가르쳤다. 원하지 않아도 가르쳤다. 가르칠 시간에 내가 했다면 이미 끝낼 을 일들이다. 내가 주는 월급은 아니지만 저 월급을 주기 위해 회사의 일원인 나는 일을 한다. 지금 당장이야 그래, 어리고, 모자라고 그럴 수 있다 치자. 내년에도 저려면 어떡하지? 그나마도 우리와 일상적인 대화를 하겠다며 신변잡기적인 얘기를 하던 노력은 사라진 지 오래다. 누가 들어와도 일어나 인사하지 않는다. 사무실의 공기는 차갑고 애써 웃는 건 우리뿐이다. 신입사원 하나의 무게가 직장생활 15년 차 넷을 짓누른다. 누굴 위해 고용한 것일까. 내가 신입이었을 때를 떠올려 본다. 이 정도까지 왔다면 회생불가의 관계다. 다만, 나만의 회사가 아니기에 누군가의 공백이 모두에게 똑같은 의미가 아닐 것이다. 나만 좋을 순 없으니,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을 거라는 공감대를 확인해야겠다. 그렇게 우리끼리만의 대화가 많아진다.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데 모두가 뜻이 모였다.

오늘이야 말로 얘기를 해야겠다. 이미 힌트는 줄 만큼 줬는데, 모른 척 좀비처럼 시간을 때우는 녀석을 보니 미안한 마음조차 사라졌다.

“오늘 같이 출장나오니 오랜만에 좋네, 근데 말이야. 나는 00 씨가 좋은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어. 요즘 회사에 출근해서 앉아있다 퇴근하는 00 씨 표정이 불행해 보인다. 정말 괜찮은 거 맞아? 그래서 말인데 휴직해 보는 거 어때? 아니면 상담 같은 거라도 받아볼래?”

“실은 저 이번 달까지만 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어요.”

“아, 그래. 다행이다. 어디 가서도 잘할 거야. 그동안 고생 많았어. 굳이 이번 달까지 꽉 채울 필요 있어? 내가 말씀드릴 테니까 남은 휴가 처리하고 이번 주 안에 퇴사처리합시다. ”

……


그래도 젊은 친구들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믿었다. 나도 젊은 세대라고. 그런데 아니더라. 어쨌든 녀석에게 호구 잡힌 실장이 되고 싶진 않았다. 일을 맡겨놓고 제때 오지 않아 쩔쩔매며, 작은 회사에 존재만으로도 감사하다고 굽신거려가며 되지도 않는 연봉을 줘야 한다니. 차라리 내가 일주일 야근을 하고 말겠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돼버렸다. 떠나는 녀석이 내 앞에선 그렇게 당당하더니 대표님 앞에 가서는 울었단다. 나는 마녀 같은 상사가 되었다. 기꺼이 되어야겠다. 지방의 작은 건축사사무실이다. 노동력으로 돈을 버는 것이다. 나의 하찮은 노동력이 더 하찮은 누군가를 먹여 살리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이 없겠지만, 일단 서로 맘에 들고 볼일이다. 더 이상 고마워하지 않는 신입사원과 어쩌지 못해 절절매는 임원진은 없다.


신입사원은 내게 언제 제일 서운했는지를 돌아오는 차 안에서 털어놓았다. 나는 사과 했다. 그래, 그랬구나. 내 말이 상처가 되었겠구나. 내가 모자랐네. 미안하다.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날 거야. 내가 아직은 모자란 사람인가 보다. 너무 마음 쓰지 말아라. 이건 진심이었을까. 사회화가 완벽히 돼버린 중년의 연기였을까. 그 말 덕분인지 좀비 같던 녀석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서운함을 대폭발시켰다. 서로가 만족할 만한 이별이었다. 일 년을 채우지 못한 채 그렇게 안녕을 고했다.


#2025년 여름

한 달째이다. 매번 혼만 내는 것이. 칭찬을 마구 쏟아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그렇지 못한 결과물 앞에 나도 너도 진이 빠지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기대치일까? 결과물일까?

언젠가는 본인의 사무실을 차리고 새로운 길을 나갈 젊은이들이다. 언젠가 녀석들의 일처리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던 날에 웃자고 했던 얘기가 있다.

“ 그래, 내가 좀 똑똑한 거 같아. 아마도 너희들 나이 때 나보다 너희들이 조금 멍청한 거 같다. 야, 이 멍청이들아. 이걸 이렇게 하면 어떡하니. “

그렇게 나는 좋소의 갑질의 집약체가 돼버렸다. 심각하게 혼내면 모두가 힘들게 분명하니까, 장난 섞인 말로 모두가 웃으며 지나간 해프닝이었지만 건축업의 특성상 모든 프로젝트는 똑같지가 않다. 도면의 기준을 잡는 일 하나조차 다르다. 똑같은 일이 없다. 계속된 다름에 요령을 익혀가야 하는데, 일머리가 없어도 너무 없다.

한동안 나의 머릿속엔 어디까지 신입사원의 능력을 낮춰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아무것도 모른다를 기본값으로 설정했다지만 그것마저도 바닥의 바닥을 향해 내려간다. 어느 정도 올려놨다 싶어서 한 단계를 높여 업무를 시키면 그나마 되던 일도 망가져버린다. 최악의 신입사원과 아름다운 안녕을 가졌던 때를 떠올려본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라 말해야 할까. 이 정도 수준을 감사해하며 고맙다 해야 할까.


생일에 그 예쁜 멍청이들이 귀여운 케이크를 내밀었다. 최고의 본부장이라나.

아. 이런, 이를 어쩌나.

예쁜 짓하는 아가들 앞에 복장 터지는 나는 조금씩 묻혀지고 있다.

그래, 일이란 게 잘하는 사람도 있고,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


어떤 날은 바람이 세차게 분다. 이걸 죽여야 하나, 살려야 하나. 평온한 표정으로 잔뜩 졸아있는 사원들의 표정을 살핀다. 오늘 어디까지 지적을 해야 상처받지 않고 적당한 채찍질이 될 수 있을지를 가늠해 본다. 분명한 메시지,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은 틀릴 수 있다. 틀려도 내가 다 찾아서 고쳐줄 거야. 그런데 노력은 해야겠지?

바람이 세차게 불어 나무가 흔들린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저 먼바다는 내가 서있는 바람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요하다.

갈대 같은 내 마음에 아픈 손가락이 되어버린 멍청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이러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더 이상은 안될 것 같다는 신호가 올 수도 있다. 아끼는 만큼 그 순간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일매일 세찬 바람이 분다. 작고 작은 너무나도 작은 사무실이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린다.

끝을 알 수 없는 불황일수록 작은 바람조차도 매섭다. 나란 사람은 작은 바람에도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이다. 그나마도 같이 흔들리는 사람들이 있어 다행인 건지. 모두가 흔들리니 총체적인 난국인 건지 모르겠다. 이만하면 정답을 알 것도 같은데, 나는 모르는 게 너무 많다.


흘러가는 대로 지지고 볶다 보면 바람이 불어도 고요한 먼바다 같은 때가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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