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날개를 파닥이는 나비는 번데기에서 출발한다. 완전 변태, 환골탈태, 아름다운 나비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지난하다. 그래도 기꺼이 그 고난을 견뎌내겠다는 의지를 가지라고 배웠다.
나비가 될 테니까.
문득, 나는 나비가 된 걸까? 누구도 답해주지 않는 질문이 떠올라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어쩌면 오늘 앞마당에서 본 나방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비가 되지 못한 불쌍한 아이일까. 그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아마도 그건 나비를 흠숭하며 아름답다 얘기하는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 내가 사로잡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늘 내가 본 나방은 그로테스크하게 아름다웠다. 알록달록 화려한 나비와 달리 조금 퉁퉁하고 거칠었지만.
잡아서 저 세상으로 보내기엔 아까웠다. 훨훨 날아가라고 창문을 열어 내보내주었다. 네 삶의 길이를 다 누리라고.
요즘 들어 일할 때마다 라디오 살아 공공건축물 현상공모 심사 영상을 튼다. 누군가의 피, 땀, 눈물의 결정체가 난도질당하는 모습이 가슴 아프기도 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소리만 내뱉어대는 심사위원들이 짜증 나기도 하고, 그 모든 잡생각을 하면서도 요즘 공모 트렌드가 궁금하니 어쩔 수 없이 최신 공모를 찾게 된다.
그중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본 유명한 건축가들만 지명해서 대강당에 모델까지 제작해서 발표했던 공모가 있었다.
이름 한번 날리기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거기 나온 이들은 모두 나비인가. 싶었다. 그래서 저들은 수도권에서 지방까지 초청을 받는 걸까? 능력을 떠나서 지방의 공공건축공모를 전국구의 유명한 건축사를 지명하는 게 맞는 일인가. 갸우뚱했지만 그나마 유일한 지역 건축가의 발표를 듣고 나니 지방의 수준은 역시 다른가 싶기도 해서 씁쓸했다. 요즘은 당최 뭐가 정답일지 모르겠다.
이십 대엔 단순했다. 정답. 정의. 뭐 그런 것들 말이다. 흑백으로 세상을 쫙 가를 수 있는 대쪽 같은 기준이 있었다.
점점 회색지대가 생겨난 게 대형설계사무소를 퇴사한 시점부터였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빗발치는 총알을 그제야 보았다 해야 하나. 그러니 나같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건축을 할 생각이 없는 건축가는 비주류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일하는 게 그나마 결이 맞다. 저 총알들을 막아내기 위한 방패는 비싸다. 비싼 만큼 희생도 따르고, 그 희생은 생각보다 더러운 경우가 많다. 그 희생을 욕할 수 없다. 얼마나 괴로울까. 첫 발을 딛기 어렵지 이미 익숙해진 그 판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겉으론 보이지 않지만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혹자는 누가 떠민 것도 아니고 그 역시 선택이라고 말한다. 자세히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 어떤 선택도 오롯이 개인의 선택으로 치부될 수 없다. 나름 버티다가 버티다가 들어선 이들이 많다. 선택이라고 말하지만 길을 처음부터 하나였을지도. 그러니 어쩌면 처음부터 종착지가 저어기 있었던 건데 누군가는 꽤 오랫동안 고민 속에 힘들어하며 도착하는 거고, 누군가는 영리한 거다.
대형사무실이야 나름의 영업을 하는 팀이 따로 있으니 보이지 않아 몰랐다. 작은 사무실일수록 살아남는 방법이 제한적이다. 운이 좋아서 이름을 몇 번 날린다 한들 십 년 이십 년 롱런하는 건 쉽지 않다. 그러니 단순한 흑백으로 다른 부류라고 선을 그으면 안 된다. 어떤 식으로든 업계를 지탱하고 있는 한 축이다. 그 축이 무너지면 모두가 무너진다는 걸 모두가 안다. 더 이상적인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소리 내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그러나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미 살아남아한 축을 이루고 있는 동종업계의 동료를 부정하지는 말자. 나름 생존자이다. 똑같이 살아남았는데 생존법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는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음지가 양지로 올라올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뿐만이 아니라 올라올 사다리마저 걷어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 근대 건축의 유명한 건축가들 치고, 정치, 거대 자본 앞에 순수했던 이가 몇이나 될까.
이상을 꿈꾸는 자와 현실을 살아가는 자. 어떤 눈으로 보냐에 따라 두 부류 다 나비같기도 나방 같기도 하다.
진짜 나쁜 놈들은 나방이면서 나비인 척하는 이들일 텐데, 고만고만한 이들끼리 서로의 고뇌를 보지 못하고 대척점에 서있는 게 못내 아쉽다.
그 고뇌에서 살짝 비켜선 채 관망하는 나는, 그렇다면 무엇일까.
나비일까. 나방일까.
어쩌면 나는 답이 없는 질문을 던진 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