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상상이 현실을 만날 때

by NanA

건축은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대학 시설 누가 나에게 건축과를 왜 왔냐고 물으면 나는 공간이 아닌 사람을 먼저 얘기했다. 공간에 사람이 없다면, 현대미술의 설치물이나 조각의 어디쯤 사이일 것이다. 그러나 공간은 사람이 있다. 애초에 사람의 욕망이 생각이 없다면 건축가라는 직업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건축가는 그 욕망을 지각되는 현실 속에 하나씩 풀어헤쳐 실제로 그려주는 사람이다.


나는 미술이 하고 싶었다. 피아노학원을 그만두면 보내주겠노라 약속했던 엄마는 끝내 나를 미술학원에 보내주지 않았다. (막내가 대신 피아노학원을 다녔다.) 그래서 찾은 대안이 건축과였을지도. 지금은 수많은 기억들이 사라져 강렬한 몇 개의 장소만으로 추억되는 대학교 시절, 나의 작품은 그래서 비현실적이었다. 거대한 스케일부터 작은 조형물까지, 어느 것 하나 무난한 것이 없었다. 생각은 깊었지만 그걸 담아낼 미적 감각이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거칠었다. 항상 상상할 수 있는 최대치를 끌어올렸다. 누구도 나를 건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전체 성적이 좋았다. 설계성적은 무난했다. 마감을 어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뭐든 결심이 서면 끝이었다. 퇴고란 없었고, 그게 학생의 특권이라 믿었다. 상상해도 되잖아. 내 돈 내고 배우는데 교수님에게 휘둘릴 필요 없잖아. 교수님은 그저 나보다 먼저 태어나 오래 산 사람 중에 한명일뿐이잖아. 스무 살의 맹랑한 생각이었다.


건축과는 모두들 시간이 없고 마감에 쫓겼지만 나는 달랐다. 알바를 했고 연애를 했다. 필요도 없는 대학수학을 수강했다 재수강을 거쳐 간신히 과락을 면했고, 남들은 신경도 안 쓰는 건축기사를 무려 4번의 시도 끝에 결국은 땄다. 유학 갈 조금의 마음을 가지고 영어회화를 공부했지만 우리 학교에는 이미 외국에서 살다 온 애들이 많았다. 내가 가진 것에 비해 너무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내가 경쟁할 수 있을까? 전공 수업에 그렇게나 자아가 강했고 상상 속에 살았던 나는 현실 앞에서 냉정했고 주제파악을 꽤나 잘했다. 내 상상을 위대한 것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현실의 벽을 넘을 자신은 없었다.


이십 년 건축 일을 하면서 서로의 대학시절을 이야기하곤 한다. 마흔 살도 스무 살도 똑같이 얘기하는 건 마감의 압박감이다. 며칠을 샜으나 자신이 없던 마감 전날 밤의 지독한 자기 연민 같은 거 말이다. 음, 그럴 때마나 나는 전혀 공감을 못했다. 스무 살의 나는 지독한 모순덩어리라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을 자신이라 믿었다. 학생 때만큼은 그래도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마감 전이 되면 항상 가장 먼저 결론을 내리고 발표 날의 컨디션을 위해 가장 먼저 설계실을 나갔다. 모두가 밤을 새우니 같이 해야 된다 생각했지만 친구들의 절망 앞에 적당한 공감을 했을 뿐, 내가 그은 선 하나를 다시 그리지 않았다. 그리고 성적과는 상관없이 항상 내 작품을 사랑했다.


그랬던 내가 현실이 되는 건축을 하면서는 수많은 고민, 번뇌, 좌절, 불안, 공포를 느낀다.

상상은 상상이기에 책임지지 않아도 되고, 모두에게 아름답지 않아도 되었다. 내 맘에만 들면 되니까.

그러나 현실이 되는 공간에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의 삶의 어느 한순간이 실제로 머루는 곳이다. 내가 주로 하는 공공건축은 더 심하다. 여러 명의 꿈과 희망으로 포장된 이해관계를 법 테두리와 지방의 열악한 시공능력 안에서 담아내야 한다. 어린 사람, 나이 든 사람이 불편해서도 안된다.(그래서 인증을 받아야한다.) 나랏돈이 결국 내 돈이니, 쓸데없는 깔롱 따윈 버려야 한다. 기왕이면 이쁜 거보다 튼튼하고 실용적인 게 낫다. 상징적인 건축물이 되어야 한다면 그 또한 경제적이고 보통의 시선에서 바라봐야 한다. 함축적이고 세련된 언어는 건축가의 쓸데없는 고집일 때가 많다. 촌스럽고 유치한 게 대수냐. 한 번에 빡! 하고 어디에도 없는 모습이되 아주 편하게 시공할 수 있는 평범한 디테일로 풀어야 한다. 그런데 촌스러운건 또 싫다. 그러니 계속 다시 그리는 거다. 매일 다시 보고 고친고 또 고친다.


어쩌다 보니 대형설계 사무실에서 비싸게 부른 설계변경 건을 따내버렸다.

다 합쳐 600장쯤 되는 도면인데 150장 정도 수정했다. 누군가가 다 그려놓은 도면에서 수정만 하면 되는 것이라 내게는 시간만 필요한 편한 작업이다.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도면을 보면 교감이 된다 해야 하나 그런 게 있다. 어떤 의도로 왜 이렇게 했는지 뭐 그런 것들 말이다. 너무나도 이 도면은 메인 설계사의 몇 명과 설계 하도급 회사의 몇 명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 거대한 도면을 움직이는 실시설계 장인의 그림자가 보였다. 최대한 원안을 살려주려는 의도 말이다. 무엇이 더 좋은 공간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치 큰 오빠의 비밀일기장을 봐버린 느낌이다. 물론 비밀이래 봤자 지어지고 나면 모두가 알게 되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정말 잘 계획된 공간을 가보면그 속에 담긴 건축가의 고민이 느껴진다. 공간이 클수록 그 속에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 사람들의 무수한 시간을 담아낼 현실이 될 공간, 그러니 그 건축가가 얼마나 많은 상상을 하며 고민해야 할까. 같은 건축가라 그런지 이런게 더 잘 보인다. 그 고민의 깊이와 정성과 사랑과 열정. 작은 설계사무실의 작은 프로젝트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큰 공간만이 보여줄 수 있고, 큰 공간을 설계해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불행히도 안타까운 공간들이 많다.


내쫓은 직원 중에 하나가 아홉 시 출근, 여섯 시 퇴근을 요구했다. 건축가란 직업은 일이 끝나도 퇴근할 수 없다. 일이 끝났음에도 어쩌면 내가 세상에 내놓지 말아야 할 흉물을 만든 건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다시 한번 나를 붙잡는다. 그런데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한 신입이 퇴근을 보장해 달라고 했다. 악덕 마녀 상사인 나는 한 번의 야근이 더 좋은 공간을 만들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래서일까. 서울의 대형 설계 사무실은 칼퇴가 일상이고 야근이 사라지고 있단다. 평범하고 무난한 매스에 수직수평의 심플하고 간결한 인테리어의 공간들이 유행이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본 공간이다. 상상이 현실을 만나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데, 그냥 상상이 사라진 어디선가 보았던 것 같은, 그래서 괜찮은 것 같은 고만고만한 공간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게 아니면 이번 내가 맡은 프로젝트처럼 상상을 그저 현실로 만들어버린 애매한 건축물이다. 그 어떤 고민이 느껴지지 않는다. 동그라미를 그렸으니 동그라미로 짓겠다는 의지만 느껴질 뿐이다.


누군가를 비판하게 될 때면 나를 뒤돌아보게 된다.


나는 과연 상상하기를 멈추지 않았는가. 무한한 상상 끝에 꿈꾸던 공간을 찾았는가. 그리고 그저 상상이 아닌 현실로 그 공간을 만들고자 노력했는가.

건축가가 되기를 멈추는 그날이 오기 전에 스무 살의 내가 상상했던 그 무언가를 구현할 기회가 찾아온다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텐데, 내공이 부족해 스스로 그 기회를 포기하게 될까 두렵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답이 없는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