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많이 아프고 또 지금도 완전히 멀쩡해지지는 않았다. 불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또 공포스럽기도 하면서 몇 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거의 4개월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무언가 생산적이고 하고픈 일을 해달라는 권유에 기지개를 펴고 무엇을 하려나 고민을 하다가 글을 쓰기로 했다.
문제는 도대체 무엇을 쓸 것인가하는 것이었다. 우두커니 앉아서 무엇을 쓸 것인가 고민하던 중에 이어폰을 끼고 플레이리스트를 듣던 중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는 대중음악을 좋아하니 이쪽으로 방향을 잡자. 일단 생각이 거기에 미치지 생각이 속도를 붙였다. 대중음악으로 시작해서, 대중문화로 확대해 나갔고, 이들을 무엇으로 묶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문학사라는 키워드가 떠올랐다.
대학교와 대학원을 다니면서 국문학을 전공한 나는 그러나 언제나 학교 교육 하에 성립된 '문학사'의 바깥을 끊임없이 상상하며 탐닉했더랬다. '탁류'를 읽기보다는 '사랑의 불시착'을 보는 것이 더 재미있었고, 오페라를 듣기보다는 '빨간 맛'을 더 자주 들었다. 우리는 이들은 '대중문화'라고 명명한다.
대중문화를 탐독하던 나는 결국 가장 좋아하던 작가로 쓰려던 논문이 엎어지자, 완전히 방향을 틀어버렸다. 70년대 소설이 차지하던 책장에는 문화이론서가 자리를 대신했고, 문학사를 읽던 책장에는 팔자에도 없던 신문방송학, 지리학, 미학, 문화론 책들이 자리를 빼앗았다.
그렇게 나는 석사 논문을 썼다. 예심으로 썼던 글을 완전히 휴지통으로 버리고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쓰기 시작한지 한달하고 보름만이었다. 논문을 엎었을 때가 무색할 만큼 정신 없이 달려온 시간들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미친 듯이 논문을 쓰고서 허리고 목이고 마음이고 성한 곳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내 몸을 추스를 새도 없이 나는 떠밀리듯이 또 다른 대학원에 들어갔다. 그때는 도저히 그 연구를 이을 자신이 없었다. 그 연구를 이어가기 보다는 일반대학원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래서 떠밀리듯이 로스쿨에 입학했다.
물론 그곳에서도 내가 바라던 어떤 이데아는 없었다. 하루하루 치이는 삶과, 살벌한 열람실의 공기에 숨이 턱 막혔고, 입학하고서는 매주 눈물로 한 주를 마쳤다. 가뜩이나 눈물이 많은데, 그때는 정말 수돗물을 계속 튼 것처럼 눈물이 너무도 쉽게 쉽게 나왔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망가져있었다. 몸이 아픈 것은 그럼에도 비명을 한 번 지르면 버틸만 했지만, 생각보다 마음은 너무 아팠다. 마음은 비명을 지를수도, 나프록센을 먹어도 나아지지를 않았다. 그렇게 아, 내가 위로가 필요하구나라고 내가 아닌 남이 알려줘서 알게 되었다. 네가 힘들어보인다는 말들을 듣고서야, 나는 달리던 발을 멈춰섰다.
20살 이후로 단 한 번도 쉬었던 순간이 없었다. 휴학을 했던 학기에도 다른 일을 했고, 대학원을 수료하고서도 논문 쓰고 로스쿨을 준비했으니, 정말로 온전히 쉬었던 학기가 없었다. 그 흔하다는 휴학 한 번 없이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가서도 일을 하고 논문을 쓰고, 공부를 하고 입시를 준비하고... 생각해 보면 벅차다 못해 지겨운 시간이었다. 그 순간을 견뎠던 과거의 나에게 작게 수고했다는 위로를 주고 싶었다.
그 수많은 순간들에게서 나를 지켜주었던 것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음악이었고 드라마였고 영화였고, 웹툰이었다. 학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들었던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고, 면접을 앞두고 두근대던 심장을 진정시켜주던 웹툰이 있었고, 잠이 오지 않는 밤을 달래주던 웹드라마가 있었다. 그들과 동고동락하던 순간들이 나를 겨우겨우 붙잡아주고 있었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나를 위로해주던 이들로부터 나를 위로하겠다. 나를 달래주던 자장가로부터 당신이 잠들 수 있기를 기대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갑작스럽지만 조금 이론적인 배경을 설명하자면, '문학사'라는 체계는 생각보다 훨씬 거대하고 공고하다. 문제는 그 문학사는 당연히 역사이기 때문에, 사후적으로 적힐 수 밖에 없고 한국의 문학사는 당연하게도 거대한 줄기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문학사에는 언제나 현재는 있을 수 없다. 작가가 세상을 떠나야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하나의 시대가 끝나야 그 앞의 시대를 정리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문학사의 범위로 주체에 대한 연구는 여러가지 커다란 문제에 봉착해왔다. 그것은 도대체 어디까지가 문학이며 어디까지가 문학사에 기록될 '정전(canon)'인가 하는 문제이다. 정전 비평이란 그래서 언제나 '선별'의 작업이어야 한다. 문학사에 모든 서사를 기록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러니 당연히 문학사는 기록자의 시각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더 정확히는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정전을 선정하는 작업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문학사를 둘러싸고 크고 작은 논쟁이 벌어졌다. 그 중심에는 이른바, '라노벨'이라고 불리는 경소설들이 있다. '라이트노벨'을 어떻게 보아야할 것인가 혹은 이들은 문학인가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들을 문학사에 편입할 것인가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물론 이 논쟁에 답은 없을 것이나, 이러한 논쟁이 발생한다는 것은 일본 내에서 라노벨의 위상이나 그들이 차지하는 분할이 적지 않음을 의미한다는 것은 명확할 것이다.
나는 음악을 듣거나 드라마, 웹툰을 볼 때 그 전체에 꽂히는 경우도 많지만, 그보다는 어느 한 문장에 꽂히거나 하나의 장면에 꽂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생각해 보면 뮤지컬도 넘버 하나 때문에 보러가는 것이고, 아이돌도 가장 좋아하는 멤버가 있어서 보러가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나는 문학사를 다시 쓴다 혹은 문학사를 써보겠다라는 웅장한 계획은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할 깜냥도 안되거니와 그럴 필요성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의 문학사, 혹은 언젠가 쓰일지도 모를 문학사를 위한 내가 듣고 본 수많은 대중문화의 한 장면을 내 나름대로의 언어와 속마음을 담아서 써보기로 결심했다. 솔직히 말해서 문학사를 운운하는 것은 그냥 조금 끼워 맞춘 것이고, 그냥 내가 들려주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아서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나의 기록이 정말로 문학사의 한 대목과 일치하는 경우도 있을지도 모르니까. 오늘도 문학사의 우주를 상상하며 다음에 쓸 한 문장을 고민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