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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하유인 Sep 22. 2020

문학사가 될(?) 대중문화 한 문장

1호 '오랜 날 오랜 밤'

회자정리(離)라는 말이 있다. 법화경에 나오는 말인데,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기 마련이라는 참으로 고아한 인생의 진리를 담고 있는 말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누군가를 만날 때에는 헤어져야한다는 생각을 잘 하지 못한다. 누군가와 헤어질 때는 그 만남이 지겨워졌거나, 혹은 다른 급한 일이 생겨서 일 것이다. 만약 급한 일도 없고 만남이 끊임없이 즐겁다면, 헤어진다는 생각을 잘 하지 않을 것이다.


가족이란, 참으로 '회자정리'라는 말과 어울리지 않아보인다. 가족이란 태어나면서부터 있었고, 살면서 끊임없이 재생되고 되풀이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족이란 관계에도 회자정리는 있다.


너무도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다. 여든이 넘으셨으니 당연히 지병이 없을 수 없고, 아프신 적이 없이 살아오신 것도 아니었지만, 너무도 갑작스러운 이별이었다. 만약 병원에 입원을 오래하시거나 크게 아프신 상태로 계셨다면 이 이별을 준비할 겨를이 있었을까. 아니면 하루라도 더 계셨다면 작별 인사를 드렸을까. 아침에 조금 몸이 불편하시다고 하셔서 병원에 모셨다드렸는데, 그게 마지막이었다. 내가 병원에 급히 갔을 때는 이미 의식이 없이 누워서 숨만 붙잡고 계셨다. 병원 가는 차에서부터 멍한 상태로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이게 무슨 청천벽력인가하며 멍하니 하늘만 쳐다봤다.


결국 의식이 없으신 분을 둘러싸고 가족들이 모두 모여 돌아가며 작별 인사를 했다. 비록 의식은 없으셔도 조금이라도 그 손길을 느끼며 가시기를 그렇게 간절하게 바랬는지 모른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이 세상에서 나의 가족이 한 명 사라졌다. 그렇게 돌아가시면서 온 가족은 눈물바다가 되었고, 몇 분을 다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혼돈스러웠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죽음이란 그토록 세속적인 것이라, 갑작스러운 이별에도 가장 먼저 고려해야할 것은 장례식과 상조였다. 산 자와의 이별을 충분히 인식하기도 전에 현실이라는 조건들이 발목을 잡으면서 넘어질 것 같이 어지러웠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장례 준비가 마쳐졌고, 나는 상복을 주섬주섬 입었다. 문제는 마지막 이별의 인사 후에 상복을 입고 하루가 지나기까지도 그 사람과의 마지막이 실감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냥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마치 모든 것이 그렇게 될 것임을 절대자가 알고 있었는 양, 거리낄 것이 없어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없었다. 사람들은 때를 맞춰서 적당히 몰아닥쳤고, 울려퍼지는 레지오는 일정한 박자 속에서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사람이 앉으면 음식이 날라지고 다 먹으면 인사를 하고 떠났다. 그것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일정하고 간결했다.


나는 이튼날이 되어서야 장례식장의 공기가 너무 무겁고 답답해서 밤 중에 조금 벗어난 곳까지 걸어 나왔다. 공원에 앉아 우두커니 이어폰을 꽂고 플레이리스트를 틀었다. 물론 그 중엔 이 노래가 있었다.


사랑해란 말이 머뭇거리어도 거짓은 없었어


노래를 들을 때면 언제나 그 노래의 주인공을 상상하는 버릇이 있다. 이 노래의 화자는 이별한 뒤에 이 노래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노래의 주인공은 사랑한다는 말을 아낀 사람일 듯 하다. 그런 그에게도 이별은 찾아왔다. 이별의 이유는 오직 본인만이 알 것이다. 그는 사랑했던 혹은 아직도 사랑하는 그 사람을 생각하며 이 기나긴 밤에 잠도 이루지 못하고 이렇게 일기를 쓰고 있을 것이다. 만감이 교차한다. 지금 이 이별을 받아들이기에는 당신을 너무도 사랑했고, 헤어진 당신의 손을 잡기에는 우리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


밉게 기억하지는 말아줄래요  


이별은 누구에게나 동등하고 공평하다. 이별에는 편면적인 이별이란 없다. 이별은 언제나 쌍방폭행이고, 쌍방과실이다. 어느 누구 하나 이별 앞에서 무결한 사람은 없다. 먼저 이별을 고한 사람도, 이별을 통보 받은 사람도 결국에는 피해자이고 가해자이다. 그럼에도 너무 큰 욕심인 것을 알지만서도 당신이 기억하는 나는 아름답고 순박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이별하기까지 잔인한 순간도 있었고, 비극적인 서사도 있겠지만, 그런 것들은 다 잊고 나와의 시간을 당신이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별 하나 있고 너 하나 있는 그곳이 내 오랜 밤이었어


도시의 불빛은 저 멀리 셀수도 없는 빛의 거리에서 오는 별의 흔적을 가리운다. 그러나 어떤 날에는, 도시의 불빛마저 꺼져버린 새벽의 시간이 되면 그제서야 자취를 감춘 별들이 기지개를 펴고 나에게로 쏟아지는 날이 있다. 나는 당신과 밤을 산책하며 내 발등에 꽂힌 별빛을 기억한다. 그 별빛은 그저 밤에 떠있던 것만이 아니라, 내가 바라보던 당신의 귀에도 들렸고, 입으로도 발화되었다. 마치 밤 하늘이 천정이 되고, 내가 내딛고 있는 옥상이 땅이 되면 당신은 등불이 되어, 이 어둡고 협곡 같던 밤이 안락했던 밤이 있었다.


우린 서로에게 깊어져 있었고 나는 그게 두려워


관계를 끊고자 마음 먹어도 그게 마음먹은 대로 실행되지 않는 이유는 우습게도 관계가 습관이 되어버린 까닭이다. 다른 무엇도 아니고 사람이 습관이 된다는 것은 안타깝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친구의 관계도, 연인의 관계도 당연히 습관성이 되고, 가족은 이미 습관이 된 지 오래이다. 정기적으로 얼굴을 보아야 하고, 같이 밥도 먹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대화를 나누거나 여행을 가거나 모임을 나갈 때에도 그것은 가족이기 때문에 당연하게 여겨진다. 내가 너무도 이 시간이 싫고 맞지 않는다고 느껴져도 관계는 습관이고 가족은 어느 순간 습관을 넘어 강박이 되어간다. 그렇게 오래된 관계를 끊어내는 것은 마치 나에게 너무도 당연했던 습관을 버리는 일처럼 어렵고 두렵다. 아침마다 마시던 커피를 포기하거나 주말마다 가던 낚시를 포기하거나 밤마다 쓰는 글을 포기하는 것처럼 습관이 된 관계를 끊어내는 것은 어렵고 서투르다. 마치 안경을 처음 쓸 때에는 안경을 챙긴다는 것이 강박이지만, 너무 오랫동안 안경을 쓰다보면 안경을 벗는 것을 자꾸만 까먹고 실수를 한다. 그래서 관계를 끊어내는 것은 습관을 버리는 것처럼 처절하고 애달프다.


오랜 날 오랜 밤 동안 정말 사랑했어요

어쩔 수 없었다는 건 말도 안거라 생각하겠지만


당신을 만나던 때는 나는 지금도 생생하다. 당신은 언제나 나에게 가장 먼저 반가움을 표하고 가장 늦게 잘 가라는 인사를 건네주었다. 당신은 나에게 만큼은 무한한 사랑을 주었다. 조건도 제한도 없이 당신은 나에게 가장 많은 관심을 주었다. 나는 그런 당신이 무섭고 어려워서 더 많이 다가가지 못했다. 그저 가족이니까, 그저 만나는 게 습관이고 강박이니까, 그냥 그렇다고만 생각했다. 당신과의 이별 이후에 한 번도 울어보지 않았는데, 이렇게 문득 검은 밤에 앉아 당신을 생각하니 어깨가 들썩거리면 눈물이 난다. 당신이 없다는 것이 실감난다. 당신이 이 세상에 없어, 더 이상 당신을 볼 수 없다는 상상과 미래가 생각이 나서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난다. 이젠 나를 반겨주는 당신이 없고, 당신에게서 들을 수 있는 안녕이라는 인사도 없다. 이제서야 당신을 사랑했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왜 어쩔 수 없는 말이 되어버렸을까요. 이럴 거였으면 사랑한다는 말을 머뭇거리지 말 걸, 아끼지 말 걸.


이젠 마지막 목소리 이제 마지막 안녕


탈상을 하고서 집에 와서 한참을 잠만 잤다. 그렇게 깊이 자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잠만 잤다. 한 번 꿈에서라도 인사를 하고 싶은 마음까지도 사치였는지, 그런 바람마저 유린당했는지, 당신은 꿈에서도 한 번 나오지 않았다. 나는 내가 야속해서 미웠다.


'이별'이라는 주제는 인류사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이자, 시와 노래의 주제이다. 그것은 이별이라는 것이 참으로 다양한 양태와 성질을 가지고 우리에게 도래하기 때문일 것이다. 악동뮤지션의 이 노래는 이별이라는 인류 보편의 정서를 담고 있지만 그것은 보편적이고 상투적인 표현에 우겨넣지 않는다. 그들은 이 정서를 자신들의 세계와 언어로 재-서술한다. 넓은 대륙을 타고 흐르는 별들이 쏟아질 듯한 평야. 이별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한 개인의 혼란스러운 정서, 그럼에도 나의 의지와 바람과는 상관 없이 맞이해야만 하는 이별. 5분 남짓한 이 노래에는 이 시대에 이별이 갖춰야할 요건들이 골고루 구비되어 있다.


이 노래는 마치 두 사람이 대화를 하듯이 서술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이 공간적으로는 분리되나, 시간적으로 동시적이고, 언어적으로는 차별화되나, 감성적으로는 동일시되어 서술된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두 장소에서 부르는 노래가 듣는 이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장소와 순차적 시간을 재현되는 것이다. 그래서 듣는이는 이 노래는 들음으로서 내가 떠올리는 그 사람과 대화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내가 다 차마 다 해소하지 못했던 당신과의 여남은 말들을 그들이 대신 불러준다. 당신이 하고 싶었던 말들이 이런 것이지 않았냐는 양, 차분하고 치밀하게 담화를 쌓아가다가. 그럼에도 결국에는 마지막 인사를 하면 끝내는 듯 하다가. 결국에는 그 다음의 말들을 끄적인다. 사실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당신과의 마지막 인사가 아니라, 당신과의 그 시간들이었다는 진심을 못내 불러버리고 만다.   


이 노래가 정전이 되어야 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정전은 재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유효하여야 하고, 과거에도 유효하여야 한다. 이 노래는 지극 현대적이면서도 지극히 보편적이다. 끝내 만나지 못하고 헤어진 수많은 관계들이 있었을 것이고, 다음을 기약했지만 끝내 헤어진 수많은 마음들이 있을 것이다. 이 노래는 그 수많은 이들의 밤을 위로한다. 차마 끝내지 못해던 인삿말을 대신 해주면서 당신이 떠나서 텅 비어버린 방을 별과 밤으로 채워준다. 그래서 이 노래는 지금도 나의 밤의 위로해주었던 것처럼, 미래에 언젠가에도 그 사람의 밤을 위로해 줄 것이다. 물론 그때도 밤하늘과 이 별들이 존속해 준다면 말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사랑해란 말이 머뭇거리어도 거짓은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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