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다른 발렌시아, 바르셀로나
그라나다에서의 추억을 뒤로 한채 우리는 발렌시아로 향했다. 분명 구글에서 알려준 거리와 시간은 5시간 안팎이었으나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은 달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14유로도 하지 않은 버스 티켓은 우리를 스페인의 구석구석을 엿보게 해주었다. 생전 처음 들었던 Murcia, 그리고 스페인 사람들의 휴양지로 잘 알려진 Alicante와 Benidorm까지 우린 소도시부터 대도시까지 두루두루 섭렵했다. 그렇게 장장 9시간, 거의 2배 가까이 되는 시간을 소모하고 나서야 발렌시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분명, 우리가 출발한 시간은 오전 10시 반쯤이었으나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문 저녁이었다. 그래서 대충 저녁을 숙소 근처에서 때우고 내일을 기약했다.
발렌시아에서는 2박 3일 있었지만, 거의 하루를 버스에서 보냈고, 마지막 날에는 아침 일찍 떠나야 했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결국 하루뿐이었다. 보다 효율적으로 돌아다니기 위해 우린 자전거를 대여했고, 스페인에 와서 처음으로 대중교통을 제외한 교통수단을 이용해 보는 것이었다. 키가 그다지 크지 않은 관계로 작은 자전거를 이용했더니 하루 온종일권이 둘이 합해서 15유로도 안됐다. 역시 스페인도 유럽이라고 체감했던 이유는 어딜 가나 자전거 길이 따로 있었고, 차를 운전하는 사람들도 보행자와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우선시했다. 무언가 '배려'라는 게 느껴졌던 부분이었다. 그렇게 우린 자전거를 타고 발렌시아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의 현대 건축물 ‘예술과학도시’를 둘러봤다.
서울 어린이 대공원을 가보지는 못했으나 발렌시아의 Oceanografic이 훨씬 크게 느껴졌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던 이 공원 안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에 굉장히 좋다. 특히 따로 자전거만 보관해둘 수 있는 곳도 있기에 더욱 편리하다. 첫 번째 사진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공원 안에 각기 다른 건물이 지어져 있는데 그 모양은 마치 물가에 럭비공을 올려놓은 것 같기도 하면서 공룡의 모양을 띄는 것 같기도 한 매우 기이하면서도 형상학적이었다.
물론 발렌시아 하면 빠에야, 빠에야 하면 발렌시아라는 등호가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마드리드에서 첫날 먹은 빠에야가 가장 입맛에 맞았다. 발렌시아는 조금 짠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음식을 주문하기 전에 'Sin sal(씬 살)' 혹은 'Un poco de sal(운 뽀꼬 데 살)'이라고 말하면 아예 소금을 넣지 않던가 덜 짜게 해준다.) 솔직히, 발렌시아는 내가 가고 싶어 했던 도시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이런 현대적인 건축물을 눈에 담았다는 데 의미를 뒀다. 그러나 친구가 가고 싶어 했던 아쿠아리움은 열지 않았고, 동물원은 너무 멀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얻은 교훈은 가고 싶은 곳에 대한 정보는 보다 정확하게 알아 둬야 한다는 것이었다.
뭔가 밍밍하지만, 그렇게 싱겁게 발렌시아 여행은 끝이 났다. 친구는 아쉬움을 토해냈지만, 나는 별 감흥이 없었던지라 그저 다음 여행지였던 바르셀로나에 대한 기대감만 증폭되었다. 렌페(Renfe)를 타고 대략 5시간의 시간 후 우린 드디어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할 것도 볼 것도 많은 바르셀로나인지라 우린 계획대로 움직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우리가 몬쥬익 (Montjüic) 케이블카를 타기에는 늦었기에 그렇게 8유로가량의 티켓을 날렸다. 비록 바로 눈 앞에서 날려야 했던 몬주익이었지만 위에서 밑을 바라 본 전경은 그야말로 고민을 가시게 했다.
몬쥬익 위에서 사람들은 각자 자리를 잡고 분수쇼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1시간 넘게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시작되지 않은 바르셀로나 분수쇼에 우린 분개하며 숙소로 향했다. 혹여 우리가 돌아가는 길에 분수쇼가 시작될까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면서 걸었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날, 우리는 일찍부터 서둘렀다. 어제 보지 못한 한풀이를 하듯 일정이 빡빡하게 짜여 있었기 때문이다. 가우디의 모든 것을 보고 싶었으나 시간과 금전 관계로 우린 가장 보고 싶은 3개만 고르기로 했고, 거기에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Sagrada Familia), 구엘공원(Parque Güell) 그리고 마지막으로 까사밀라(Casa Mila)가 있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가우디 성당으로도 유명한 사그라다 파밀리아였다. 아침 일찍 나왔다고 생각했음에도 역시 관광명소 1 순위답게 사람이 바글거렸다. 한 달 전에 인터넷으로 티켓을 예매했기에 우린 바로 입장 가능했다.
성당의 앞 뒤 느낌이 다르다. 아버지와 아들의 합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1년에는 완공한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직접 가서 봤을 때 과연 이 공사가 5년 안에 가능할지는 의문이 들었다.
들어가기 전 성당 사이즈에 압도 당해 우린 지레 겁을 먹었다. 그러나 성당 앞으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가우디의 섬세함이 느껴졌다.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의미 있는 인물들이었고 특히 그가 가진 특유의 스타일을 안팎으로 고수했다.
무병장수의 상징으로 거북이를 건물 아래에다 배치해 놓은 것은 정말 신의 한 수였다. 어딜 가나 있는 중국인들은 정말 대륙의 힘을 보여줬다. 그들은 단체로 오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스페인 사람으로 보이는 남자가 유창한 중국어로 설명해주는 데 어찌나 어머님들이 좋아하시던지... 그보다 그가 스페인어로 잠시 말했을 때 들은 내용으로는 거북이의 긴 수명을 이용해서 건물 밑에 놔둔 것이라고 밖에 듣지 못했다. 그러나 또 이게 뭐라고 많은 이들이 옆에서 사진 찍으려고 하는 것을 밀쳐 내서 겨우 건진 사진이라 내게는 남다른 의미가 있어서 남겼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갔다 온 사람은 두 분류로 나뉜다. 안을 들어가 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성당 안은 더 어마 무시하게 웅장했고 동시에 아름다웠다. 특히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비치는 형형색색 빛깔들이 너무나도 고왔다. 그것도 그거지만 천장이 너무 높아 아래서 위를 바라보고 소리쳐도 들리지 못할 것만 같았다. 물론 울림을 이용해서 가능할 수는 있지만 그만큼이나 높았다. 특히 온통 안을 하얀 기둥과 벽으로 되어 있어 들어오는 빛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성당 안에서 너무 위에만 쳐다봤더니 몸에 담이 올 때쯤에 옆을 둘러봤더니 옆에서도 들어오는 빛줄기들이 너무 경이로웠다. 이는 백 마디 말보다 그림 한 장을 통해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으리라 믿고 여러 장을 찍었다.
때마침 해가 있기 전에 방문해서 그 후 시간대까지 있었기에 햇살이 들어오는 과정을 눈으로 다 담을 수 있었다. 의도치 않았지만 성당 안을 가장 감상하기 좋은 때 들어갔던 것이다. 여러 색깔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색깔은 아무래도 주황이었던 것 같다. 굉장히 밝은 대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당 안이 은은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한, 햇살에 색깔이 있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봤을 때 이는 주황이 아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햇살을 카메라에 담고 난 후에 갑자기 머리가 뜨겁게 달구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저 느낌뿐이었지만, 다시금 가장 위, 천장을 봤을 때 송송 뚫린 그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은 핸드폰 카메라로는 다 담기지 않았다. 이때 다시 한 번 잃어버린 DSLR이 생각났다. 울컥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위를 올려다봤을 때 들어오는 햇빛은 마치 성모 마리아 님의 포근함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성당 안은 전반적으로 모던함이 물씬 느껴졌다. 비록 샹들리에 같은 옛날 조명이 있긴 했으나 그를 제외한 나머지는 그렇지 않았다. 하물며 스테인들 글라스 조차 현대적으로 느껴졌다. 물론 가우디의 작품들 대다수가 시대를 앞서는 건축물이긴 했지만 이렇게 신박하게 새로울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다. 아마 그래서 그런지 다른 어느 곳보다 기념품을 제일 많이 사갔다. 그중 가우디의 이야기를 어린이 동화책으로 만든 기념품이 있었는데 거기서 나온 얘기 중 하나가 그가 기획한 구엘공원, 즉, 지금 바르셀로나의 아이콘이 그때 당시 사람들에게는 반신반의한 작품이었다고 한다. 그 정도로 가우디의 능력은 천재를 능가하는 그 무언가 혹은 어딘가 다른 차원에 존재했던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종교를 막론하고 앉아서 기도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비록 가톨릭 신자는 아니었으나 마음 따뜻해지는 햇살 때문이어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성스러운 마음이 들어 기도를 했다. 일요이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많아서 이만했으면 됐다 싶어 일어서서 뒤를 돌아봤더니 들어오는 저 찬란한 빛들이 나를 다시 태어나게 만들게끔 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게 대충 둘러볼 곳은 다 둘러보고 나가려고 했을 때 눈길을 끈 곳이 있었다.
큰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실제로 밑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는데, 예배 장소 옆에 가우디의 무덤이 있었다. 물론 얼핏 듣기로는 그의 실제 무덤은 다른데 있으나 그를 기리기 위해 따로 대리석으로 성당 안에 만들어 놨다는 것 같았다. 뭔가 섬뜩하면서도 내가 비록 그를 살아생전에 보지는 못했으나 이렇게 그의 무덤이라도 볼 수 있어 기뻤다.
밖을 나와서 아직 미완공인 부분을 봤을 때 느낀 건 가우디와 그의 아들의 조각 스타일은 현저하게 다르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잘 깎은 돌 마냥 이쁘긴 했으나 가우디의 작품에 비해서는 약간 갸우뚱거릴 정도로 좋게 느껴지진 않았다. 뭔가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으나 아들의 작품에서는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만일 이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완공한다면, 나는 다시 한 번 와서 구경하고 싶다. 그때는 성당 전체를 돌아다닐 수 있는 전체 관람 티켓과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와 함께 말이다. 부분적으로만 볼 수 있었기에 아쉬움이 상당히 컸다.
그렇게 사그라다 파밀리아 투어를 마치고 바삐 움직여 구엘 공원을 향해 갔다. 생각보다 가우디의 작품은 바르셀로나 군데군데에 존재했던 것 같다. 대략 사그라다에서 경보로 30분을 앞만 보고 갔을 때 우린 드디어 모두가 손꼽는 바르셀로나의 수많은 대명사 중 하나인 'PARQUE GÜELL'에 도착했다.
바르셀로나 여행기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