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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쎈쓰 ssence Jul 05. 2016

'데몰리션', 자아 성찰의 시간

산산조각 난 감정 속에서 찾아 나서는 '나'

아내가 죽었다.

슬프거나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 같다.



구구절절 데이비스는 자신의 속마음을 망가진 자판기 회사에 털어놓는다. 그는 편지에 자신이 느낀 감정보다는 지금 처한 상황 위주로 얘기하면서 왜 그가 이 글을 써야만 했는지 이유를 달기 시작한다. 아내가 죽고, 그렇게 아내의 장례식을 끝내자마자 아무렇지도 않게 회사에 출근하는 데이비스를 사람들은 이상하게 쳐다본다. 그런 그에게 장인어른이자 직장 상사인 Phil은 충고를 해준다.


뭔가를 고치려면 전부 분해한 다음
중요한 게 뭔지 알아내야 돼.


줄리아는 늘 그에게 매사에 관심이 없다고 타박하곤 했다. 그런 그녀가 떠나고 세세한 거 하나하나에 신경 쓰는 데이비스에게 물 새는 냉장고와 비싼 커피 기계는 심적으로 그를 괴롭힌다. 그런 그가 필의 말을 듣고 떠오른 건 모든 걸 분해해보는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2년 전에 주신 공구를 가지고 모든 고장 난 것들을 분해하기 시작한다. 그런 그를 모두가 우려하지만 오히려 그는 홀가분해한다. 어느 날 그에게 이상한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이는 일종의 꾸준히 보내온 편지의 답장인 셈이다. 그러고 그녀는 새벽 2시에 말한다.


편지를 읽고 울었어요.
얘기할 사람은 있나요?


데이비스에게 캐런은 아무도 아닌 제삼자이자 동시에 자신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녀는 곧 유일한 관찰자이자 청취자인 셈이다.  그런 그녀만이 그의 솔직한 말과 행동을 부러워한다. 거침없이 자신은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말을 하는 남자에게 그녀는 말 못 할 애석함을 느낀다.


캐런에게 삶이란 버거운 것이다. 대마초를 피면서도 아이에 대한 책임감에 삶을 꾸려 나가야만 하는 여자. 그런 그녀가 데이비스를 보고 삶의 의미를 찾는다. 슬퍼하고 싶어 하지만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그가  찾아 나서는 감정을 다시 돌아오게끔 해주고 싶어 한다. 어쩌면 데이비스가 온전히 자기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캐런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가 생각한 일들, 그리고 이를 실제로 행한 것들 모든 것을 어느 잣대로 판단하지 않고 그저 들어주기만 한다. 마치 예전부터 알고 지냈던 편한 친구처럼.



그가 캐런을 통해서 가장 많이 얻은 건 아내에 대한 회상이다. 바다를 좋아했고, 회전목마를 같이 탔던 줄리아. 그녀와의 추억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캐런과 데이비스, 비슷한 듯 다른 둘의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차이점으로 캐런에게는 아이가 있다는 점이다.

 


크리스 모레노. 15살이지만 12살의 앳된 얼굴로 21살처럼 행동하는 아이. 어찌 보면 캐런과 데이비스가 허무맹랑한 이유로 엮이게 된 것은 크리스를 만나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크리스가 영화에서 데이비스에게 미친 영향력이 캐런보다 더 또렷하게 크다. 데이비스에게 분해 작업이란 자아 성찰의 시간과도 같다.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 또한 데이비스와 동참한다. 자신의 정체성, 즉 자아를 찾기 위해 그들은 일종의 동업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캐런도 크리스도 데이비스를 '솔직한 사람'으로 지칭한다. 마치 그가 자신의 인생에 솔직해지면서 그들도 그들의 인생에 솔직해지고 싶은 염원을 담아서 부른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필의 말 한 마디로 비롯되어 시작된 데이비스, 자기 자신을 찾아 나서는 여정이다. 그가 과연 아내를 사랑했을까? 그는 캐런과 함께할까? 영화를 보는 내내 서성거리던 질문들이 무색할 만큼 감독은 산뜻하게 엔딩을 선사한다. 영화 포스터에도 쓰여 있듯이 이 영화는 그저 'Life, some disassembly required. (삶, 가끔은 분해가 필요한 것)'을 표본으로 삼는다. 우리가 삶을 살아나가면서 필요한 것은 어쩌면 자기 포장이 아닌 자기 분해일 수도 있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생각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더 적은 요즘 사회에서 어쩌면 '데몰리션'은 우리가 겪어야 하는 하나의 과정이 아닌가 싶다. 마치 데이비스가 남들에게 억지로 자신이 슬프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을 때 가능하지 않았던 울음이 아내가 차 안에 써놓은 작은 포스트잇 한 장에 무너지는 것과 같이.



믿고 보는 배우, 제이크 질렌할과 나오미 왓츠의 연기는 정말 나무랄 데가 없다. 눈 앞에서 아내를 잃었지만 아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가련한 남자와 이를 보고 안타까워하는 생판 남인 여자. 솔직히 제이크 질렌할의 큰 눈이 연기의 8할을 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눈빛 연기에 슬픔과 분노 그리고 아련함까지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영화 속 모든 시선을 강탈한 이는 따로 있다. 유다 르위스. 크리스 모레노라는 인생이 심오하지만, 때로는 아이같이 순수한 역할을 너무나도 잘 소화해냈다. 데몰리션은 7월 13일 극장에서 개봉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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