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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쎈쓰 ssence Nov 25. 2016

달려라, 인생아

우리가 버틸 수 있는 이유는 함께이기 때문이다.

이번 주도, 저번 주도 우울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물론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힘든 일 투성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 무엇보다도 더 이상 이를 견뎌낼 자신이 없어서이기도 했다.


그때, 아는 선배의 카카오 톡 프로필에 쓰였던 문구는,

삶은 생방송,
인생은 마라톤


이런 낯간지러운 말들을 싫어하지만, 나 스스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던 말이기도 했다. 그 말을 보자마자 생각난 것은 다름 아닌 '미스 리틀 선샤인 (Little Miss. Sunshine)'이라는 영화였다.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시작된, 계획에도 없었던 여행을 떠나게 된 올리브네 가족. 겉보기에도 이상한 그들은 실질적으로도 조금 유별나다. 애인에게 버림받고, 직장에서까지 해고당한 삼촌은 자살 시도한 이력이 있고, 음담패설에 능한 할아버지는 몸에 해로운 것만 달고 살며, 공군학교에 가기 전까지 침묵 수행을 하고 있는 오빠. 게다가 모두에게 자신의 9가지 이기는 법만 강요하는 아빠와 이 모든 것에 신물이 난 엄마.


오히려 우린 영화를 보는 내내 그들을 현실적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코믹하다고 말할 것이다. 게다가, 영화니까 설정 가능한 인물로 여기게 될 것이다. 지나치게 현실적이면 그만큼 자신과 괴리감이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가장 명랑하고 어른스러운 올리브. 우연히 참가한 이쁜 어린이 선발대회에서 2등 한 그녀가 아픈 1등을 대신해서 더 큰 대회에 갈 수 있는 참가 자격을 갖게 되었다는 전화에 이 이상한 가족의 여행 그리고 영화가 시작된다.


이 영화를 한 번이라도 봤다면 공감 가능한 사실 하나는 시청자 모두가 주인공인 올리브의 행동과 말투에 한 번쯤은 미소를 지어 보았을 것이다. 또래 아이들보다는 조금 더 통통하게 비치지만 그만큼 매력도 통통 튀는 아이. 항상 알이 큰 안경을 쓴 채로 할아버지 뒤를 쫓아다니는 티 없이 맑고 순수한 올리브. 우리가 그녀에게 배울 점은 끈기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모든 걸 매진할 수 있는 용기가 어리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만일 그녀의 열정이 없었더라면 영화 속 가족이 마주한 한계는 없었을 것이고 이에 따른 가족의 협심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가족이 그녀로 인해 하나 된 것처럼 무한 긍정 소녀 올리브가 있기까지에는 가족이 뒷받침해주었다. 약간은 비정상적인 구조의 가족 속에서 귀여운 막내를 맡고 있는 올리브는 그야말로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면서 자랐다. 특히 할아버지와 같이 대회 춤을 구상했을 정도로 친밀하다. 그건 할아버지 또한 마찬가지다. 어린 손녀가 대회에 나간다는 말에 당장 자신이 안무가이기 때문에 따라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여행 도중 할아버지에게 남모를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도 할아버지는 손녀의 마음을 달래준다.  

A real loser is somebody that is so afraid of not winning, they don't even try.
진짜 실패자는 이기지 못할 것 같아서 시도도 하지 않는 사람이야.



비록 실버타운에서 마약을 하다가 나와, 아들 내외 눈치를 보면서 살지언정 손녀에게는 무한정으로 따뜻하고 올바른 할아버지다. 영화 도중, 느닷없이 갑작스럽게 사건이 터지지만 이 또한 감독은 가족을 성장시키는 데 하나의 장치적 요구로 쓴다.


할아버지 외에도 니체와 하늘을 사랑한 오빠, 드웨인. 조금은 어둡고 괴짜 같은 면이 있지만 속이 깊고 따뜻한 구석도 있다. 비록 모두를 싫어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지만,  동생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슬픔을 뒤로 한채 함께 떠날 줄 아는 동생 바라기. 공군이 되어 비행하고 싶은 그에게 큰 시련이 다가와 이를 분노로 탈바꿈시킬 때에도, 동생의 포옹 한 번에 사그라든다.


게다가 모든 걸 시니컬하게 받아치는 삼촌, 프랭크도 조카의 질문에는 솔직하고 담백하게 변한다. 남들이 어찌 반응하던지 그는 자기 자신을, 프루스트를 미국에서 제일 잘 아는 학자로 소개한다. 그런 그에게도 아픈 상처가 있다. 그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이는 상대 교수에게 가버리고 상까지 빼앗긴 그가 선택한 길이 자살이었으나 이마저도 제대로 행해지지 않았다. 그런 그를 올리브는 단순히 'That's silly(바보 같다)'라고 말하고 끝내 버린다. 이런 삼촌의 상황을 얘기하려고 했을 때, 올리브의 아빠는 크게 반대했다. 아직 어린데, 그런 사실을 말하는 건 결코 정신적으로 좋지 않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오히려 올리브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어린아이의 눈에서 바라봤을 때 남자가 남자를 사랑한다는 사실도 사랑하는 사람한테 배신당해서 죽음을 선택해도 삼촌은 삼촌이기에 오히려 어른들보다 더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여기서 올리브와의 관계 말고도 삼촌과 오빠의 관계에도 주목할 만하다. 영화의 끝자락에 다가설 때 드웨인이 큰 시련을 마주한 이, 다시 말을 하면서 삼촌과 제일 먼저 대화를 한다. 이는 그가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상대로 삼촌을 지목한 셈이다. 어떻게 보면 드웨인과 프렝크 삼촌은 상당히 유사하다. 둘 다 자신의 인생에 진지하면서 동시에 해학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역경과 고난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이를 그들은 이겨낸다.

"You do what you love and fuck the rest."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해 그리고 나머지는 다 엿 먹으라고 해.)

그들의 결말은 명확히 보여주지 않는다. 오빠가 공군사관학교를 들어갔는지 혹은 삼촌이 다시 프루스트 최고 권위 학자가 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암묵적으로 시청자들은 알 수 있다. 그들이 뭐가 됐든 해낼 것이라는 것을.



올리브의 엄마 쉐릴은 늘 가족이 우선이다. 비록 올리브를 데려갈 수 있는 여건과 경비가 없어도 빚을 내서라도 갈 엄마다. 뭐랄까 미국판 한국 엄마 느낌이 물씬 풍겼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오로지 학업을 권하기보다는 자식이 원하는 면에 있어서 물심양면 챙겨주는 스타일이다. 



그녀와 달리, 아빠는 '이기는' 데에만 집중다. 비인기 강사인 그가 온 가족을 데리고 여행을 간다는 데에 있어서는 상당한 경제적 압박이 있었음에도 딸이 이길 수 있는 데에만 주력한다. 그는 강의 내용을 책으로 출판해야 성공한 사람의 축에 들 수 있다는 강박증을 다른 이들에게도 심어주고 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는 자신에게 성공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과 불안함을 증폭시키는 꼴이 된다. 특히 올리브가 아이스크림을 시키는 장면에서 굉장히 시니컬하게 되묻는데 이는 마치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것과도 같다.

Okay but, Olive let me ask you this. Those women in Miss. America- Are they skinny, or are they fat?
그래, 올리브 하지만 이거 하나만 물어볼게. 미스 아메리카에 나온 여자들이 혹시 날씬하니 아니면 뚱뚱하니?

이에 다른 가족들은 치를 떨지만 그는 오히려 당당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삼촌이 비아냥대는 어투로 자신의 '이기는 법'에 대해 말했을 때는 이렇게 답한다.


Sarcasm is losers trying to bring winners down to their level.
빈정대는 것은 실패자들이 성공한 자들을
자신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려고 하는 거야.


그러나 그가 책 출판권을 따내지 못하고 이에 대해 따져 물었을 때 유명한 에디터는 한 마디 한다. 어느 누구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당신이 문제라고.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이 또 있다면, 올리브의 대회 출전 전과 후로 바뀐 가족의 관계다. 그들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올리브를 보호했지만 결국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같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보여준다. 누군가의 잣대 혹은 세상이 말하는 평균에서 조금 벗어난다고 한들 나를 지지해주고 아껴주는 가족이 버티고 서 있는 사실 자체가 힘이 날 때가 있다. 해피엔딩으로 대미를 장식한 영화의 마지막은 조금 클리셰 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가족 앞에는 아직 풀어야 할 문제로 가득할 뿐 어느 누구 하나 성공하거나 여전히 그들을 정상적으로 그리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신선하다. 시청자들에게 그들의 미래를 선택하게 해 준 것이다.



가족 모두가 실패자다. 누구 하나 인생이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 물론 어린 올리브도 포함이다. 그러나 이들이 끝까지 리틀 미스 선샤인을 향해 달렸던 것처럼 자신의 인생도 끊임없이 달릴 것이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비록 6명이었던 가족이 5이 되고, 그토록 원하지 않았던 실패자의 길에 있다고 해도, 옛 애인에게 비루한 모습을 들켜 한 없이 작아졌대도, 자신이 몇 년간 갈망하던 길을 한순간에 못 간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어도 그들은 꾸준히 달릴 것이다. 그들이 함께 있는 한.



10년이나 지난 이 영화를 지금 다시 봐도 어색함 없이 시청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세련된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처럼 색감이 이쁘거나 데몰리션처럼 배우의 감정선이 섬세하지는 않지만 그래서 더 정감 가는 영화다. 지치고 힘들 때 우리가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는 가족이, 친구가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있는 한 우린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니 무너지지 말자. 오늘 하루도.



당신만이 이상하게 느껴지고, 나한테만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하는 생각은 고이 접어두자. 왜냐하면, 나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EVERYBODY PRETEND TO BE NORMAL.
모든 사람들은 정상인 척한다.



번외로, 주인공들의 10년 전과 그리고 지금의 모습을 담아봤습니다.

http://www.intouchweekly.com/posts/little-miss-sunshine-anniversary-109064/photos/abigail-breslin-little-miss-sunshine-17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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