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돌 Jun 12. 2024

에세이는 일기가 아니다

스스로 되뇌는 말



  "가벼운 주제로 쓰기 시작하세요, 일단 쓰세요." 많은 글쓰기 전문가와 선생님들이 말한다. 완벽을 기하느라 꾸준하지 못한 사람에게 알맞은 조언이 아닐 수 없다. 지나친 자기 검열에 빠져 글쓰기를 차일피일 미루느라 실력을 못 키우는 사람에게 이 같은 교훈은 확실히 유효하다.


  그 덕(?)에 세상엔 많은 글이 넘쳐난다. 블로그를 비롯한 각종 개인 채널은 물론이고 이곳 브런치 같은 플랫폼이 사람들의 표현 욕구를 해소해 주는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정식 출간 방식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책을 엮어내기 쉬워졌고 유통하고 판매하는 일조차 가능해졌다. 자칭 타칭 '작가'로 불리는 이들이 많아진 이유다. 그러다 보니 전문 지식을 요하는 분야보다는 에세이, 수필 작가의 수가 훨씬 많은 게 아무래도 당연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에세이라고 쓴 글 중에는 일기에 머문 컨텐츠가 많다. 나 역시 어떤 발상에 꽂혀서 글을 쫙 써 놓은 뒤 읽어보면 일기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땐 남에게 공개하기 꺼려질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 만족스럽지 않아 지워버리기 일쑤다.


  일기가 글로서 효용과 가치를 지니는 건 생각과 감정을 글로 쏟아낸 뒤 자기 방 책꽂이에 꽂아 두었을 때만이라고 생각한다. 남들 다 보라고 올린 컨텐츠가, 그것도 에세이를 표방한 글이 일기 수준이라면 글쓴이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자칫 자아도취에 빠지기 십상이라고 보는 것이다. 


  사적인 일기는 타인의 공감을 끌어내기도, 좋은 글로 인정받기도 힘들다. 아무리 뛰어난 문장이라 한들 읽히기 전의 글은 활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공감도 인정도 받지 못하는 글에는 생명력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기나마 꾸준히 쓰면 글쓰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 리는 없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일기에 머문 글을 두고 에세이라 여(우)기며 타인의 공감이나 격려를 기대해서는 곤란하단 거다. 이는 마치 잔뜩 어질러진 방 사진을 찍어 놓고 '오늘의 집'에 자랑하고 싶어 하는 욕심과 다를 바 없다. 아무리 구도가 깔끔하고 빛과 조명이 예쁘다 한들 정돈되지 않은 방을 공개하면 그 상태에서 살고 싶어 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좋은 글, 진짜 에세이는 이와는 다르다고 본다. 누구든 읽기 쉽게 잘 정돈돼 있으며, 그걸 읽었을 때 내 생각과 한 번쯤 견주어 볼 만한 여운을 주는 글, 나아가 공감까지 일으키는 글이라야 비로소 훌륭하고 뛰어난 에세이라고 할 만하다.





  글쓴이의 생각과 감정을 강요하는 듯한 글, 너무 완고하여 타협의 여지조차 없게 느껴지는 글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주관이 뚜렷하지 않아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알 수 없는 글도 아쉽긴 하지만, 에세이의 특성상 그럴 수 있겠다 여겨질 때가 있는 반면 완고하고 강압적인 글은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다.


  에세이는 결코 일기가 아니다. 어떤 일기는 에세이가 될 수 있겠지만, 모든 에세이가 일기는 아닌 것이다.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칭호를 받은 게 나는 여전히 부끄럽다. 솔직히 별 건 아니라고 여기기에 과하게 부끄러워하지 않을 따름이지,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거나 내가 에세이를 잘 쓴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다만 오늘 끄적인 글도 일기에 머물지 않았나 읽어보고 또 읽어볼 뿐이다. 다 쓰고 스스로 읽는 횟수보다 적어도 남이 읽는 수가 많아야 에세이로서 최소한의 요건이 아닐까 생각하며, 퇴고를 마친 나는 비로소 '발행'을 조심스레 누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중요한 건 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