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즈음 ‘인간실격’이라는 드라마를 몰아봤다. “삶에서 환상이 빠지면...”뒷부분 대사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사는 일이 맥 빠지고, 살 의욕이 사라져버린다는 의미였던 것 같다. 현실이 중요하지만 현실 안에 환상이 있다는 대사에도 크게 공감했다. 환상을 키우는 것도 문제지만, 환상을 완전히 걷어내서도 안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스마트폰의 성능이 좋아진 탓에 자주 사진을 찍는다. 나의 스마트폰 사진들은, 현실 안의 환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보면 허술하고 초라하지만, 사진 속에선 빛이 나는.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지 잘 모르겠다. 현실 속에 숨은 소박하고 진실한(?) 환상이 조미료처럼, 설탕처럼 내려앉아 있게 두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안 그러면 사는 게 영 시시한 일이 돼버릴 수 있으니까.
어쩌면 이런저런 관계에서도 우리는 서로 ‘좋은 사기’를 치면서 살아가는 게 아닐까? 연인도, 친구도, 동료도. 좋은 사기, 좋은 환상을 지켜나가려는 노력도 필요한 것 같다. 어떤 사람, 어떤 물건은 이유 없이 좋다. 좋은 것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서 작은 환상들이 부서지지 않게 보듬어줘야 할 것 같다. (2021년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