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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나 Nov 17. 2021

조경철천문대,
별 보기는, 아이였던 나를 만나는 일

#조경철천문대 #드라마인간실격에나온천문대

어제는 비가 내렸다. 가을은 비와 함께 오는 것 같다. 여름에 대한 미련을 차갑게 식혀주는 비. 비가 그치면 제법 서늘한, 짙은 가을이 온다. 가을은 낭만적이다. 덤덤한 사람들도 가을에는 한번쯤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같은 멋을 내보고 싶어진다. 서둘러 머플러를 찾는 건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어제는 아침에 음식물 쓰레기통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낡고 늘어진 티셔츠, 헐렁한 트레이닝 바지…. 더구나 음식물 쓰레기라니. 후줄근한 실내복을 입고 한 손에 우산을 들고 또 한 손에 ‘음쓰’통을 든 중년의 아주머니. 그게 나다. 출근하는 이들과 맞닥뜨리지 않길 바랐다. 다행히 혼자였다. 

얼른 출근 준비를 해야지, 하면서 현관 쪽으로 향하는데 우산을 받쳐 든 소녀가 보였다. 어깨에 가방을 멘 채 현관문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아이. 초등학교 3학년쯤 됐으려나. 등굣길 친구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그 실루엣이 예뻐서 한참을 바라봤다. 다 자라지 않은, 성장의 시간이 많은, 세상의 모든 ‘어린’ 존재는 특별하게 예쁜 것 같다. 비 닿지 않을 처마에 있어도 되는데 계단참 아래에서 현관문을 정면으로 보고 서 있다. 아이다운 포즈.       


현관문 비번을 누르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잠시 후 문이 열린다. 안에서 자그마한 여자 아이가 뛰어나온다. 후다닥 친구에게 달려간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짧은 순간, 두 아이를 훔쳐본다. 우산 속 아이의 얼굴에 떠오른 웃음, 너무나 가볍고 경쾌하다. 반갑고 정겨운 두 아이의 몸짓, 발랄하고 즐겁다. 아이들의 기쁨은 얼마나 단순한가. 내게도 있었지만 지금은 잃어버린 세계. 그 나잇적 내 모습은 사진 속에 있지만, 사진은 그때의 내 마음까지는 담을 수 없다. 

아이처럼 즐겁기, 무엇을 해도 도저히 흉내낼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즐거움을 그날, 쏟아지는 별을 본 친구의 얼굴에서 뜻하지 않게 발견했다. 별을 보는 일은, 아이였던 자신을 만나는 일임을 그날 알았다.        


일요일 오후의 소풍, 일몰을 보러 조경철천문대로

친구 J가 전화해서 일요일 오후에 해 지는 거 보지 않을래, 하고 물었다. 토요일을 밋밋하게 보낸 터라 반갑게 수락했다. 일요일 오후 서너 시란 얼마나 노곤하고 지루한 시간이던가. 목적지는 포천과 화천 경계에 있는 조경철천문대라고 했다. 두 해 전 9월, 포천으로 유레카 엠티를 갔었는데 화천에서 군 생활을 했다는 H가 ‘정상휴게소’ 비빔밥이 아주 맛있다고 했다. 마침 근처에 꼭 가보고 싶었던 조경철천문대가 있어서 아침 겸 점심으로 비빔밥과 수수부꾸미를 먹고 다함께 올랐던 추억이 있다. 사방이 트인 그곳에서 시원한 바람과 뭉게구름, 파란하늘을 배경으로 멋들어지게 사진도 몇 장 찍었지만 천문대 구경을 제대로 한 건 아니었다.         

그곳에서의 일몰은 상상만 해도 엄청날 것 같았다. 조경철천문대는 해발 1010m의 화천 광덕산 정상에 있는데, 약 5㎞ 정도 좁은 산길을 달려 올라가야 한다. 친구 J는 이른 새벽이나 늦은 오후에 자주 일출과 일몰을 보러 혼자 쏘다니는 인물이다. 나는 그런 J의 뒤꽁무니만 잡고 가면 되니, 꽤나 편안한 소풍이다. 


포천은 갈 때마다 제법 먼 느낌이다. 그리고 갈 때마다 지리적 위치에 대한 정보, 그러니까 모종의 네비게이션이 머릿속에 잘 작동하지 않는다. 어릴 때 사회과부도로 사회 공부를 잘 해둔 덕에 대부분의 지역은 어느쯤에 있는지 그려지는데 이상하게 춘천, 홍천, 화천 같은, 이 천자 돌림의 강원도는 막연하다(이렇게 적고 보니 깊고 아름다운 하천이 끝없이 흐르는, 정말 아름다운 곳들이구나, 새삼스레 감탄하게 되는군). 이유가 뭘까 따져보면, 수도권 사람들에게는 강원도라고 하면 강릉, 속초, 양양 같은 바닷가 마을이 강력하게 입력이 돼 있어서, 그 외의 강원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지한 게 아닐까 싶다.  

경기도를 지나 강원도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산세가 세진다. 꽤 묵직하고 우람하다. 세 시간 넘게 달려 목적지 인근에 오자 J가 편의점에 들러 군것질거리를 사잔다. 오후 다섯 시 반 쯤이었을까. 배가 조금 고파 정상휴게소에서 비빔밥 한 그릇 비벼먹고 올라가면 좋겠는데, 싶었지만 J에게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편의점을 털었다. 꼬마 호떡, 천하장사 두 개, 캔맥주 작은 거 두 개, 과자 한두 봉지…. 오후의 짙은 해가 황금빛을 띠고 있었다. 밥 먹다가 일출을 놓칠 수는 없지. 부지런히 산길을 달려 천문대에 닿았다. 

       

일출과 일몰이 장관인 곳산맥의 기운이 우렁찬 곳

광덕산 정상. 별을 볼 수 있는 천문대가 있다. 코로나 때문인지 시간이 늦어서인지 천문대는 개방하지 않았는데, 별 상관 없었다. 일몰을 위한 소풍이라고 속으로 혼자 규정한 탓이려나. 그 멋진 풍광을 카메라에 담아 보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해서 천문대를 오면서 별을 봐야지 하는 생각은 못했다. 너무 널찍해서 그런지 1010m 높이의 산 정상이란 생각이 별로 안 들었다. 그럼에도 뭔가 확연히 느낌이 달랐다. 산 정상의 바람과 공기는, 탄산을 한껏 함유한 스파클링 탄산수 같다. 마개를 따면 퐁퐁 솟아나는 탄산수처럼 그냥 서 있기만 해도 폐 세포 사이사이 해로운 것들이 밖으로 한꺼번에 분출되는 느낌이 난다. 젊은 연인, 중년의 부부, 어린 아이를 동반한 젊은 부부들. 고즈넉하고 평온한 세상에서 노니는 사람들. 카메라 렌즈를 대본다. 그림자 속에 몸을 감춘 산 뒤쪽으로 굵은 산맥이 일렬로 가지런하게 빗금을 그리고 있다. 그 기운이 힘차고 우렁차다. 더 멀리 있는 산은, 산 그림자가 자연의 그림이다.  


텅 빈 자연의 공간에서 우리는 평소와 다른 기다림을 안고 서성였다. 해가 지고 별이 뜨는 것. 시간은 일상에서 주인공이었던 적이 없다. 언제나 주체인 사람이 무언가를 할 때 필요한 것, 하고 싶은 것을 할 때보다 해야만 하는 일에 늘 더 많이 소요되는 안타까운 무엇이었지.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날 그곳에서는 시간이 주인공이었다. 자, 내가 너희들에게 정말 멋진 걸 보여줄 거야, 준비됐지?     

그날을 지금 떠올리니 이상하게 벅차오른다. 시간이 보여주는 자연의 그림을 그렇게 천천히 감상해본 적이 없다. 시시각각 세밀하게 변해가는 색의 잔치. 처음에는 맑은 회색빛이 사방에 은은히 퍼졌다. 태양의 기운이 약해진 듯 싶었는데 분홍빛, 보랏빛으로 하늘이 물들더니 마치 일출처럼 태양이 격렬한 붉은빛을 뿜어낸다. 태양 주위는 꿈틀대는 핏빛이다. 이렇게 태양이 다채롭게 물감을 뿌려대면 바람에 실려온 구름이 제멋대로 변주한다. 사납던 붉은 태양은 마침내 주위에 번진 검은 어둠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그 이후의 여운이 또 한참이다. 

붉은 기운이 사라진 자리에 푸르른 어둠이 슬며시 내려앉는다. 담채화 같은 푸르른 기운을 배경으로 가깝고 먼 산자락들이 한폭의 동양화를 그린다. 경탄. 

바람은 세졌고, 별이 뜨려면 한두 시간은 더 필요하다길래 차 안으로 들어가 주전부리를 먹으며 별이 뜨기를 기다렸다.       


쏟아지는 별을 두고 오려니 

이후의 많은 시간은 어수선했다. 주전부리를 먹으며 차 안에서 아이패드로 음악도 찾아들었다. 알리가 부른 ‘1992년 장마, 종로에서’였다. 사람이 이렇게 노래를 잘할 수가 있니, 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편의점에서 공수한 주전부리 까먹는 건 재밌었고 얇은 홑잠바는 원망스러웠다. 헤드라이트를 켠 차량이 자꾸 진입하고 점점 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늦은 9월인데 산 위의 바람은 초겨울의 그것이다. 오리털 잠바를 입은 사람들도 여럿이다. 들며날며 놀다보니 까만 어둠이 찾아왔다. 마침내, 별이 떴다.      

어둠 속에서 별을 바라보았다. 어릴 때 자주 하던 일이다. 계절마다 별자리가 달랐고, 어떻게든 별자리를 찾고 그 이름을 불러보려 애썼다. 지식은 알량했지만 즐거웠다. 언니나 오빠, 친구들과 별자리 맞추기 놀이도 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볼 수 있는, 별 보기는 어린 날의 추억을 불러온다.   

카메라에 별을 담는 건 내 영역이 아니다. 삼각대가 필요하고 더 좋은 성능의 카메라여야 한다. 어둠은 미세한 손의 흔들림을 단박에 감지한다. 청년 몇몇이 삼각대에 카메라를 올려두고 뚫어지게 바라본다. 뭐가 보여요? 은하수요. 저기 저거요, 저거 은하수예요. 

까만 하늘에 별이 무수히 쏟아진다. J는 나와 달리 감정표현이 많지 않다. 무뚝뚝하고 간결하다. 그런데 별을 보는 J를 흘낏 보니, 아이의 얼굴이다. 어릴 적 내 동무 같은 얼굴이다. 너무 좋은데 말할 수 없어서 자꾸 웃기만 한다.   

그날 알았다. 별을 보는 일은 아이일 때의 나를, 너를 만나는 일이란 걸. 

아쉽지만 돌아가기로 했다. 

쏟아지는 별을 두고 오려니 애틋하고 소중한 것들을 남기고 온 것처럼 아쉬웠다. 

그리고 또 하나. 별이 빛나려면 까만 하늘이 꼭 필요하다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 새삼 사무쳤다. 어둠을 잠식한 인공의 빛 속에서 바삐 살아가느라 우리가 놓치고 있는 무수한 것들이 자꾸 떠올랐다.  

위의 글은 <유레카>  456호(21년 11월)에 실렸습니다. 문의 02 558 1844 eureka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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